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기도③: 야곱의 기도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1-07-25
성경본문
창세기 28.1-22

666주일 | 28.1-22

기도: 야곱의 기도

 

28장은 무엇이 이들 형제의 인생을 견인해 가는가를 두 사람의 방향이라는 주제를 통해 살펴보자. 이것을 주목하는 것은 그 중심에 야곱의 기도가 자라하고 있어서다.

 

[방향1] 결혼: 아브라함-이삭-야곱 vs 아브라함-이삭-에서(1-9)

   ∙에서: 아브라함-이삭/리브가-에서 가나안/이스마엘 가문 불순종, 불신

   ∙야곱: 아브라함-이삭/리브가-야곱 아브라함/리브가 가문 순종, 믿음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27.46; 26.34-35 참조)

 

[방향2] 축복: 부모(이삭)와 하나님(10-15)

    ① 하나님: 수태고지로에서(25.23)

       → 이삭: 야곱이 에서의 모습으로(27.27-29)

              → 이삭: 야곱에게(28.3-4)

                     → 하나님: 야곱에게(28.13-15)

                         ● 야곱의 응답: 서원(28.20-22)

 

       ③ [아버지 이삭]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3-5)

       ④ [하나님]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12a)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12b)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13a)

            →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13b-15a)

 

[방향3] 야곱의 기도(16-22)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 殿)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17b)

 

마침내 야곱은 이 방향 안에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 이 기도의 무릎은 지금까지의 방향과 다르게, 그러니까 에서처럼 살다가, 삶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복을 받고 싶어서, 기회가 왔다 싶은 나머지 넙죽 엎드린 것이 아니다. 야곱의 기도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향한 방향의 결정체(종합). 그래서 방향 1-2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는 기도한다. 드디어 하나님 쪽으로, 하나님이 열어주신 바로 그 길을 따라 27장 이후에도 변함없이 살아가겠노라 선언한다. 이점은 에서와 다시 근본적으로 구분되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망자가 되어 길 떠난 자신, 그는 혼자라 생각했고, 아버지 이삭과 모든 것을 뒤로하고 왔으니 그럼 무엇을 근거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야 할지 싶었을 야곱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잠이 든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그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비로소 이제야 야곱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지기(access) 시작한다. 이것이 벧엘이 갖는 의미이다. 지금껏 자신의 방식과 방법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 싶었는데 벧엘에서, 벧엘의 하나님께 다름 아닌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이는 무엇을 기도했느냐 보다 더 중요하다. 야곱이 다른 무엇보다 기도하는 것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3)

 

보통 우리는 급하고, 갈급하고, 다른 길이 없을 때 벧엘을 만든다. 사실이다. 그런 위급한 상황일 때에야 기도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의 필요와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벧엘을 통해, 즉 기도를 만들어서, 그리고 역시 자신이 정한 벧엘기도원을 통해 기도 앞에 선다. 어떤 일이 터지면 금식이 그렇고, 철야가 그렇고, 특별기도가 그렇고... 보통 여름이 끝나면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하는 분들이 늘어난다. 왜 그런가. 바로 대학입시 철이어서다. 우리의 기대와 목표와 원하는 것이 이처럼 벧엘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오늘 야곱도 그럴만하다. 중요한 것은 야곱이 지금 이런 28장을 기대하고 벧엘의 하나님 앞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간 게 아니다. 우리처럼 위급하니까 기도하려고 벧엘로 간 게 아니다. 가는 길에 밤이 되었고, 그래서 그곳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야곱의 벧엘은 이렇게 주어진벧엘이다.

야곱의 기도는 그 방향과 같은 방향이다. 그는 이 모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이를 무엇으로 응답하는가? 그게 기도다. 정답으로 말하기는 쉬운데 야곱처럼 기도하기로 응답하고 방향읗 잡는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야곱의 기도에는 예배와 서원과 헌신과 감사와 충성서약이 들어있다.

하나님을 설득하고, 자기 소원을 아뢰고, 그래서 응답 받으려고, 무엇인가 또 필요해서 엎드린 것은 어쩌면 반쪽짜리 기도다. 그것은 하나님이 찾아오신 벧엘이 아니라 내가 필요에 의해 만든 벧엘이다. 이 경우에 벧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는 것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 뜻과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는 응급처치용 응급실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반쪽기도.

이것은 내 욕심과 욕망을 기도를 통해 얻어내려는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계획을 알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또 보았으니까 비로소 꿇은 무릎이다. 야곱은 기도하려고 벧엘에 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셨다. 그러니 방향이 이미 하나님 쪽으로 걷고 있는 야곱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람은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맛본 사람은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래서 기도한다.

이제 이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구하는 기도에서는 이 기도가 안 보인다. 기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방법인 기도에서도 이 기도는 안 보인다. 오직 응답만을 목표하고 기대하는 기도에서 이 기도는 늘 힘을 쓰지 못한다.

내가 만들어낸 벧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신 벧엘을 내게도 허락해 주시면 바로 거기서,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몇 번은 바로 이 야곱의 벧엘 같은 우리의 벧엘 앞에 나를 세우신다. 지금이 그 때일 수 있다. 내게는 야곱처럼 이를 깨닫고, 알고, 그래서 반응할 수 있는 방향인가. 기도는 어느 날 해야지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삶의 전방향이 하나님 쪽이어야 한다. 삶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이어야 지금 내가 선 곳이 하나님의 벧엘인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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