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여름, 어느 날 하나님은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다. 소위 소명(calling)이다. QT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오셨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종으로 쓰고 싶다고 하셨다. 난 무릎을 꿇었고 "나 같은 못난 죄인이 필요하시다면 이 한 몸 드리겠습니다"라고 눈물을 감동과 감격에 담아 고백했다. 모친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나를 안고 오랫동안 우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래, 엄마는 아들 둘 중 하나는 그리 쓰셨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1983년 총신大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1984년 2-1학기를 마치고 군필을 핑게 삼아 휴학을 했다. 당시 난 서울에 올라오면서 신림동교회(현 왕성교회) 대학부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십자수기도원에 올라가 지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먼저 간 둘째누나가 내 생활비를 맡았다. 그때 난 누나의 마음과 형편을 몰랐다. 자신 하나 건사하시고 버거운 게 인생인데 동생의 몫까지 책임지며 달려가는 누나가 진 짐의 무게를 난 알지 못했다. 그게 못내 미안하고 아프다. 이젠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서... 한편, 혹 지금 나에게 동생을 맡아 공부시키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얘기다. 학교에 있어야 할 때에 홀로 기도원에 있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쉽게 용납이 안 되었다. 많이 아팠고, 무너졌다. 그러던 중 기도원을 내려가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어디로, 뭘, 어떻게 등등... 흔들리는 신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참으로 답이 없는 20대 방황의 시절, 이 시에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