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43> 공로 ≠ [천국] = 은혜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2-09-25
성경본문
마태복음 20.1-16

936주일 20.1-16

공로 ≠ [천국= 은혜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는 공로주의자들의 몸부림이 19장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에 의해 구원(살림)’이 선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인간의 공로에 의한 인간의 값싼 행위(‘자기 의’)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본주의라는 깃발이 끊임없이 나부끼고 있다는 것이다주님은 바로 이런 인간학에 유혹을 받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국(天國)에 대한 바른 신학을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신다.

 

 

은혜의 논리(선물) vs 공로의 논리(댓가)

 

포도원 주인은 오늘날 시간으로 하면 오전 9(3), 정오 12시와 오후 3(5), 그리고 오후 5(6)에 각각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2)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그리고 그 약속대로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 삯을 주라 하니”(8) 공히 모두에게 각각 한 데나리온씩을 나누어 주었다사실 모든 품꾼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3,5,6,7). 그러니까 포도원 주인이 이들을 써주지 않았다면 그냥 이렇게 놀다가 하루가 끝났을 사람들이다무슨 말인가포도원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그렇다면 주인은 포도원에 일하도록 한 것부터 약속한 삯(임금)을 나누어 준 것까지이 모두를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의 논리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먼저 온 품꾼들에게서 분위기가 바뀐다: “먼저 온 자들이 …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10-11)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자신들은 아침 9시부터 일을 했으니 오후 5시에 일하기 시작한 자들과는 달리 더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지금 주인을 원망한다(10-11). 그 이유는 나중 온 자들과 동일한 품삯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12). 주인의 은혜의 선물을 품꾼들은 공로의 논리로 바꾸고 싶어한 것이다하지만 주인의 행동은 약속한 그대로 집행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다(13). 오히려 나중에 온 사람에게 처음 온 사람과 같이 주는 것이 주인의 뜻이었다(14).

바로 이 대목이 19장의 자기 공로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들에게 교훈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부분이다주인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품꾼들은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도 자신들의 공로를 주장한다. 11시 곧 오후 5시에 들어와 겨우 1시간 일한 <오후 5시집사>(6)와 3시 곧 오전 9시에 들어와 종일토록 수고한 <오전 9시집사>(3)을 같은 품삯으로 대우한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주인이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품꾼으로 써주었기에 품삯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한 공로만큼은 더 보상되어야 한다며 씩씩거린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살려주니까 보따리 내어놓으라는 식이다적반하장(賊反荷杖)이 따로 없다이것이 주님에 의해 진단된 공로를 앞세우는 인간의 실상이다주인은 자기 뜻대로 약속하였고그대로 집행했다(2,13,14b). 그런데 품꾼들 중에 먼저 온 자들은 자기보다 늦게 포도원에 온 일꾼들보다 일을 더 했고그랬으니까 마땅히 자신들의 공로가 참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생각을 하는 것까지야 그럴 수 없다고 해 보겠지만 그런데 문제는 주인의 언행을 이런 자기들의 생각으로 바꾸어 버리려고 하였다는데 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15a)

 

아무도 써주지 않아서 장터에 놀고 서 있었던 품꾼(‘’)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인가그런데 자신이 어디서부터그리고 누구로부터 은혜를 입었는가를 잊어버렸다그 순간 알량한 공로를 주장하는 권리타령만 일삼게 된다.그렇다면 나는 너보다 더 공로가 있다는 품꾼의 생각은 맞는가틀린가옳지 않다그러면 이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공로의식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14)

 

은혜로 받은 선물을 허물어 버리고서 내가 했다는 나의 공로를 꺼내든 적은 없었는가사람은 이처럼 변덕스럽다일해야 할 시간에 일터가 아닌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3,5,6)이었다그러니까 포도원 주인이 아니었으면 종일토록 놀고 서 있’(6b) 있다가 하루가 갔을 것이다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써 준 품꾼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결코 자신이 유능하고일꾼의 재능이 있고그러니까 자신의 어떠함 때문에 포도원 품꾼이 된 것이 아니다오직 포도원 주인 때문에 일하고포도원 주인의 은혜 때문에 약속된 은전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저들은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품꾼으로 살았던 것이다(12). 그런데 <오후 5집사너는 <오전 9집사>인 나와 달리 겨우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자신과 똑같이 대우를 받게 되자 은혜의 논리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공로의 논리가 급속도로 장악해 들어왔던 것이다.

그처럼 은혜의 주인에게 공로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포도원이 술렁거리게 된다결국 은혜를 보는 눈을 이렇게도 쉽게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쪽으로 돌려버렸다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내가 너보다 더 공로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이처럼 이 깃털같은 공로를 주장하려는 못남이 품꾼들로 하여금 그만 은혜에서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이게 공로병(功勞病)이라는 암()적 질병이다그래서 주인도, 11시 곧 오후 5시에 들어온 품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6). 오직 자기가 일한 것만을 믿게 되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자기 자신의 공로만 들어오고그래서 주인의 약속과 뜻이 집행되었음에도 그것을 자기 공로로 뒤집어 보려고 하는 추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 생각 때문이다: “주인에게서 받은 삯은 내 땀의 결과일 뿐이다.” 이 생각이 주인에게서 받은 바 한량없는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주범이다나 <오전 9집사>는 일해서 받았고그런데 너 <오후 5집사>는 일하지 않았는데도 받았으니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공로의 논리만이 기본이어야 한다는 무서운 병이다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마저도 인간의 공로가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범죄요 죄악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쭐함이 있고그 결과 우월감으로 당당하게 산다반대로 공로가 변변치 않다고 생각하면 좌절이 있고상대적으로 열등감이나 패배감에 빠져 비굴하게 산다그렇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봉사하고헌신하고헌금을 드리고오랫동안 섬겼는가라는 이런 알량한 공로의 논리들이 득세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중병(重病)에 걸려있는 것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를 치료하고그래서 내가 사는 길은 무엇일까내게 일하도록 열어 놓으신 천국 포도원에 흐르는 은혜의 강물이 공로의 막대기 때문에 역류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은혜 의식이 있어야 한다이를 위해 다시금 주인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다주인을 보는 시선을 놓쳐버리면 자꾸만 너보다 잘나 보이는 나만 보인다내가 최고라는 착각내가 더 많이 수고하고 일했다는 착각그러면 끝이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망각한 사람 치고 제대로 사는 것을 본 일이 없다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나를 엄습해 오지 못하도록 지금도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을 이끌어 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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