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일상생활의 영성이다(히 13.1-7).

20220725a(Heb. 13.1-7)

  

 

 

믿음, 일상생활의 영성이다.

  

 

    본문 관찰

 

    [믿음의 행위법칙들]

    일상생활(1-4)

    경제생활(5-6)

    교회생활(7)

  

 

하라! & 하지 말라!

 

믿음은 삶의 자리에서 빛난다.

히브리서 역시 교리편에서 생활편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1.1-10.18 → Ⓑ10.19-13.25).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신앙의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후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렇다면 생활편()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들이 히브리서의 독자들, 즉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옛 언약의 싸인인 제사로 돌아가도록 유혹하는 것들인 셈이다.

 

    [본문에서 제시되는 유혹들]

    형제 사랑하기(1)

    나그네 대접하기(2)

    갖힌 자 돌보기(3)

    결혼

    돈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자라 열매를 맺는 자리(field)는 다름 아닌 삶의 자리라는 점이다. 바른 교리에 서 있다면 바른 생활이 뒤따라야 하고, 지금의 모습이 그릇된 언행이라면 그것은 분명 그릇된 교리에 감염된 것이다. 사실 믿음이란 교회 안에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거치른 삶의 들녘 한복판에서 피어난다. 이 역시 [믿음행전](11)이 드려다 본 믿음의 구도이기도 하다. 이로써 히브리서 첫 번 독자들이 당면한 고난과 고통, 그래서 이를 빌미로 다시 유대교와 율법의 다리를 건너 제사라는 행위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밝히 드러내고 있다.

 

 

일상생활(1-4)

 

    신행법칙-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

    신행법칙-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신행법칙-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신행법칙-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그리스도(1.1-10.18) 안에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인다움’(10.19-13.25)을 따라 산다. 히브리서는 이것을 주님을 믿는 신자의 삶이라고 말한다(Ⓐ → Ⓑ).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믿음(10.19-11.40), 소망(12.1-29), 사랑(13.1-17)을 따라 살며, 또한 이를 먹고 자란다. 이 셋은 서로 유기적으로 합력하면서 선()을 이룬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은 소망으로 인도하고, 동시에 믿음은 늘 삶이라는 무대에서 그 열매를 맺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형제 사랑하기(1).

믿음으로 행하며 산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됨을 드러내는 길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이처럼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는 것이 주님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길이며(), 또한 내가 그리스도임다움을 따라 사는 길이다().

둘째로 믿음을 따라 행하며 산다는 것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이다(2, 18.1- ,19.1- ). 신행(信行)은 형제 사이는 물론 손님(‘나그네’)처럼 나와 직접적으로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그리고 나의 그리스도인됨을 드러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특히 사역자에게 이것이 요구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딤전3.2)

셋째로 믿음을 따라 행하며 산다는 것은 고통과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며 사는 것이다(3). 그 누구보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25.31-46)에서 이처럼 사는 자를 가리켜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실 만큼 강조하셨다. 믿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한 것만으로 다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이웃과의 관계에서 빛을 발하여야만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행해지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22.36-40).

넷째로 믿음을 따라 행하며 산다는 것은 혼인을 귀하게 여기며 가정을 소중하게 지키며 사는 것이다(4). 침소를 더럽히는 것과 같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심판의 대상이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4b)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셨으며, 가정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작은 교회다.

하나님이 에덴에 첫 번 결혼을 통해 새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이처럼 멋진 주례사(主禮辭)를 하셨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이렇듯 결혼(가정)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것인데 이를 사람이 허물어 버리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음행(간음)이 침소를 더럽게 하고, 결과적으로 결혼(가정)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 가르침을 불순종하게 만든다.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해체되는 주범(主犯)은 성적 타락이다. 결국 이들은 찰나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택한 셈이다.

 

 

경제생활(5-6)

 

    신행법칙-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신행법칙- 지도자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과 돈은 어떤 관계일까. 쉽지 않은 주제다. 예나 지금이나 믿음이 돈을 만나면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떻든 두 종류의 사람이 생각난다. 돈에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아간, 아나니아와 삽비라, 7.1-26, 5.1-11)과 돈에 자유로웠던 사람(마리아, 14.3-9)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 밖에 있었던 자들이 아니다. 모두가 다 은총의 날개 안에 있었던, 오늘 식으로 말하면 성도(사역자)들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들 보다 마리아에게서 발견되어지는 돈에 대한 영성은 예수님보다 돈이 더 귀할 수 없다고 하는 신앙이고,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300 데나리온(노동자의 1년 연봉)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었다. , 그녀는 돈을 사랑하는 애착에 얽매어 살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를 복되게 하고 마리아다움을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 -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5b).

    우리 - 주께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시 내게 손을 대랴?(6, 표준새번역)

 

돈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친히 떠나거나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 하시니(5b),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이처럼 고백하며 살면(6, 118.6) 돈의 노예됨을 면하며 살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무게가 실린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도움의 손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돈 역시 믿음의 행위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돈이 하나님을 믿는 삶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족하며 살라는 충고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야겠다.

 

    #참 조 - 신행법칙은 히13.17-25절 묵상, [영적 지도자들을 향한 성도들의 태도]에 대해서 다룰 때 13.7,17-19절과 함께 묵상합니다.

 

 

부스러기 묵상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4-17)

 

믿음을 말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목소리 크고 쇳소리 나게 부르짖는 게 믿음이라면, 믿음은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소리나는 곳에만 있겠지요. 세상 앞에 나아가, 동시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에 섰을 때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종이에 적은 믿음(Paper Faith), 입 안에 있는 믿음(Mouth Faith)일 뿐이다. 믿음으로 세상을 정면승부한 사람들을 11장에서 읽고 묵상했다면 이젠 우리 차례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한다면 히브리서가 요구하는 삶은 그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 수 있다. 히브리서인답게, 히브리서스럽게,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백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분처럼 살면 된다. 이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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