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빈부의 차별을 덮는다(약 2.1-13).

20210704(묵상)

  

 

 

사랑은 빈부의 차별을 덮는다.

Jas. 2.1-13

 

    본문 관찰

 

    관계의 자세(1-7)

    관계의 복음(8-13)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목회자다(12.17, 15.13-21, 21.18, 1.19, 2.9).

그래서 그의 목회적 권면이 빛난다. 목회라는 생생한 생활 현장에서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들이기 때문에 더 실재적이다. 한편 성도간의 차별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성경적 원리에 따라 목양지침을 써 내려간다.

   

 

관계의 자세(1-7)

 

    “내 형제들이여,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1, 우리말성경)

 

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아야 하는가? 야고보는 차별의 문제를 다루면서 1절에서 중요한 사실을 언급한다. 그것은 주님의 영광과 나의 믿음에 결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1). 영광의 주님을 믿는 자가 사람 차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자(富者)와 빈자(貧者)의 예를 구체적으로 든다(2-3).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는 달리 우리들 사람은 외모를 본다는 것을 이미 아신다(삼상16.7). 솔직히 어려운 부분이다. 때문에 야고보는 이 문제로부터 인간관계의 영적 원리를 이끌어 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적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차별은 서로의 관계가 일그러지게 만든다. 그리고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게 할 뿐 전혀 무익하다(4). 그것은 동기 자체가 악하기 때문이다(2-3).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기준과 방법은 다르다. 가난한 자는 하나님이 택하여 쓰시고, 하지만 오히려 부자는 가난한 자를 괄시하는 것 밖에 하는 일이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압제하고, 고소하고, 신앙의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기까지 한다(5-7). 그런데도 부자 편에 서서 빈자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한다면 그가 과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관계의 복음(8-13)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13b, 우리말성경)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행(罪行)이다. 주님의 말씀이 차별하는 문제를 결코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8, 19.18) 그러므로 차별은 사랑의 법을 어기는 죄가 된다(9a). 감히 율법의 정죄를 누가 피할 수 있으랴(9b). 이처럼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사람을 차별해서 상대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10-11). 그것도 최고의 법’(8)을 범한 것이 아닌가.

야고보는 인간관계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히 한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이 죄라 명하신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문제는 사랑이다. 율법이 명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유의 율법’(12)이다. 사랑으로 율법을 이루면 이웃 사랑의 율법이 더 이상 짐이 아니다.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사랑으로 행하기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며 산다. 율법은 사랑이 무엇이라 안내하는 표지판이지만 사랑은 그 율법이 죽어있는 계명이 되지 않도록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게 사랑의 힘이다.

역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 신앙생활 역시 미래의 심판과 관련된 언행(言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12).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25.40)이 주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못이 되어 박힌다. 빈자(貧者)에게 긍휼(矜恤)을 베풀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판 역시 냉정하게 집행될 것이다(13a). 그러나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13b). 나의 언행이 미래에 임할 심판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씀 앞에 정신이 바짝 든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면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이 여러분을 범죄자로 판정할 것입니다.”(9, 우리말성경)

 

야고보는 성도의 언행생활(言行生活)을 교회에서의 사람 차별을 예로 설명한다.

교회(회당, 2, 5.14)마저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면 야고보는 더 이상 구원생활에 대해서 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이웃사랑이라는 말씀에서, 그것을 가장 구체적으로 사람 차별이라는 문제를 통해 생각해 보고 살도록 권면한다. 가난한 자를 택하여 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겠다.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이 적은 목회 현장이지만 그래도 COVID-19를 통과해 가는 시기이기에 이 부분에 민감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 야고보서 묵상을 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case)를 나열하는 것은 생략한다.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말로 만 되는 게 아니다. 한 공동체의 건강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감에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사랑마저도 말로 하고, 또 설명하고 있자니 좀 그렇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면(1)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을 통해 이 사명을 성취해야 하지 않을까. 내 느낌과 생각과 판단이 언제나 그릇될 수 있다는 겸손함, 그래서 내 방식대로 사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방식대로 사람을 취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의 최고의 법인 사랑을 이루어드리는 자로 서고 싶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셨듯이 나도 주님을, 그리고 성도들을 그처럼 사랑하며 살아보자. 오늘은 누구를 사랑하며 살까.

 

   

제목 날짜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거둔다(히 6.9-20). 2022.07.07
신앙은 신행일치(信行一致)로 열매를 맺는다(히 5.11-6.8). 2022.07.06
그리스도, 자비로운 대제사장(히 4.14-5.10) 2022.07.05
그리스도, 여호수아보다 우월하시다(히 4.1-13). 2022.07.04
모세 시대의 실패를 생각하라!(히 3.7-19) 2022.07.03
그리스도, 모세보다 우월하시다(히 3.1-6). 2022.07.01
그리스도, 인간을 위해 인자(人子)가 되셨다(히 2.5-18). 2022.07.01
인간, 말씀에 순종하라!(히 2.1-4) 2022.07.01
그리스도, 천사보다 우월하시다(히 1.4-14). 2022.06.29
그리스도, 선지자보다 우월하시다(히 1.1-3). 2022.06.29
히브리서 맥잡기 2022.06.28
신행(信行)은 기도를 통해서 건강을 유지한다(약 5.13-20). 2021.07.07
신행(信行)은 인내로 성취된다(약 5.10-12). 2021.07.07
내일을 보는 자는 오래 참는다(약 5.1-9). 2021.07.07
오늘이라는 시간에 내일을 담으라(약 4.11-17). 2021.07.06
세상과 다르게 사는 신행(信行)이 있다(약 4.1-10). 2021.07.06
참 신행(信行)은 위로부터 난 지혜로 말미암는다(약 3.13-18). 2021.07.06
한 입의 찬송과 저주는 마땅치 않다(약 3.1-12). 2021.07.0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4-26). 2021.07.02
사랑은 빈부의 차별을 덮는다(약 2.1-13).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