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m)

영(靈) vs 육(肉)

() vs ()

 

 

이런 저런 생각

곁에는 어머님이 누워 계신다

육의 마비는 영의 관할이 아닌 건지

영은 육을 지배한다지만 무능하기는 마찬가지

영육靈肉을 연결하는 것은 의식일 뿐

영은 육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육은 영을 점점 가난하게 만든다

가엾으신 어머니

벌써 많은 시간들이 제 갈 길을 갔고

차도差度의 빛은 있으나

사람은 너무나 나약할 뿐

 

거칠었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

 

 

1984.12.10.

 

 

  • 돌아보면 1984년은 내게 참 어두운 방황의 길목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 볼 것 같은 신앙 안에 있다가 세상이라는 또 하나의 현장에 나아가마자 휘청하고 무너졌다. 그때 내 신앙은 이처럼 무능하고 유약했다. 그리고 그걸 힘 없이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한심한 '방황덩어리'였다.
    무엇보다 신학의 담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전국 교회 고등부에서 날리는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그래서였을까 다들 자신감과 능력이라고 할까 뭐 이런저런 모습에서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걸음 앞에 있었다. 시골 촌놈이 따라가기에는 여러모로 버겁고 숨찼던 시절... 그래서 신학생병을 핑게로 학교 밖으로 나왔으나 그렇다고 딱히 어떤 수가 있는 것도 아닌...
    이런 방황의 틈바구니에서 난 글을 썼던 것 같다. 이 시절 만난 분이 남서울교회 부목사셨던 박영선 목사님이다. 설교와 성경을 보는 눈을 조금씩 떠간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설교 TAPE는 늘어나 들을 수 없어 다시 어찌어찌 손에 넣어 그걸 외우다시피 듣고 들었던 때다. <하나님의 열심>이나 <구원, 그 즉각성과 점진성> 같은 책을 책이 분철될만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물론 모친은 누워 계시고, 하지만 차도는 없고, 그래 긴 겨울 어찌해야 하나 싶었던 눈물의 시절이었다. 이럴 때 절박하니까 나라도 기도의 무릎을 깊게 꿇었어야 할텐데 그런 재주도 믿음도 없었으니, 내가 봐도 난 참 한심하기 그지 없는 신학생이었다.
    그렇게 1984년 한 해가 가고 있는 12월이었던 것 같다. 난 절망했고, 휘청거렸으며,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다. 신앙이 좋고 깊어 하나님 편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버티어야 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사이에 낀 그렇고 그런 모습으로 한 해를 통과해 가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나였다.
제목 날짜
추상(秋想) (1) 2020.08.10
내 마음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1) 2020.06.16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다 (1) 2020.07.10
숨바꼭질 (1) 2020.07.17
아들의 고백 (1) 2020.07.03
동그라미(1) (1) 2021.02.10
진리가 나를 괴롭힐 때 (1) 2020.06.27
나는 나 (1) 2020.06.27
어머니(2) (1) 2020.06.11
영(靈) vs 육(肉) (1) 2020.06.10
시(詩), 나를 제물로 드리다. (1) 2020.05.27
가끔 생각한다 (1) 2020.07.10
어머니(1) (1) 2020.06.10
귀향(歸鄕) (1) 2020.06.09
새벽 속으로 (1) 2021.02.10
오늘 (1) 2020.06.09
스티그마(stigma) (1) 2020.06.09
사랑하고 싶다. (1) 2021.02.10
내일찾기 (1) 2021.02.10
가․난․이․고․프․다 (1) 202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