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시절 난 언어 뒤에 숨어 있었던 적이 많았다. 주도적이지 않았으며 먼저 카드를 꺼내는 쪽이 아니었다. 이는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생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서로 잘 모르니까... 나도 나를 정말 모르겠는데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그러니 좋든 싦든 홀로서기다. 그러니 생각이야 뭘 못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부르심 앞에 서기 위한답시고 고향으로부터 오는 후배의 편지조차도 읽어보지 않았던 내가 가슴으로 또 다른 사랑앓이를 하고 있다는 이 역설이 내 20대의 또 하나의 얼굴이었지 싶다. 그러면서도 세상 모든 고민과 고통을 다 안고 살아가는 고독남인 것처럼 나를 그려내기에 바빴던 또 하나의 20대를 이렇게나마 고백에 담아 올려 놓는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혼자 쓰다가 멈춘 미완의 스토리가 있고, 동행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다 아는 그리 드러나 보이게 써가는 삶의 여정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이런 추억 저런 추억이나마 하나 둘 입에 물고 뒤뚱거리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1986년은 조금이나마 그래도 아름다웠던 것 같다. 이렇게라도 내 삶의 후미진 모퉁이를 함께 호흡해 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래, 어쩌면 이게 나를 흔들리면서 걸어가게 했을 거야,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