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배달되었습니까?(벧전 1.1-2)

20200701(묵상)

   

 

 

편지, 배달되었습니까?

1 Peter. 1.1-2 

 

   본문 관찰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2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과

      그리고 피뿌림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고 평강

      그것이 더욱 많을지어다.

   

 

택하신 자들이지만 나그네들에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편지쓰기를 시작한다.

사도(Apostle)라는 말의 뜻은 보냄을 받은 사람혹은 대리인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대리인이다는 고백이다. 그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람이다. 참 아름다운 고백이다. 주님은 베드로() 없이도 존재하시지만 주님 없는 나(베드로)는 상상 할 수 없고, 또 그 준재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본다.

 

 

흩어진 나그네(1)

 

베드로는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초대교회의 큰 별이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대단히 절제한다. 장황하지 않다. 간단하다. 무엇인가 이야기할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일지감치 물러나 있다. 자신은 보냄을 받은 자일 뿐이다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예수님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도라는 직분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된 임을 앞세우고 있음을 주목한다.

나 역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뒤에 숨을 수 있어야겠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자신이 누구인가를 진심으로 아는 사람은 이렇게 산다. 비록 편지를 써서 격려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인간 베드로에게 집중하지 말아 달라는 잔잔한 선언이다. 그는 왼손이 모르게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남고 싶어한다. 성경의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한결같이 이인자로 자처하였다. 주님을 높여 드리는 사람들,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가 뭘 하려고 하는 순간 거기에는 사람 냄새만 난다. 은혜가 떠나면 율법이 도래하고, 율법이 앞서면 상처뿐인 영광만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 아닌가(1.7, 6.5, 1.1).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을 심령에 품는다. 그들은 이 서신을 받는 대상이다. 베드로는 어떤 이유 때문에 흩어진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아마도 이 서신의 독자들은 AD 64년에 시작된 네로(NERO, AD 54-68)의 박해 때문에 소아시아의 각 지역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는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 핍박과 환난의 때였다.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과 친척 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기반들을 다 포기한 채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다. 때로 외롭고, 쓸쓸하고, 눈물나는 삶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편지를 썼다.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17b)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2.11a)

 

나그네그는 누구인가? ‘흩어지기 이전이나 흩어져 지내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이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거처(居處)는 이 세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본향(本鄕)에 대한 소망을 다같이 갖고 살자.’ 이것이 나그네라는 말 안에 들어있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나그네는 이 세상에 사나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본향(本鄕)을 사모하는 나그네 신앙이 베드로가 이야기하려는 본서의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은 바울선교의 영향권 밖에 있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까지 세밀한 관심을 갖고 계셨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때에 베드로를 통하여 그들을 위로하시며, 환난과 핍박으로부터 그들을 사랑의 날개 안에 품어 주셨다.

   

 

은혜와 평강(2)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인 흩어진 나그네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핍박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이다. 그러나 신분에 있어서는 흩어진 나그네 =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비록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의 거룩한 신분은 바뀔 수 없다. 이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베드로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흩어진 나그네들을 친히 아신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아멘이다. 내가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버지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또한 흩어진 나그네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흩어진 나그네로 살지라도 거룩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령 하나님은 택하심을 입은 자인 우리들이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흩어진 나그네로 지내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무엇을 기대하시는가? ‘거룩이다. 베드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흩어진 나그네의 서러움을 극복하는 방법인가와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의 수준이다. 거룩을 추구해야겠다. 하나님의 관심은 나의 거룩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흩어져 지내는 고난과 고통은 성령과 무관한 일이 아님을 통찰한다.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저 좋고,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축복이 되는 그런 것들만이 아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 특별히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고난 속에 살았다는 점을 주목한다. ‘성령받음은 고난을 면제받기 위함이 아니라 고난 그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거룩한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

역시 흩어진 나그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구약 제사의 피뿌림을 서로 연관시켜 설명한다. ‘이 땅에서 성도가 누리는 행복은 고난의 십자가이다. 영광의 면류관은 저 땅에서 주어진다. 이 땅에서 영광만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고통과 시련을 통과한 후에 정금처럼 빛나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 아닌가.

   

 

부스러기 묵상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편지는 이미 하늘을 떠났다.

이 편지는 소망과 위로의 편지가 택함 받았으나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배달되었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Grace and peace)이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하게 부어지기를 축복하고 있다. 누가 이렇게 말 할 수 있는가? 시련(핍박, 고난) 속에 있는 축복을 아는 자다. 베드로와 흩어진 나그네들의 영적 수준이 같다. 그러기에 이런 역설의 진리를 담대하게 편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베드로는 그들을 믿었고, 그들은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말씀을 전하는 자(설교자)와 듣는 자(회중)의 눈높이를 같음이 퍽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그럼 누가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믿음으로 그 고통(고난, 핍박, 환난)을 견디어 내고 있는 사람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은 데마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딤후4.10) 이미 세상 속으로 흩어져 버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은혜와 평강의 축복은 비록 고난스럽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신앙으로 사는 자의 몫이다(6.33-34). 그러므로 위로자 되시며,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앞으로 나아가는 아침이다.

나에게는 어떤 편지가 배달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시는 편지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다. 오늘도 내가 받아야만 할 하나님의 편지를 찾아 말씀 앞에 선다. 묵묵히 말씀을 펴 본다! 그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으니까. 이 속에 모든 길이 있으니까. 말씀 안에 행복이 있으니까. 변함없이 말씀에 귀 기우려 본다. 주님의 위로와 소망의 소식이 찾아 올 것을 믿으며 말이다. 한편, 나는 베드로처럼 고난과 시험과 환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편지인가? 내 편지도 잘 전달되고 있는가? 나의 편지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본다. 오늘 내일 사이에 -집사님 아버님께 다시 한 번 더 걸어 다니는 편지(심방)가 되어야겠다. 주님이 나에게 보낸 편지는 언제나 배달되듯 내가 주님께 보낸 편지도 항상 배달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이 은혜를 함께 나눌 복된 오직 목양(牧羊)의 길!’이 또 하나의 싱싱한 편지이고 싶다. 내 목회의 멘토(Mentor) 가운데 하나인 베드로를 만나는 묵상이 시작부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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