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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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9 - 아직 은혜의 여백(餘白)은 남아있다.
룻3.14-18
[룻, 새벽을 기다리며] 14절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의 여백] 15, 17절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나오미의 여백] 16, 18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아직 남아 있는 여백을 발견하라.
인생은 AS가 불가능하다. 인생은 연필로 쓰다가 틀리면 다시 지우고 쓰는 그런 게 아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경험만으로도 남은 여백은 내가 채우면 또 하나의 실패일 뿐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여백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채워주시도록 해야 한다!
남은 여백만큼 그는 행복하다. 아직 여백(餘白)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여백은 없고 그래서 끝이 났지만 하나님의 여백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믿는 자는 복되다. 하나님의 여백이 나에게, 우리 가정에, 자녀들에게, 우리 양무리교회 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하늘의 여백은 하나님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백의 하나님 아직 남아 있는 당신의 여백을 보라. 무엇으로 채워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나오미는 자신의 남은 모든 여백이 제로 포인트였음에도 그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워내고 있지 않은가? 아직 남아 있는 은혜의 부스러기들일지라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나님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하나님보다 먼저 나의 남은 인생의 여백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교만함이다. 아직 내 인생의 여백은 남아 있다. 아직 나의 여백이 채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