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할 일은 말씀을 주목하는 것이다(약 1.19-27).

20210703(묵상)

  

 

 

이제 할 일은 말씀을 주목하는 것이다.

Jas. 1.19-27

 

    본문 관찰

 

    말씀을 심다(19-21).

    말씀을 행하다(22-25).

    말씀을 거두다(26-27).

 

 

말씀을 행하는 자

 

하나님(17-18)에게서 인간(19- ) 쪽으로 주제가 이동한다.

야고보의 신학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의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려는 것은 심각한 오해요 왜곡이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의’(20),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21)이라는 번쩍이는 진리의 빛이 있다. 바로 이 말씀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가 성도라는(22-25),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이 말씀을 거두는 것이 경건이라고 말한다(26-27). 그러니까 말씀을 심어서 자라고, 자라서 거두는 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말씀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것이 야고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생활복음이다.

 

 

말씀을 심다(19-21).

 

21절의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내 속에 말씀을 심어주셨다. 그걸 내가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함께 나온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21b,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내 마음에 말씀을 심어주셨는데, 그것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 하신다. 신나는 일이다.

이것은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 성내는 것, 말하기만 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나의 구원에는 하등 유익이 없다.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의와 내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는 일이다(19).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모든 추악스러움과 노하는 성깔이라는 잡초를 뽑아버리고 오직 말씀만을 심는 일에 더욱 촘촘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말씀을 행하다(22-25).

 

    “여러분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그저 듣기만 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22, 표준새번역)

 

야고보는 두 종류의 사람을 소개한다. 먼저,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다(23a). 그는 들은 바 말씀을 곧 잊어버린다(24). 다른 한 사람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25b). 그는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잘 보면, 말씀을 듣고도 잊어버리느냐, 잊어버리지 않느냐가 관건임을 알게 된다. 자꾸 복잡해지는 감이 있지만 잊고, 혹은 잊지 않고의 문제는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야고보의 깊은 통찰에 따른 영성이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25a)을 잘 살피고, 또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은 들은 바 말씀을 기억하며 그대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자유의 복음을 깨닫기 위해 말씀을 상고하는 마음 없음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의 몫이다(25b). 듣는 것만으로는 안된다(22). 야고보 시대나 우리 시대나 귀()만 구원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게 문제다. 듣기만 하니까 잊어버린다. 그러니까 실행(실천)이 없다.

   

 

말씀을 거두다(26-27).

 

구원생활에 대한 생활복음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누구나 자신은 그런대로 말씀을 행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야고보는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도 경건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진짜 경건은 자기 를 제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듣기를 속히 하는 것까지 잘 해도 일단 말하기에서 절제하지 못하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고 정리한다(26).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이다(27a).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언행(言行)까지를 포함한다. 진정한 경건은 마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생활로 나타나느냐는 것까지가 경건이다. 원래 이 경건이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예배를 의미한다. 야보고는 경건을 에게 더불어 성취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이 귀하다. 너를 돌아보고, 나를 지키는 것까지가 경건이다.

그럼 무엇을 돌아보고, 또 어떻게 지키는 것일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 삶으로 나타나는 경건이자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말한다. 이것이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경건인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부스러기 묵상

 

경건이란 무엇일까?

욕심에 끌려 시험에 굴복함으로써 천국 상급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한다. 여기까지가 말씀을 뿌리고, 말씀을 행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신앙생활이다. 이렇게 되면, 그것이 경건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런데 결국 경건에서 걸린다.

늘 그렇지만 고아와 과부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때린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 주제(미션)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목회자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 후로 나에게 이 문제를 기대하시는 눈치다.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은 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마음에 한을 품고 하늘 아래 살아가는가를 보았다. 이것이 어쩌면 입양(入養)을 생각하게 한 씨앗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이 주제 앞에 세워주신 것에 늘 감사드린다. 감당할 수 있도록까지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 그렇다. 부족하지만 지난 2002년부터 오늘 말씀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행하며 살게 하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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