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m)

비 오는 날에

비 오는 날에

 

 

언제부턴가 비가 좋다

주룩주룩 나리는 줄기 사이로 어른거리는

모양도 그렇지만,

우산을 받쳐 들고 한발씩 걷는 소리도 좋다

 

어릴 땐 눈이더니

이젠 그렇게도 싫던 비가 좋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표겠지, 아마!

 

비를 보면

여유가 있다

 

흙이 툭툭 튀는 황톳길을 따라

걷고 싶기도 하고

비 내리는 그 길 따라

짧은 산책이라도 했음 좋겠다

 

비를 보면

왠지 포근하다

 

흠뻑 젖은 머리통과 얼굴을 긴 치맛자락으로

닦아 주시던

어머니가 있는

고향의 빗길을 한 걸음 걷고 싶다

 

날 토옥토옥 쳐주는 소리와 함께

한 번 흠뻑 젖고 싶다

 

 

1989. 6. 9.

 

 

  • 마음은 늘 고향 화순(和順)이고, 그 중심엔 동그라미와 자애원이 자리하던 시절이다. 그래 서울에 있으나 늘 그곳을 이처럼이나마 기웃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를 핑게 삼아 마음으로 늘 비가 내렸다고 생각했었나... 아마 그랬을지도... 이 시기에 동그라미 쪽으로 좀 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엄마앓이였다는 것이...
    하지만 엄마를 한번도 엄마라 불러본 적 없이 살아왔고 또 살아갈 동그라미들에게는 이 시실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모친의 시대에는 가난한 시대였으니 그나마 의식주(衣食住)만이라도 채워주는 것이 사명이었다. 그 시절은 그랬다. 하지만 우리시대에는 그것만으로는, 그러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님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채워주는 것이 더해져야 한다는 소명이 나를 무던히도 압박하곤 했다. 그것의 결핍에 대한 헐떡거리는 눈물일까...
    돌아보면 내 20대(代)는, 정확하게는 내 80년대는 소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해질수록 아프고 시리고, 그래서 절망으로 휘청거렸던 폭풍우와 같은 광야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꺾이지 않고, 죽지 않고 어떻게든 버텼다. 딱히 집히지 않는 열등감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비는 그렇게 내 영혼을 적셨고, 어둠과 아픔을 하나 둘 씻어냈다. 그 시절의 슬픈 노래가 이렇게 노트에 하나 둘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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