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송구영신] 사명자(使命者)여 일어나라!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12-31
성경본문
열왕기상 19.1-18

529송구영신 | 왕상19.1-18

사명자(使命者)여 일어나라!

 

하나님은 한 사람을 향해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신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브엘세바로 오는 노정에서(3), 다시 광야까지(4), 그리고 40일이나 이동하는 호렙산까지의 노정에서(8-9), 또한 호렙에서의 계속되는 대화에서도(9-14) 하나님은 먼저 참아주시고 계속해서 엘리야를 격려해 주셨다. 이 과정에서 천사의 심방(5,7) 또한 매우 적절하다.

 

도 망(1-8) - “자기의 생명을 위해 죽기를 원하여

남편 아합에 이어 이세벨마저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장을 던진다(2). 그녀는 850명이나 되는 바알주의자들과 바알신도 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하겠다고 선언한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죽이겠다’(2)고 하자 그 생명을 위하여 브엘세바(3) 광야(4)를 지나 호렙산 동굴(8-9)로 도망해 와 있다. 이는 앞서 길르앗(17.1) 사마리아(17.1) 그릿 시냇가(17.5) 사르밧(17.10) 갈멜산(18.20)으로 이어지는 이동의 연속이다는 점에서, 그렇다면 그는 지금 충분히 지치고 피곤한 상태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런데 여호와의 능력’(18.46a)은 사라졌고 이제는 오히려 자기가 죽기를 원하고 있다(4). 어찌된 일인가.

그런데 하나님은 절망의 사람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그의 인생에 다시 개입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만 남(9-14) -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중요한 것은 엘리야가 호렙산에 와 있고, 하나님이 바로 거기에도 계신 분으로, 이번에는 직접 엘리야를 찾아오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9, 현대인의성경엘리야는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호렙에 있는 이유를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0) 이것은 지난 4절의 고백과는 좀 다르다.

그런데 그 이후가 예사롭지 않다. 이는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섰으라!”(11a)는 명을 받은 이후에 4번이나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11a)도 그는 여전히 굴 안에 있다가 나가 굴 어귀에 서”(13a)는 것을 볼 때 그렇다. 그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고, 자신 앞을 4번이나 -크고 강한 바람, 지진, , 세미한 소리- 지나가시는데도(11-12), 그리고 마지막 4번째는 세미한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계심을 엘리야가 듣고 저에게 임하여”(13a) 첫 번 질문과 동일한 질문을 하셨음에도(13b), 엘리야 역시 첫 번 대답과 동일한 대답으로 응답하고 있을 뿐이다(10 14).

그러니까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현현(顯現, ‘세미한 소리’, 12b)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열심과 오직 나만 남았거늘에서처럼 자기 고독에 깊게 빠져있다(10,14). 그럼에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진노하시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언행(言行)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 가운데 나타나셔서 엘리야를 압도하는 방식이 아닌,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인간이 신을 불러내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자신을 선지자에게 계시하시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알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이런 하나님을 갈멜에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는 일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엘리야의 영적 침체다.

 

엘리야는 오직 나만’(10,14)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무지해도 선지자요, 18장의 갈멜대첩을 이끈 영적 거장이다. 이렇듯 인간은 똑똑하고, 바르고, 정확하고, 진실하고, 뭐 됨됨이가 훌륭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오히려 부족하고, 못나고, 무지하고, 천한 자들이다(고전1.26-31).

엘리야가 선지자 노릇을 잘 해서가 아니다. 선지자마저도 포기해 버린 황무한 땅(10,14)에서 하나님은 7천명의 성도들을 모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듯이 엘리야에 의해서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엘리야처럼 이렇게 살아있으니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닌가. 엘리야에게처럼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실 때 정신 차려야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19장의 호렙산에서 송구영신예배 앞에 선다.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서기 위함이다. 지금은 임하시는 하나님을 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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