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요나8 - 요나 콤플렉스(Complex)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1-02-14
성경본문
요나 4.1-5

559주일 | 4.1-5

요나 콤플렉스(complex)

 

4장으로 넘어오면서 요나는 또 다시 무엇인가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310절처럼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히 인간의 위치를 넘어서는 태도로 대들고 있는 것에서다.

 

요나의 어리광(1-3,5): 요나의 생각 > 하나님의 생각

 

모든 일이 잘 되었다. 만약 요나서가 3장으로 끝났다면 말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이러한 언행에 제동을 걸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선지자 요나다: “요나는 이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1, 표준새번역) 그는 감히 310절의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요나의 이러한 언행은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①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도 하나님과 생각이 다르다.

    ②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다르다.

    ③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④ 하나님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쉽게 분노한다.

    ⑤ 하나님이 나와 다를 때 너랑 놀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

    ⑥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우선이다.

    ⑦ 하나님의 용서를 나는 받았지만, 그러나 너를 용서하는 것은 싫다(원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우리 역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내 이해와 생각과 다르게 진행될 때 쉽게 요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자신을 기준에 놓고서 거기에 하나님이 벗어났다가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요나의 어리광을 선택한다. 요즘같이 4장의 요나형과 같은 성도들을 양산해 내는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이상하게도 신앙이라는 게 수 틀리면 하나님을 향해서도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1) 따지고 들 수 있고, 언젠가부터 하나님은 그래도 되는 분으로, 그래서 4장의 요나처럼 살아도 괜찮은 것처럼 은연중에 우리네 신앙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가 버렸다.

요나는 니느웨가 용서 받는 게 싫었다. 때문에 요나는 하나님이 310절처럼 하실 것이라는 것을 이미 12절에서 말씀드렸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둘러 다시스로 달아났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니까 요나는 처음부터 니느웨로 가는 것을 싫어했고, 더 깊은 이유는 만약 저들이 3장처럼 반응한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310절과 같이 응답하실 텐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는 이러한 일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래서 1장처럼 언행했노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힌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도 선지자인가. 이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다는 말인가.

그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에 따른 신앙고백(신학, 2b)은 거의 완벽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반대로 '아니올시다!‘이다. 1-3장까지의 무수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어찌된 게 그의 신앙 성장과 성숙은 까마득하다. 결정적일 때는 하나님 따로, 자신 따로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니느웨 행을 거부했고(1.3, 4.2), 하나님이 하라 하시니까 하기는 했지만 역시 자기 뜻과 반대로 일 처리를 하시는 하나님께 상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는 자, 그것도 이를 기도라는 거룩한 형식을 쫓아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다.

하나님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그것이 좌절되자 분노하고, 그래서 하는 말이 나도 그럴 줄 알았다느니, 이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음이니이다!”(3)라며 죽기를 원하고 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요나처럼 좌충우돌(左衝右突)하는 식으로 할 말 다하고, 하나님과 절교를 선언할 정도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도, 직분도, 사명도 나 몰라라 하면서 지내는 것, 그러면서도 전혀 영적인 자각도 없이 기도하며 신앙생활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삶, 이게 요나의 영적 현주소다.

그는 기도 후에도 변화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 기도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다이얼에 자신을 맞추겠다는 순종을 연습하는 기도가 아니었고, 더욱 하나님의 뜻과 자기 생각이 상충될 때 하나님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결단의 기도도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는 그의 성장과 성숙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가히 신앙 따로, 생활 따로다.

 

하나님의 생각(4): 하나님의 생각 > 요나의 생각

 

하나님은 요나에게 지금 이 경우에는 성내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 요나의 언행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생각을 요나에게 통보하신다. 나의 가는 길에 미끄러졌을 때, 내 생각만을 고집하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경거망동(輕擧妄動)하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조용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뭔가 내 안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고, 뭔가 모르게 영적 시계(視界)가 흐려질 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나의 생각은 망막할 때 그때가 바로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도록 그렇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다.

 

    ▪요나 스타일 - 하나님을 오해하다.

    ∙한 달란트 맡은 종 -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19.21)

    ∙사두개인들 -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22.29)

 

요나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여지없이 추락한다. 모든 일이 자기 마음 먹은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하나님도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쯤되면 중증(重症)이다. 하나님께 이 정도니 영적 리더십에는 말 할 것도 없고, 자신과 걸리적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불을 보듯 뻔하고, 그러니 지내는 사람마다 충돌하고 아우성이다.

신앙은 요나처럼 자기 직성대로 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이 못된 죄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요나형 성도의 모델은 언제나 공동체를 멍들고 상처나게 한다. 요나처럼 사는 사람이 크게 자기 잘못을 느끼지 못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떠난 것도, 신앙의 여러 형식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기도하고 있고, 변함없이 맡은 사명들을 붙들고 있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 문제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런 사람은 도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요나처럼 살고 있으면서도 예배도 드리고, 헌금생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이런저런 교회 일들에 참여도 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계기가 되어 겉으로 돌출하지 않는 한 모범적인 성도로 오인될 수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제는 예의도 있고, 자기 감정도 조절할 수 있고, 자기 이해관계와 대립되지 않으면 고분고분하고, 적당하게 처세할 줄도 아는, 그러면서도 요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 이것은 분명 영적 위기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성도는 있을지 몰라도 영적이고 신앙적인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다는 점이 위기다.

 

 

요나8 - 요나 콤플렉스(Complex)

김충만 목사
20210214
요나 4.1-5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십시오.

김충만 목사
20210207
누가복음 11.1-4

[CTS] 여리고 행전: 믿음의 비밀병기다.

김충만 목사
20210114
여호수아 6.15-16

인생의 장애물, 그 두 가지 색깔

김충만 목사
20210131
누가복음 8.40-48

요나7 - 믿음의 후반전, 니느웨를 깨운다.

김충만 목사
20210124
요나 3.5-10

[02] 광야복음: 믿음에 심겨 여리고에서 꽃피다.

김충만 목사
20210117
여호수아 2.8-24

연보는 은혜(Karis)라 부른다.

김충만 목사
20210110
고린도전서 16.1-4

[신년] 요나6 - 요나에게서 ‘요 나!’를 본다.

김충만 목사
20210103
요나 3.1-4

[송구영신] 사명자(使命者)여 일어나라!

김충만 목사
20201231
열왕기상 19.1-18

약할 때 강함 주시네!

김충만 목사
20201227
시편 6.1-10

[성탄절] 마침내 임마누엘이다.

김충만 목사
20201225
마태복음 1.18-25

예수: 구약은 약속, 신약은 구원

김충만 목사
20201220
누가복음 24.36-48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 스가랴의 딸

김충만 목사
20201213
역대하 29.1-11

요나5 - 참된 회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충만 목사
20201206
요나 2.1-10(2)

하나님, 나는 예배자입니다.

김충만 목사
20201129
시편 5.1-12

왜 그들은 예배하며 살았을까.

김충만 목사
20201122
히브리서 11.32-40

왜 한 사람과 아홉 사람 사이에서 머뭇거릴까?

김충만 목사
20201115
누가복음 17.11-19

요나4 - 왜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을까?

김충만 목사
20201108
요나 2.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