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설교(Preaching)
550주일 | 눅8.40-48
인생의 장애물, 그 두 가지 색깔
▪“더러는 …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7)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42b)
[원문 사역(私譯)]
8.7 – 그리고 다른 것이 가시덤불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가시덤불들이 함께 자라서 그것을 질식시켰다(성장을 막았다).
42b – 그런데 그를 모시고 갈 때에 무리들이 그를 밀고(질식시키고, 저지하고) 있었다.
‘막았고’(7)와 ‘밀려들더라’(42b)는 같은 단어다. 생사를 오가는 딸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길을 사람들이 막아 그를 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딸이 죽고 만다. 야이로의 기대와 소망은 이처럼 철저하게 질식되어(막혀) 버렸다.
1. 말씀을 심은 믿음을 따라가는 길에도 장애물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의 네 종류의 마음 밭이라는 비유를 해석(1-8 →9-15)하는 부분에서 “이생의 염려…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14) 경우에 사용된 ‘막았고’가 여기 ‘밀려들더라’라는 단어와 같다는 점이다. 말씀이라는 씨앗이 자라는 것을 가시덤불들이 성장을 막았고 그것이 자라지 못하도록 질식시켰다. 또한 무리들이 막아 저지하는 것 때문에 딸이 죽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것과 이어지는 상황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하나를 먼저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은 마음 밭이어도, 예수님의 뒤를 믿음으로 따라가는 길에도 장애물은 있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십자가의 고난이 먼저이고, 이어 부활의 영광이 따라온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받는다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주를 따르는 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소명과 사명의 길이다.
2. 믿음은 주를 따라가는 길에 만나는 장애물을 넘어선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있고 없고가 아니다. 믿음을 따라 주님을 뒤를 따라간다고 해서, 말씀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심어 그것이 자라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달려가는 마음 밭의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까.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회당장은 놀랍게도 ‘막히다 → 따르다’로 장애물을 돌파한다. 딸은 이미 죽었는데 그러나 ‘죽다 →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믿고 죽은 딸이 누워있는 방으로 간다. 사실 밀고 밀려드는 무리들에 1차로 막히고, 이어 2차로 죽은 것으로 끝난 일임에도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이겨낸다. 그러자 딸이 살아난 것이다. 이처럼 장애물을 극복한다. 무엇으로 인가? 믿음으로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럼 7절의 말씀이라는 씨앗은 왜 결실치 못하는가?” 가시덤불이라는 장애물은 예수님의 일행이 야이로의 딸에게 가는 길이 막힌 것과 같은 것이어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당연히 이번에도 가시덤불을 이기고 넘어서야 맞는 것 아닌가. 다름 아닌 이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서다. 그런데 천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그만 가시덤불에 막혀 버리고 만다. 말씀이라는 씨앗을 마음 밭에 심은 자는 가시덤불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가시덤불이지만 그것을 상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만 막혀 결실하지 못하고 끝이 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이다.
자, 앞서 야이로는 무엇으로 넘는가? 믿음이다. 그럼 이 마음 밭은 왜 그만 질식되고 마는가. 믿음이 없어서다. 그것이 14절이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그렇다.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였다. 믿음의 마음 밭이 아니라 가시덤불로 덮인 마음 밭이 결실하는 것을 막았다.
3.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믿음이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그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라 하신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이미 딸이 죽은 후라는 점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장애물을 넘어설 것을 말씀하시는가. 바로 믿음이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50) 회당장 야이로의 이 믿음이 결국 딸을 다시 얻게 되는 결실을 맛보게 된다. 인생이라는 길목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난다. 그때마다 주님께 삶에서 만난 문제를 토해내고, 그래서 주님이 도와주시는 소망의 길을 걸어가는 중에도, 그러니까 바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중에도 딸이 죽어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말씀이라는 놀라운 하늘의 씨앗이 뿌려졌어도 그의 마음 밭이 가시덤불로 덮여 있다면 그 기운에 막혀 결국 말씀이라는 씨앗도 결실치 못하고 끝이 난다 하신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의 심령 저 깊은 곳 마음의 밭이 ‘좋은 땅’처럼 믿음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자신의 내면세계는 가시덤불로 가득하게 해 놓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말씀이 열매를 맺는 게 왜 일어나지 않으냐고 생각(한탄)한다. 그리고 정작 ‘좋은 땅’으로 마음 밭을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열매를 얻고 싶은 욕심(목적)을 이루기 위해 종교적인 열심과 땀을 수단으로 사사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독교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만사형통이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물이다. 여기가 복음의 역설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산다라고, 말씀이라는 씨앗을 늘 내 삶과 기도와 인생의 밭에 심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어느 것 하나 결과(열매)를 만들어낸 게 없다면 내 마음과 심령 안에 자라고 있는 가시덤불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믿습니다 한다고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