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생각(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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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의 미래다.
30년 넘게 사역하면서 보니까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본다.
한 쪽은, 좋은 직장에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크게 보아 평범한 중산층이다.
그런데 이들의 자식들은 자기 부모를 대단한 부자로 알고 살아간다.
이런 배경에는 부모가 좀 허세를 부린 부분도 있다.
부모가 알아서 다 해 주니까 자식 입장에선 그리 느낄 만도 하다.
그러니까 부모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통해 일찍 유학을 가서 인생 스텝을 별 어려움 없이 밟으며 성장한다.
다른 한 쪽은, 내가 알게 된 것만으로도 분명 진짜 부자다.
그런데 자식들에게는 일체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등록금 마련키도 만만찮다는 느낌이 들도록 자식들을 키운다.
해서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 등록금에 보태게 할 정도다.
물론 자식들도 유학을 보냈지만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근면이 아니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짜 검소하게 살아간다.
자, 두 쪽 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식들이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어엿한 청년이고,
또 결혼을 해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쪽 부모에게서 자란 자식들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앞의 부모를 둔 자식들은 부모가 다 알아서 모든 걸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가 주는 부스러기로 살아간다.
일도 하지 않고 살아도 될만큼 부모에게 받아 살아가면서도,
곧 죽어도 폼 잡고 산다.
나이도 들어 신입사원으로는 안 어울리고,
학위를 인정받아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기에는 졸업한 학교가 좀 그렇고,
한국 기업문화와 다르게 외국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적응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부모라는 금고가 있기에 조금만 수틀리면 더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의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스스로의 힘과 역량과 노력을 더해 자신의 날개로 비상하며 성장한다.
이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뭐가 되었어도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존하지도 않지만, 설
령 부모가 조금만 더해 주면 그걸 기반 삼아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른다.
진짜 미래가 보인다.
이 때문일까?
이렇듯 지금도 오늘의 부모를 보면 내일의 자녀가 조금은 보인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카피되고 있으니까.
신앙도 마찬가지다.
신앙, 교회, 하나님, 믿음하며 사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일 때 부모가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은 공부해. 그리고 교회는 이 다음에 합격(성공, 입사, 결혼)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그러면 자식은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세요?
“아, 우리 부모가 결국 제일 좋아하고 숭배하는 것은 믿음, 하나님, 교회가 아니고 S.K.Y이고 성공이고 출세구나.
결국 하나님도 이것 때문에 붙들고 있을 것일 뿐이구나.
그렇다면 하나님도 별 거 아니네!”
그러니 그 부모 밑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요.
배움은 가까이에 있다.
스승 또한 먼 곳에 있지 않다.
내가 부모이기를 포기하면 자식의 미래는 없다.
자식은 지식으로, 교과서에서, 학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고 보여줄 게 없다면 그 자식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믿음과 신앙을 자식에게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자식의 미래를 자라게 하는 양식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밀려드는 코로나19 이후 시대에도 소망스러울 테니까요.
자식은 A/S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나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지금 바른 원본으로서의 부모됨이 아니면 이미 카피되어 가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되돌릴 길이 없다.
부모는 자식의 현재이자 미래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인다.
그러니 부모는 바른 믿음과 바른 신앙을따라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자녀들에게 카피되고 있는가.
오늘의 부모는 자녀의 미래다.
시편 128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경외는 가정을 소개한다.
손이 수고한 대로의 아버지, 결실한 아내, 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여야 한다.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news/view.php?no=448
최종 20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