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인간을 위해 인자(人子)가 되셨다(히 2.5-18).

20220702b(Heb. 2.5-18)

  

 

 

그리스도, 인간을 위해 인자(人子)가 되셨다.

 

 

    본문 관찰

 

    인간 구원을 위해 낮아지신 예수(5-9)

       하나님이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고난 받은 대제사장이신 예수(10-18)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수치와 영광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3b)

 

천사가 뭐길래!” 이토록 집요하게 예수님과 대비하게 될까.

그만큼 히브리서 독자들은 [천사숭배사상]에 깊숙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탁월함을 다시 깨닫게 되는 부분이 오늘 본문이다. 저자는 천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곧바로 예수님께로 시선을 집중한다. 앞에서 그분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권면의 말’(설교)을 하더니(1.1-2.4), 이번에는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한다. 이것이야 말로 천사가 넘볼 수 없는(5), 천사와 공유될 수 없는, 그래서 우리의 온 시선을 오직 예수님께 모아지도록 이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10-18). 왜 그러셨는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다(5-9). 이제 천사가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임이 분명해졌다(1.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하는 묵상이기를 기도한다. , 그럼 예수님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비하와 승귀(5-9)

 

세상(만물)은 천사들의 무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무대다(5-8a, 8.4-6).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죽음의 고난 받으심”(9a)이라는 수치의 자리까지 친히(‘스스로’) 낮아지셨다. 이것은 천사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9b)셨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7a,9a) 되시는 자리까지 낮아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죽으심이라는 수치의 자리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7b,9a) 영광의 자리로 높아지셨다(2.5-11 참조).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천사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를 보게 되었다(“예수를 보니”-9a):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8a) 이것이 예수님의 자기 비하(卑下, 낮아지심)라는 수치와 승귀(昇貴, 높아지심)라는 영광이 갖는 십자가 신학(神學)이다.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구조는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나”(8a) 죽음의 고난 받으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9)이라는 죽음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없으나”(8a) 예수를 보니”(9a), 즉 인간 구원을 위해 낮아지신 예수님은 마침내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9a) 자리로 높아지셨다. 이것이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사이에 들어있는 비밀이다. 그럼 왜 이처럼, 그러니까 비록 잠깐 동안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7a,9a) 사셨을까? 그 이유가 곧바로 이어진다.

 

 

구세주 - 인간을 위한 사역(10-18)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10)

 

예수님(‘구원의 창시자’)은 우리(‘많은 아들’)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위해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10).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구세주로서의 사역을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하심”(10b)이라고 통찰한다. 놀라운 시각이다. 어떻게 고난이 온전함의 기회가 되는가 말이다. 이로써 유대교와 복음 사이에서 고난(핍박) 때문에 흔들리는 성도들이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된 셈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주님(거룩하게 하시는 자)이 우리(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다는 점이다(11). 그 이유가 더 눈물나는데 그것은 다 하나에서”(11a) 났기 때문이라 하신다. 이를 위해 히브리서 기자가 독특하게 인용하는 다음 몇 성경이 눈에 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12, 22.22)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13a, 8.17)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13b, 8.18)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님이 나를 아들’(10a),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11a), ‘형제’(11b)라 부르시고, 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온전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으니까. 주님은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14a)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14-18). 이것은 천사를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는 것을 보다 명백하게 한다(16).

그럼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 구원자가 되신, 즉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신 목적은 무엇인가(14a,17a). 첫째,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14b)기 위함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사탄에 대한 사망 선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1.27, 3.15). 둘째,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15). 이것이 바로 자유의 복음이 아닌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17b)시는 분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셨다.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주님이 품으신 사랑의 대상은 천사가 아니라 인간(‘백성’=‘’)이다. 그는 자신을 이처럼 산 제물로 드리는 대제사장으로서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셨다. 이것은 몸소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18a). 그렇다면 감히 누가 이 일을 천사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천사숭배론은 거짓 신학이다.

 

 

부스러기 묵상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6a)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11)

    “그러므로 저가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17-18)

 

무엇보다 18절은 첫 번 히브리서 독자들의 가슴에 메아리쳤을 것이다.

지금 저들은 다름 아닌 시험고난이라는 코드(code)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유대주의(율법주의)자들을 따라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것인가(6.4-6, 10.26-29), 아니면 주 예수의 복음 안에서 영적(靈的) 눈을 뜸으로써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갈 것인가(4:16)를 결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사람이 무엇이관대!”(6a)이다. 주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랑의 대상은 천사가 아니다(5,16). 무엇보다 우리(‘’)와 당신을 동일시하신다(11). 그러기 때문에 시험과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마침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을 위해 친히 고난 받으심을 마다하지 않으셨다(10,18). 이를 위해 인자(人子)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친히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7a,9a)가 되는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비록 잠깐이기는 해도(그래도 무려 33이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자신을 피조물의 자리로 비하(卑下)하신 것, 이는 가히 겸손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말은 쉽지 조그마한 이해관계만 걸려도 본성이 다 드러나는 나로서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이제 천사숭배라는 거짓 복음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예수 이름 외에는 천하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 히브리서의 첫 독자들은 천사숭배라는 그릇된 사상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오늘 우리시대에는 무엇이 순전한 복음에로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지 .

나를 당신과 동일하게 높여주신 주님, 아들(자녀)이며 형제라 칭해 주신 주님, 고난에서 영광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변함없으신 주님, 받을 자격이나 공로 없어도 이처럼 큰 사랑과 은혜를 주셨으니 이제 나도 받은 바를 주님과 교회와 복음을 위해 다시 돌려드리는 삶으로 내 코에 호흡이 멈추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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