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18] 도피성이신 그리스도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1-09-19
성경본문
여호수아 20.1~9

696주일 | 20.1-9

도피성이신 그리스도

 

마침내 모세에게 명한 도피성이 선정된다(7-8).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피의 복수’(avenger of blood)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6개의 도피성이 세워진 것이다(21.12-13, 35.6-34, 19.1-13, 21.13-38). 요단 동편에 3(8,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 골란)와 요단 서편에 3(7, 갈릴리 게데스, 세겜, 기랏아르바 곧 헤브론)를 각 지역에 골고루 만들어서 개인적인 동태복수’(Lex talionis)를 피하게 했다(35.11-15,32).

 

도피성

 

도피성은 레위 지파에게 준 48개 성읍 중에서 택했다(35.6-7, 21.13,21,27,32,36,ㅠㅠㅠ38). 하나님은 도피성과 레위 지파를 마치 누룩처럼 이스라엘 전역에 골고루 배치하심으로써 가나안이 피의 보복이라는 악순환으로(35.6-12),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거룩함 없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이다. 보통 어떤 곳에서든 가까운 도피성까지의 거리가 하룻길(50km 미만)이고, 또 길이 잘 닦여져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누구든지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여 피하기에 좋은, 그리고 빠른 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19.2).

하나님은 실수로 살인한 죄인들에게 그 죄 값을 자신이 친히 감당하지 않도록 배려하심으로써 사회적인 약자(弱者)들의 인권이 보호되도록 하신 것이다. 일단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해서 도피성으로 피하면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재판을 받고, 고의가 아니면 다시 도피성으로 돌아와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보호를 받다가(35.28,32),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의 몸이 되어 그의 고향에 돌아가 살 수 있게 된다(6).

하지만 그 이전에 도피성을 자기 마음대로 떠나면 피해자 측에 의해 죽임을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35.25-28,32). 또한 만일 고의로 살인한 것이 밝혀지면 그는 피해자 측에 인도되어 죽임을 당했다(35.11-12).

 

예수 그리스도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7.1)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요 ”(46.1)

    “주는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25.4)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진정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진정한 도피성, 즉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하는, 아무도 나의 생명을 보장(보증)해 줄 수 없는, 그래서 죄 가운데 이미 죽었던(2.1) 나를 살리셨다. 그분은 탕자의 아버지로서 나의 돌아옴을 그야말로 도피성이 되시사 은혜의 품에 안아주신다. 내가 영원한 안식과 쉼을 얻고, 또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의 받아주심(용납하심)이다.

그분은 어디서나, 언제나 나를 기다리신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찬송가 279장 후렴 ) 내가 그분에게만 돌아간다면 주께서 나를 맞아주지 않을 형편이란 없다. 이스라엘은 비록 고의가 아닐지라도 가나안에 할 일이 사람을 죽이는, 그런 의미의 미숙함과 연약함 밖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아브라함에게서부터 꿈꾸셨던 가나안에의 영광을 인간의 죄와 과오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주님께서 죄()의 무거운 ’(phortion)을 진 사람들을 부르실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진 자들아!”(11.28a)라고 부르셨는데 이때 이 갈라디아서 65절에 각각 자기의 ’(phortion)을 질 것임이니라.”라고 할 때와 같은 단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남이 대신 질 수 없는 자신의 무거운 짐이 있다. 그런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이 짐을 주께서 대신 담당하시면서 우리에게는 쉼을 주시겠다 말씀하신다. 잠시 잠깐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아니라 영원한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자 곧 복음의 은혜다.

오늘날도 역시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비록 희미할지라도 도피성의 한 모형(typology)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a) 때문에 교회(복음)는 이렇듯 사회적 약자(弱者)와 소외된 자들을 그리스도의 은혜의 품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하고, 저들이 원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은총을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나는 교회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하나님은 가나안에서 모든 지파들이 서로 평화하기를 원하셨다. 이를 이루기 위한 하나가 도피성 제도이고, 다른 하나가 레위 지파에게 가나안 전역에서 48개의 성읍을 주도록 하는 것이었다(20-21, 35.1-5). 하나님은 종교적으로(율법, 실로 성막), 제도적으로(도피성), 그리고 사람을 통해(레위 지파의 사역) 가나안다움이 유지되고 후대에 계속 계승되기를 기대하셨다. 이로써 정복과 분배에 이어, 그 땅을 거룩하게 보존하는 일이 준비된 셈이다.

도피성 문이 항상 열려있듯이 주 예수님의 품은 언제나 열려있다. 또한 도피성이 멀어서 갈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듯이 예수님에게로 이르는 길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5)

 

주님은 언제나 사랑(긍휼)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키신다. 죄인은 자신의 죄가 고의적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도피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무죄함이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도피성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 제사장이 죽어야만, 그러니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속죄는 그 효력을 발휘한다. 이것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의 영적 의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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