설교(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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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주일 | 눅13.6-9
감사선언서
감사선언[1] 육체적 독립
[사무엘]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1.20)
∙“젖을 뗀 후에 …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삼상1.24,28)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2.21b)
[예수님]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눅2.40)
감사선언[2] 사회적 독립
[사무엘]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예수님]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눅2.42,44)
[히브리서]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감사선언[3] 경제적 독립
[아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이스마엘]
∙“하나님이 ‘그 아이’(이스마엘)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하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창21.20-21)
[에서]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창26.34-35)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브라함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창28.6-9)
[솔로몬]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잠5.18)
감사선언[4] 영적 독립
[사무엘]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삼상3.4)
→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삼상3.7)
→ “여호와께서 …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삼상3.21)
[예수님]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바울]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이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3,15)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디모데]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으니
그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니”(행16.1-2)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지 마십시오.
의와 불법이 어떻게 함께 짝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사탄)이 어떻게 하나가 되며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함께 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고후6.14-16a, 우리말성경)
믿음의 세대 계승과 영적인 독립은 한 통이다. 신체적 독립과 사회적 독립은 그것 자체로도 중요하고 가치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적 독립이라는 경제적 자립을 이어가는 하나의 다리와도 같은 것이다. 육체적으로 잘 크고,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잘 하도록 성장하는 것 그것이 한 인간이 추구라는 모든 것의 목표이거나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인의 핵심, 가독교 가정의 중심이 서는 곳이다.
거룩한 세대로의 영적 독립은 육체적 독립과 그것에 따른 경제적 독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아의 홍수심판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