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천국이야기② - 곡식이 가라지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마 13.24-30,36-43)

20251026(양무리교회)

 

 

 

곡식이 가라지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

Matt. 13.24-30,36-43

 

 

    본문 관찰

 

    [비유]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24-30)

    [설명]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36-43)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좋은 씨’(천국의 아들들, 의인들; 38,43)

         제 ’(세상; 38)에 뿌린 사람’(인자, 예수; 37)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마귀; 39)가 와서

         ‘곡식’(좋은 씨) 가운데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을 행하는 자들; 41)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마귀; 39)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세상 끝; 39)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천사들; 39)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통곡하는 가라지, 해와 같이 빛나는 곡식

 

 

24-26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천국의 아들들, 의인들; 38,43)

     제 ’(세상; 38)에 뿌린 사람’(인자, 예수; 37)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마귀; 39)가 와서

     ‘곡식’(좋은 씨) 가운데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을 행하는 자들; 41)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주께서 세상이라는 밭에 좋은 씨’(24,37), 그러니까 천국의 아들인 의인들을 뿌렸다. 그런데 이들이 잠들었을 때에 원수 마귀가 그 밭에 가라지’(25), 그러니까 악한 자의 아들들을 덧뿌렸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는 두 씨앗이, 그러니까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과, 바로 거기에 악한 자가 와서 뿌린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되었다(38-39).

이렇듯 좋은 씨’(천국의 아들들)가 뿌려진 밭이지만 가라지’(악한 자의 아들들)를 뿌린 원수에게 노출되어 있다. 주님이 뿌릴 때 마귀도 뿌린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을 사탄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탄은 주께서 하시는 천국을 어떻게든 실패하게 하려고 달려든다. 주께서 천국의 아들들이 자라게 하신 그 땅에 마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을 덧뿌린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이 가라지 때문에 영적 전쟁터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가라지 때문에 어그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싹이 나고 자랄 때에 가라지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26). 악이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이 잘 때에”(25a) 은밀하게 뿌렸다. 그리고서 아마도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속임수인 가라지가 어느 날 보이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악이 가라지의 모습으로 은밀하게 악행을 계획한다. 그것이 마치 열매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할지라도 그것이 가짜이고 가라지이고 거짓인 것을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왜 드러나는가? 주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원수 마귀가 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28a)

 

 

27-28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마귀; 39)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에 악이 함께 있겠다고 한다. 주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탄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 천국의 아들들 사이에서 자라도록 하겠다며 작정하고 덤벼든다. 이것이 원수 마귀가 만들고 싶어 하는, 천국을 가라지로 만들어 버리려는 마귀가 꿈꾸는 세상이다(38). 이 일은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가상의 훈련이 아니다. 이 일은 세상 끝 날 추수 때’(39)까지 진행되는 생생한 실전이다.

사실 가라지는 보이는 대로 뽑아 버리면 된다. 처음에는 다 좋은 씨가 자라난 곡식같지만 이삭이 나오는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알곡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주님의 생각이 알려진다. 주님은 제자들의 생각처럼 결실 전에 그 가라지를 뽑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셨다. 주님은 가라지가 아니라 곡식을 염려하신 것이다.

어찌 보면 가라지가 보이는 순간 뽑아 버리면 쉽게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주님은 곡식이 자라는 것을 위해 가라지를 뽑아 주시지 않았다. 이런 형편 가운데 곡식이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가라지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가라지 없는 무풍지대(안전지대)로 막아 주시는 그런 방식으로 곡식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 가라지가 자라는 그 한 복판에 곡식을, 동시에 곡식이 자라는 바로 그곳에 가라지를 그대로 두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둘이 함께 자란다. 놀라운 것은, 가라지가 있어도 곡식은 자란다는 점이다.

이것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의 현재성이자 생생한 실상이다. 그렇다면 가라지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또한 가라지 때문에 곡식으로서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데 늘 방해받는다고 가라지 탓만 하고 있는 것도 옳지 않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에 이처럼 못되고 악한 가라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곡식은 추수 때를 맞이한다. 가라지가 있어도 곡식은 자란다.

사도 바울이 알려주는 간증을 들어보자. 사도 바울마저도 자기 안에 있는 가라지 때문에 통곡한다(7.7-25).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가라지와 싸우다가 탈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았고 의지함으로써 열매 맺는 곡식을 향해 자신 안에 있는 가라지와 날마다 싸웠다.

 

    롬7.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9-30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세상 끝; 39)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천사들; 39)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에 천국의 아들들인 좋은 씨와 악한 자의 아들들인 가라지가 공존한다. 놀라운 것은 이 공존은 주인이신 주님이 허락하신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 같은 천국의 현재성이라는 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은 가라지 때문에 좋은 씨’(29,38)를 놓치지 않으신다. 종들은 가라지를 다 뽑기를 원했다(28).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도 함께 뽑힐 수 있다며 곡식을 염려하신다. 그래서 결과는 마지막 추수 때’(세상 끝, 심판)에 분명히 드러난다. 바로 세상 끝까지 주님은 우리들이 자라는 천국을 가라지로부터 완전하게 지켜내실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 지금 어찌된 게 가라지인 악한 자의 아들들이 좋은 씨’(곡식)인 천국의 아들들을 위협하는 형국이다(29). 이것이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린 첫 번째 목적이자 가라지의 정체다. 주님은 이 가라지를 제거하는 것보다 곡식(천국의 아들들)을 보호하는 것을 더 우선순위에 두셨다. 가라지가 아닌 곡식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처럼 예배하는 것이다.

또한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린 두 번째 이유는 알곡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41a), 그러니까 천국의 아들들이라도 죄를 범하게 하려는, 그래서 알곡으로 결실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의 정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24.24) 이렇듯 언제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과 같은 천국에서 곡식을 미혹하는 것은 가라지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가라지를 심은 원수’(39a) 마귀를 세상 끝날에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42)는 심판을 선언하신다. 천국에는 가라지 자리가 없다. 천국 곳간에는 우리 알곡들만이 들어간다.

 

 

부스러기 묵상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41-42)

 

놀랍지 않은가. 알곡은 가라지가 있어도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30,43).

그럼에도 가라지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고만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주님도 가라지를 심판 때까지 그대로 두시는데 나는 그걸 뽑으려다가(주님께 뽑아달라고 하다가) 사람도 잃고, 시간도 잃고, 건강도 잃고, 돈도 잃고, 믿음도 잃고, 결국 영적 침체에 빠지고, 급기야 내 인생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라지와 싸우는 것은 헛된 낭비다.

곡식인 우리를 천국에서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게 하는 일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오늘도 가라지 사이에서 당당하고 알곡답게 자라가야 한다: “나는 가라지가 아니다. 나는 알곡이다!” 좋은 씨를 뿌리는 주님이 우리를 천국의 아들들이라 하시며 세상 속에 심으셨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예수님 같은 천국에 가라지가 자라더라도 세상 끝에 우리는 곡식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이처럼 천국은 우리에게 임하고 있다.

 

 

  • 2025년 10월 26일 주일예배에서 한 천국시리즈1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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