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왜 그들은 예배하며 살았을까.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11-22
성경본문
히브리서 11.32-40

495주일 | 11.32-40

왜 그들은 예배하며 살았을까.

 

믿음의 역사가 그들에게서 우리에게로 이어진다(39-40). 그렇다면 믿음의 후예들인 우리(‘’)들은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하며, 왜 그래야 하는가? 히브리서 11장이 그러듯이 그들과 우리의 연결 방식을 로마의 기독교 박해시대의 그들과 오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우리를 이처럼 연결해 보려고 한다.

 

믿음행전후서1(33-38): 그들

 

     ▪카타콤의 순교자(2019, 기독교문사)

        18781, 미국의 난파된 범선에서 발견된 세계에 있는 단 한 권의 책

 

1장 원형경기장(7만명을 수용하는 로마제국의 상징)

검투사 메사(36-38) - (칼을 던지며 황제를 향해 두 손을 높이 들어) 테시우스 황제여!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저는 야수하고라면 싸우겠습니다만 같은 인간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저는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일만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프리카인은 재빠르게 칼을 힘껏 쥐고 메사의 심장을 향하여 찔렀다: 주 예수여, 내 혼을 받아 주소서.

노인 알렉산더(40-41) - 로마의 여러분들이여! 나는 크리스천이오. 나의 신은 나를 위해 죽었소, 그러므로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치겠소.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세 마리의 표범이 그를 향해 도약해 갔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처다보았다. 그의 입술은 기도를 중얼대는 듯이 움직였다. 야성의 짐승들은 그에게 덤벼들어 2-3분 만에 그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순진한 소녀들(42-43) - 야수가 접근하기 시작하자 서로 손을 잡고 하늘을 우러러 영창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5b-6) 한 사람, 또 한 사람 . 비명이 터져 나오는 피와 고통과 그리고 죽음으로 사라져 갔다.

 

4장 카타콤

소년 폴리오(카타콤에 사는 소년)는 앞서고 마셀라스(카타콤을 처리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로마의 군위장교)는 뒤따랐다. 폴리오는 그의 동행자를 제지하고 횃불을 껐다. 마셀라스는 소년이 하라는 대로 따르며 눈앞의 광경을 열심히 주시했다. 그것은 사방 약 10M의 넓이로 천장의 높이가 4M 정도 되는 동굴이었다. 이 장소에 약 100명 가량의 남자, 여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83).

 

6장 증인의 구름

새로 개종자가 된 마셀라스는 잠시 동안이지만 크리스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예배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100, p.83)은 카타콤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의 수를 말한다면 수 천 명에 이르렀고, 작은 집단들로 나뉘어 카타콤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제각기 독자적인 방법으로 지상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109).

 

믿음행전후서2(39-40): 우리

우리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와 있다. 로마 황제라는 권력이 준 원형경기장이, 그후에는 카타콤으로 바뀐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자녀들 가슴에 품고) 잠시 후 천국에서 만나자!”는 믿음의 고백과 삶은 다시 그대로 카타콤에서 칼과 창을 들고 쳐들어오거나 독가스를 환기구에 투입하며 몰살시키려는 핍박자들 때문에 지하동굴에서 태어나 눈 멀었고, 등과 허리가 굽어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도하지 않았으며, 끝내 저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견디며 이기며, 그렇게 찬양하다가 죽어간 카타콤으로 바뀐다.

다시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의 환난과 핍박에서도,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예수를 부인하라!’는 요구 앞에 선 우리의 선조 그리스도인들에게로 이어가 보자. 대답은 동일하다. 시대와 현장과 형식과 대상만 바뀐 것이다. , 이제 그럼 지금(현재) 2020년에 초점을 맞춰보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믿음을 무엇으로 이어가며,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순교하는 것은 Untact(비대면)가 아니다. 기독교가 만들어낸 소설이거나, 영화이거나, 드라마가 아니다. 고난과 핍박을 피해 지하동굴 카타콤으로 숨어 들어간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 또한 Untact(접촉이 단절된 현상인 비대면’)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COVID-19(‘코로나’)가 만들어낸 Pandemic(감염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팬데믹’)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왜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을까.

    왜 그들은 예수로 살았을까.

    왜 그들은 예배하며 살았을까.

 

예수님의 <알곡과 가라지> 말씀처럼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함께 세상 속에, 교회 안에 공존한다. 로마원형경기장은, 커타콤은, 일제강점기는, 625 한국전쟁과 공산주의는, 그리고 경제 IMF와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좋은 씨인가, 아니면 가라지인가를 드러내 준다. 지금 우리는 그 사이를 살아간다. 가라지와 같은 증상들, 그러니까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마귀와 사탄의 꼬임수를 이기고 승리하려면 우리에게 히브리서 11장이 말씀하는 믿음 앞에, 이를 예배로 살아내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

믿음으로 나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면 원형경기장이 예배하는 자리가 된다. 카타콤에서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를 외치며 눈 먼 맹인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예배자가 된다.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면 살려주겠다라고 유혹해도 “60 평생 동안 한 번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는데 내 어찌 그 주님을 배반하겠는가라고 순교의 제물이 된 그 곳이 예배하는 자리가 된다. 이것이 예배요 성도의 삶이다. 우리는 오늘도 이처럼 예배당에 모여서 이 영광스러운 예배를 주님께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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