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게 보내는 유언장(벧후 1.1-21)

20201221-22(묵상)

  

 

 

성도들에게 보내는 유언장

2 Pet. 1.1-21

  

    구조

 

    문안(1-2)

    성도는 누구인가?(3-11)

       그리스도(3-4)

       성도(교회, 5-11)

    복음의 권위(12-21)

   

 

교회 안이 흔들리려고 할 때

 

사도 베드로에게 점차 순교가 임박하고 있다(1.14).

때문에 두 번째 편지(3.1)까지 쓰면서 로마의 핍박 아래 있는 교회를 위해, 동시에 거짓 교사’(거짓 선지자; 2.1)와 가르침에 노출되어 있는 공동체를 위해, 더욱 종말론에 대한 혼란(3.3-5)이 밀려 들어온 성도들을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대부분 복음 안에서 믿음에 서 있다(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교회 안에는 가짜 복음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2.1a). 위기요 위험이다. 때문에 베드로는 이들이 뿌린 가라지와 같은 거짓된 가르침에 교회가 휘둘림 당하지 않기를 소원하고 있다.

그래서 더 비장한 느낌일까. 그는 자신의 끝이 임박했음을 간파할 만큼 영적으로 깨어있을 뿐만 아니라(1.14b) 그 능력과 힘을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드리고 있다. 이렇듯 사도의 관심사는 주님의 몸됨 교회다. , 교회(성도)의 건강함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다. 이는 교회 밖으로부터의 박해에 대한 메시지인 베드로전서와 비교된다. ‘두 번째 편지’(3.1a)인 베드로후서는 교회 안으로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단)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흔들림 없이 재림의 소망을 따라 살아가기를 권면한다.

   

 

인사(1-2)

성도는 누구인가?(3-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14b)

 

이런 위기의 때에 주님이 하신 일이다. 예수님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3), 또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다(4). 왜 주시는가. 이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대하신 것이 있다: “여러분이 세상의 정욕 가운데 썩어져 가는 것을 피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4b, 우리말 성경) 이것이 앞서 그리스도께서 이것들(3-4)을 교회에 주신 것들의 이유다.

이것은 밖으로는 로마의 핍박을, 안으로는 주의 재림과 관련된 종말론에 대한 혼란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복음과 교회를 지켜내기를 바라는 유언’(1.14b)과도 같은 메시지다.

 

    [성도가 하는 일](5-7)

                                               사랑

                                         형제 우애

                                   경건

                             인내

                       절제

                 지식(영적 이해력)

          덕(선한 성품)

    믿음

 

동시에 이런 위기의 때에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5-7). 성도는 믿음 사랑에 이르도록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5-7). 거짓 선생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사수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히 함으로써(5-10),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11). 이것이 거짓 선생들과 다른 성도의 승리다.

아마도 이 서신을 받는 소아시아 성도들은 영지주의자(거짓 교사)들에 의해 세상의 정욕을 좇는 것는 부도덕한 향락주의와(2.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까지 일어났다(3.4).

그렇다면 누가 주의 몸된 교회를 지키는가? 믿음의 사람이다(1b,5a). 동시에 이 믿음을 교회로 하여금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자다(5-7). 교회는 믿음을 먹고 자라나 마침내 사랑을 열매로 거두어야 한다. 이것이 베드로가 건강한 교회로 회복되기에 맞춰 처방한 해법이다.

우리(너희)와 그들(거짓 교사들) 사이에 베드로가 서 있다. 그는 지금 교회 안에 들어온 주의 재림과 관련하여 진리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이단)을 염두에 두고서 두 번째 편지’(3.1a)를 쓰고 있다. 따라서 1(베드로후서)의 보이지 않는 배경은 역시 너희(베드로서의 첫 독자들은 핍박을 통해 흩어진 나그네들; 벧전1.1-2 참조)와 거짓 교사들이다. 지금 베드로는 그 사이에 서서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닥친 내적 위기를 직시하고,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베드로서의 독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다(1).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와 첫 독자들이 동일하게받은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그들, 그러니까 거짓 교사들의 이 믿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4b)도 아니며, 너희에게는 있으나 그들에게는 신적 성품들(5-7)과 그 열매가 없는 자이기에 옛 죄가 깨끗하게’(9) 되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11)을 얻지 못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 진리의 능력이란 말인가.

   

 

복음의 권위(12-21)

 

따라그러므로’(12a). 무슨 말인가. 베드로는 이 두 번째 서신을 통해 성도들에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거짓 선생들의 사악하고 이단적인 속임수에 물들지 않고 신적 성품들이라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유언과도 같은 이어지는 메시지. 그러니까 거짓 선생들과의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 셋이다. 그렇다면 거짓 선생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먼저, “너희가 이것을 알고 생각나게”(12-15) 하며 살 것을 말한다. 자신이 살아있을 때나 죽어 순교한 이후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굳게 서 있는, 이 진리를 알고 또한 언제나 생각나게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둘째로,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서 말하는 것은 꾸며낸 교묘히 만든 이야기(16). 하지만 베드로 사도가 친히 보고 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신적 경험으로부터 온 것은 저들이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리 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사도 자신이 목격자이기 때문이다(17-18).

셋째는, ‘더 확실한’(19a) 것인데 이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바로 기록된 말씀인 예언이다(19-21). 이것이야말로 거짓 선생들의 사사로이’(20) 푼 것에 불과하고, 그러니 사람의 뜻으로’(21) 교묘히 만든 거짓말(속임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말씀이 어둠을 비추는 등불처럼, 새벽을 알리는 샛별처럼 진리의 빛을 밝혀줄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나 교회를 허는 여우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교회와 그리스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목표하기 때문이다. 무릇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교회와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교회와 주를 통해 자기의 이익과 목적을 성취하려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가짜 복음(재림)을 전하는 거짓 선생들이 문제다.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은 물론이고,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까지 흔들 수 있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다른 복음이 진리 행세를 하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이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점차 진리는 힘을 잃고 약해지면서 영적 면역력이 급속하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17) 분명 신앙과 교회의 위기다. 결국 영적으로 성장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도들로부터(12-15), 하늘로부터(16-18),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에 집중하라(19-21)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12-21). 그래서 마지막 권면이 인상적이다: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8a) 이것이 거짓 교사들과 가짜 종말론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이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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