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바울, 예수를 만났을 때 일어난 일들(행 26.1-32)

20251221(양무리교회)

 

  

 

바울, 예수를 만났을 때 일어난 일들

Acts. 26.1-32

  

 

    본문 관찰

 

    젊었을 때(1-12) - ‘젊었을 때’(4): 핍박자

    내가 너를 증인으로(13-18) - ‘다메섹’(12): 부르심

    오늘까지(19-23) - ‘오늘까지’(22): 전도자

    설교 피드백(24-32) - ‘나와 같이 되기를’(29)

  

 

바울, 여섯 번째 설교

 

바울은 지금 가이사랴 감옥에 수감된 상태다.

그 상태에서 무려 2년이 지났다(25.27). 그런데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상태에서 석방되는 것을 위한 변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은 것이다(1).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마침내 나를 위하여 말하기’(1a)라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석방을 위한 변론를 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하는가.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그러니까 자신의 석방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2(25.27) 만에 찾아온 변명과 석방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오직 복음 전하는 것으로 사용한 것이다. 2년의 감옥생활에서도 그가 토해내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고 복음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질문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고통의 2년을 바울은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 , 그가 지금 하는 말일 것이다. 2년이 넘도록 모든 것이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나, 절망이나, 후회나, 서운함이나, 두려움을 토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인가. ,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주 예수와 관련된 자신을 말하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1-12) - 핍박자

 

     “5 일찍부터 내가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야 될 줄을 스스로 생각하고

    10 행하며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박해하였고 .”

 

곧바로 바울은 처음부터 젊었을 때”(4), 그러니까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 바리새인이었던 때를 말한다. 바울은 젊었을 때’(4)부터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예수님을 대적하며 살아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9) 행했다. 그러니까 예수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그런 바울을 주님이 찾아오신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찾아오심], 그 사랑 - 임마누엘

    *아브라함 이방신을 섬기는 때에 - 24.2b-3, 14-15

    *아담 타락, 범죄 3.8-9

    *가인 살인, 말씀 거역 4.6-7, 9-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 5.8

    *바울 다메섹-‘사울아 사울아!’- 26.14

 

 

내가 너를 증인으로(13-18) - 부르심

 

    “14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주여 누구시니이까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내가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

 

만약 젊었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4,9,10) 살았던 바리새인 바울을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바울은 어찌 되었을까. 그렇다면 바울은 젊었을 때 뿐만 아니라 끝까지 4-5절을 따라 9절처럼 살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처럼 12절로 살아가던 죄인이었던 바울을 끊어주신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면 12절을 좀 더 생각해야 한다. 무엇인가. 바울은 성도들을 박해하는 일로 다메섹에 간 것이다. 12절이다: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12) 바울은 핍박자요 적대자요 살인자의 모습으로 다메섹에 갔다. 그는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그 어떤 모습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때다.

 

그래서 주님의 찾아오심이라는 부르심(소명, Calling)은 전적으로 은혜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13절 이후는 바울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9,10) 한 일이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 밖에 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고 영광이다. 이를 위해 오셔서다.

 

,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을 위해 그가 행한 것은 전무(全無)하다. 바울이 한 것이 없다. 그럼 무엇인가. 값 없이, 전적인 은혜로 주시는 선물을 그냥 죄인의 빈손을 내밀어 받은 것뿐이다. 이처럼 주님이 찾아오시자 다메섹 이전, 그러니까 바울 그가 젊었을 때까지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가짜이며 죄악이고 부끄러운 것인가를 깨닫고 부들부들 떤다. 거룩하신 분과의 만남은 늘 그렇다. 이게 구원이다.

 

 

오늘까지(19-23) - 전도자

 

    “19 그러므로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증언하는 것은

 

그는 자신을 부르신 주님께로 분명하게 돌아섰다. 마침내 젊었을 때에 행하던 일, 그러니까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야 될 줄 스스로생각하”(9)던 과거라는 삶의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이것이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늘까지”(19,22a) 회개와 이에 합당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었던 힘이다.

 

예수님이 부재(不在)했던 젊었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4,9,10- ) 살았던 모든 죄를 청산한 바울처럼 이제는 우리도 어제와 다른 그런 오늘이 있도록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강림하도록 구원의 선물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자 하나님의 은혜다.

 

 

설교 피드백(24-32)

 

    24 베스도 -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25 바울 -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8 아그립바 - 네가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 -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31 사람들 -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바울은 자신의 지금 처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죄수의 몸인 것을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데 죄수의 몸에서 석방되는 것을 위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만 하고 있다.

 

 

부스러기 묵상

 

    “9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 - ‘젊었을 때’(4), 핍박자

        → “16 내가 너로 증인을” - 다메섹 이후, 전도자

            → ”22 내가 오늘까지“ - 가이사랴 감옥(2), 여전히 그리스도인!

 

바울은 다메섹 이후부터 오늘까지를 젊었을 때’(4)와 다르게 살았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 이 일은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일어난 일이다. 주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전히 감옥이어도, 아무런 성과도 없는 실패처럼 보여도, 사도의 체면이 구겨진 것처럼 보여도, 그렇게 끝날지도 모르는 절망의 끝자락에서도 바울은 외친다. 이것이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이 그가 만난 십자가 복음이다. 이것이 그가 만난 주 예수의 사랑이다. 때문에 그는 감옥의 죄수이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주의 복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예수를 만났을 때 바울에게 일어난 일이다.

 

복음은 오늘도 감옥의 죄수에게서 외쳐진다. 그런데 그는 실망도 없고, 좌절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핍박자였던 자신을 찾아오셔서 그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당신의 온 몸과 보혈로 덮어주시고, 더도 덜고 따지지 않고, 십자가와 원수이던 바울을 불러 그 십자가를 전하는 자로 부르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주님이 바울에게서처럼 오늘 나에게서도 이 일을 시작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다. 오늘 우리에게 오신다. 오늘 바울처럼 죄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오신다. 그날을 바울이 다메섹에서 맞이한다면 우리도 그 주님을 뵈올 수 있다. 주님 때문이다. 주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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