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교향곡 제2악장, 직장생활입니다(벧전 2.18-25).

20010704(묵상)

  

 

 

제사장교향곡 제2악장, 직장생활입니다.

1 Pet. 2.18-25

  

본문 관찰

 

1사환들아, 순복하라(18-20)

2고난의 본이신 그리스도(21-25)

   

 

고난의 본이신 그리스도

 

   제사장교향곡

   서 곡 - 듀 엣(duet, 2.11-12)

   제1악장 - 국 가(2.13-17)

   제2악장 - 직 장(2.18-25)

   제3악장 - 가 정(3.1-7)

   제4악장 - ‘마지막으로’(3.8-12)

 

거룩한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사환(使喚, 하인, )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두 신분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사환은 당시 가정에 고용된 종들을 의미하는데 오늘로 말하면 삶의 전 영역에서의 일하는 고용인(아랫사람, 노동자)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과 -당시 노예들 가운데 회심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핍박 때문에 노예 신분으로 추락한 흩어진 나그네들이 많았을 것이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을 조화시키지 못하고서 영적 딜레마에 빠져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제사장의 신분으로 종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삶을 연주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셨음에도 종이 되어 십자가를 온 몸으로 지시고 섬김의 종으로서 자신의 전부를 연주하셨다. ‘제사장된 종’, 이것이 흩어진 나그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이다. 사환(使喚)의 노래는 충분히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간다.

   

 

1. 사환들아, 순복하라(18-20)

 

순복의 멜로디는 사환들(노동자)에게도 요구된다. 순복은 주인(고용주)의 성품이나 스타일, 그리고 일하는 방식에 상관없이 연주해야 할 사환의 자세다. 특별히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이처럼 살아야됨이 눈에 띈다. 순복해야 할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것은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19a, 이는 부당하게 받는 신앙적인 핍박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20b)에도 참으면서 그 때에도 감정을 잘 다스리고 순복의 멜로디가 분노와 불순종의 멜로디가 됨으로써 삶의 노래가 단절되지 않기를 권고한다.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하기가 쉽지 않은 고난도(高難度) 순복이 아닐 수 없다.

거룩한 제사장이 된 은총과 영광에는 또한 거기에 걸맞은 헌신과 충성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거룩과 사랑과 성숙을 요구받고 있는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의 설교가 좀 더 실재적으로 감()이 오는 것 같다. ‘두려움은 곧 아름다움이 된다(18 19,20). 이처럼 되기까지는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19)이라는 깊은 영적인 터치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20b)이라는 정말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따로 없는 것까지도 요구되는 것이 사환의 윤리요 영성이라신다. 이쯤 되면 정말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이상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19b,20b) 말하면서 하나를 더 추가한다: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21a, 공동번역)

   

 

2. 고난의 본이신 그리스도(21-25)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주님이 선을 행함으로 애매한 고난을(19,20) 먼저 받으셨다는 점이다.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21a), 그러니까 사환들인 우리가 주인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주님도 앞서 이와같은 일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점이 순복하며 살아야 할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주신 ’(example)이며, 그래서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명령으로(21b), 그러니까 주님처럼 연주해야 할 말씀의 부흥(revival, 29.7, 5.43-48)인 셈이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29.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다시 한 번 구약에 탁월한(능통한) 설교자인 베드로를 만난다. 그는 주님의 고난을 이사야 53장의 성취임을 통찰한다(53.4,5,6,9,12). 오직 주님만이 고난의 유일하고 참된 본이다. “부당하게, 선을 행함으로”(19,20) 고난을 받으셨지만 죄와 궤사(속임, 22), 욕과 위협(23) 없이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23b-24a) 이 어찌 내가 주님처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노래를 연주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내가 해야 할 일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1.17)이신 심판하시는 자’(23b, 하나님)에게 맡기고, 또한 주님처럼 참아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사환(使喚)의 모델은 요셉이다.

그는 형들의 모함 때문에 애굽왕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의 하인(사환, , 37.28,36, 39.1,17,19)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형들이나 아버지 야곱을, 그리고 자신을 모함하여 감옥의 죄수가 되게 한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도, 즉 자신의 상전과 애굽에 대해서 결코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18-19절을 모범적으로 성취함으로써 예수님의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였다.

사환(使喚)은 아랫사람을 총칭하는 의미로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사환의 영성은 가정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윤리인 셈이다. 사실 너무 어렵기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어설픈 만큼 자꾸 틀리고, 내게 맞는 옷이 아닐 때처럼 익숙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별 진보가 없고, 나에게 너무 버거운 수준이라 싶어 지나가 버리고 싶고, 그럴 때마다 심한 영적 혼돈이 나를 괴롭힐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때로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19a)도 참기는커녕 길길이 뛰며 흥분하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변명을 만들고, 이쪽저쪽에 대고 험담하고, 뭐 그러면서 살아가겠지. 이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오늘의 필름일 수 있다. 부끄러운 만큼 꼭 감추어 두고 있지만 천국에 찍힌 몰래카메라에 잡혀 그만 언젠가 천국에서 주님이 온 성도들 앞에서 상영하실까 봐 조금은 겁난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산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만큼 멋진 삶의 연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동시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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