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Poem)

시(詩), 나를 제물로 드리다.

(), 나를 제물로 드리다.

 

 

[하나]

 

난 한 번도 시()를 쓴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시는 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생각을 조금 묶어 둘 필요를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날짜를 보면 그때를 다시 호흡할 수 있는 날 빙그레 바라본다.

이게 좋다.

한편 지난 기억들이기에 미화(美化)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지금도 그 아픔들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싶다.

그 물기 있던 시간들을 만나고 싶다.

생각을 통한 시간여행을 즐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처음 글타래를 붙잡아 두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이다.

총신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 중이던 때다.

지금도 난 가끔 그 사당동엘 간다.

그곳엔 지금도 1983년 그 이후가 있다.

난 그 때가 그립다.

설익었었기에 비록 아프고 외롭긴 했어도 신기루 같은 소망이 있었으니까.

 

나이팅게일의 평복(平服)을 본 이후에 난 비로소 동화의 어린 시절로부터 깨어났다.

선지동산의 환상에서 깨어날 때 내가 그랬다.

그때부터 이름 모를 열병이라는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길었고 집요했다.

지금도 미열(微熱)의 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신화는 없다.

그러나 어쩜 신화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더 훈훈했는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마음의 생각들은 그때부터 붙잡아 놓은 것들이다.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만은 없어 이제 그것들로부터 자유하는 길로 나선다.

 

 

[둘]

 

참 많이 망설였다.

쑥스럽고 얼굴부터 붉어진다.

이렇게 바깥 구경을 시키기 위해서 만지작거리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네 20대의 방황의 편린들이 아직도 내 가슴에 박혀있고,

지금도 앓고 있는 네 30대의 휘청거림이 내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읽어보면 시리도록 아픈 젊은 날의 상처 자국들!

이젠 저 깊은 곳에 침전되어 그만 잊혀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도지는 그 무엇의 흔적들이 자꾸만 물기 있는 호흡을 몰아쉬게 한다.

 

갈기갈기 조각난 영혼의 몸부림인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사방에 흩 뿌려놓은 점()들인 줄 알았는데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못난 몸짓으로 고집만 부리는 줄 알았는데,

40년 가까이 그것들을 보듬고서 바라보니 하나의 선()으로 보인다.

비록 아직은 구불구불한 볼품없는 상처 입은 형상이지만.

 

난 지난날의 방황들을 사랑한다.

오히려 그걸 주신 나의 전부이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그분의 나를 향한 비전, 그게 있다는 사실에 난 힘이 난다.

그것만큼 난 아직 살아 있으니까.

주님이 날 살려 두실 거니까.

아직도 아무도 모르는 나의 묶음들이 내 안에 있다.

지금도 오직 그분만이 아시는 나의 조각들이 하나 둘 퍼즐링되고 있다.

사랑이기에 숨을 쉬는 것들이...

 

 

[셋]

 

()는 나를 감추다 깨어진 채 헐떡거리는 옹기그릇이다.

그렇게 숨어 살아온 시간인 40년 가까이 헐떡거린다.

솔직하게 나를 다 쓸 수 없어 부끄러운 시를 하나 둘 적으며 그 뒤로 숨었다.

그래 이건 내 시뻘건 죄를 토해낸 암호다.

이제 40년짜리 한 묶음에 담아 그분 발 앞에 올려놓는다.

내 죄행록(罪行錄)을 아실까?

내 참회록(懺悔錄)을 보실까?

내 애가(哀歌)를 받으실까?

시로 제물(祭物)된 나를 안아주실까?

 

 

주후 201956

부산 화명동을 품으면서

김충만 씀

 

 

  • 돌아보니 나는 1984년부터 시를 적은 것 같다. 그 이전에도 낙서하듯 긁걱거린 것 같은데 어느 때 어디선가 내 곁을 떠난 듯하다. 두 친구와 주고 받던 편지들도 참 아쉽다. 물론 총신에 입학하고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어머니의 편지도... 시를 대하면 그때의 '삶가락'이 복기되는 느낌이다. 시가 내 인생걸음을 다시 노래해 줄 줄이야. 그래, 한 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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