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46> 성전다움을 회복하십시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2-10-30
성경본문
마태복음 21.12-17

960주일 | 21.12-17

성전다움을 회복하십시오.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생명의 살림이 있던 그 자리를 속된 이 세상의 냄새가 차지한 지 이미 오래다(12-13).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병들어 있으나 성전은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14a).

 

 

성전신학(聖殿神學)

 

, 그러면 성전이 무엇이기에 12절의 모습에 분노로 반응하시고, 13절이라는 모습을 제시하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전이란 무엇인가?

 

[1] 아벨의 제사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4.3-4a)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4.4b-5a)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성막(성전, 제단)과 제사(제물, 제사법)에 대한 율법이 주어지기도 전에 제사장(아벨), 제물(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단에서 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는 것이다. 동시에 성막과 성전 시대처럼 이에 하나님이 오셔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 이러한 틀에서 출애굽 이후 모세의 장막이 주어지기까지 계속된다.

 

[2] 여호와의 성막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39.32-43)

    → 구름이 성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40.34)

 

[3] 솔로몬의 성전

다윗이 성전의 모든 설계도를 주고,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대상28.11-19)

    →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부터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대하5.1-13)

 

여기서 하나의 공통점[1-3]을 찾아보자. 첫째, 하나님이 명하시고 이를 아벨, 모세, 다윗과 솔로몬이 그 말씀대로 준행한다. 아벨의 제사에는 이 부분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제사와 성막이 오기 이전에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이 대목에서 제사에 친히 임재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성막과 성전에 찾아오신 것과 일치한다.

둘째, 하나님은 바른 제사와 예배에 임재하신다. 하지만 반대로 거룩과 경건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될 것이 예고되었다. 이는 성전건축을 마치고 성전봉헌식을 올려드린 날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대하5.11-22)신 말씀에 분명히 선언되고 있다.

    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14a)

      *14b-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늘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② 그러나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19a)

      *20a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20a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성전을 내 앞에 버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올라오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하나님의 임재는 물론 바른 제사와 예배를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성전 뜰은 시장과 광장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진짜 놀랍고도 놀라운 사실은 심판 받아 마땅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우리 주님의 언행이다. 진정 그분은 진정한 성전의 회복을 성취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메시야가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이다.

 

[4] 성전이신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a)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2.20,21)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그렇다면 오늘 소위 <성전청결사건>은 무엇인가. 허물기 위함인가, 세우기 위함인가. 인간의 부패한 심령과 죄악된 돌로 세워진 성전을 허물고, 진정한 성전이신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세우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에서다.

 

 

기도하는 집(12-13)

 

성전세를 내려면 이방의 화폐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환전(換錢)이 필요했을 것이고, 멀리서 짐승을 몰고 오기에는 도중에 흠이라도 생기면 제물로 인정이 안 되는 등 번거로움이 많았기에 예루살렘에 와서 매매하면 좋겠다 해서 생겨났을 것이고, 뭐 경기(살림)도 좋지 않는데 최소한 비둘기라도 드려야겠다 싶어서 찾는 자들이 많았기에 그걸 파는 자들이 하나 둘 생겼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제사장들의 묵인이 없었다면 성전 뜰까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이는 장사꾼들만이 아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득을 취하는 보이지 않는 장사꾼으로 전락한 성전 관리인들 때문에 거룩한 성전이 불가불 이처럼 부끄러운 곳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의 범죄자는 바로 성전을 맡아 관리하는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만큼 성전마저도 경제와 세상의 상업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게 타락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기도하는 집’(내 집)강도의 소굴’(너희)로 만드는 암세포(癌細胞). 하나님은 기도하는 집’()을 원하셨으나 사람들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13, 56.7). 성전마저도 자기 이익과 배를 채우는 것으로 전락시키면서까지 말이다. 이게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치료하는 집(14-17)

 

그러나 주님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성전이 어떤 곳이며, 무엇을 위해 세워졌는가를 보여주신다. 먼저 치료하는 곳으로서의 성전의 회복이다(14). 영육(靈肉)의 질병이 깨끗해지는 곳이다. 장사치들이 버글거리는 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다. 약하고, 추하고, 상처받고, 씻음 받아야 할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모든 어두움의 것들로부터 자유해 지는 곳이 성전이다. 주님은 참 성전이신 당신 앞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치료하신다.

또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15b)로 시작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미의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16b, 8.3) 죄사함과 거듭남에 대한 감격, 이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향한 찬미, 모든 죄의 파편들로부터 자유를 선언 받은 자로서의 환희, 바로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천국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 이곳이 주님의 몸된 성전의 본래적 모습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하나님의 성전인 나를 생각해 본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거짓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을 향해 돌을 던질 만 한 아무런 자격과 힘이 없는, 저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죄인인 것을 부끄럽지만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내 노력과 공로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어쩌면 그만큼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겸손의 틈새가 아닌가 싶다.

 

 

 

 

또한 기도하는 집으로도 회복되어야 한다(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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