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다르게 사는 신행(信行)이 있다(약 4.1-10).

20210708(묵상)

  

 

 

세상과 다르게 사는 신행(信行)이 있다.

Jas. 4.1-10

 

    본문 관찰

 

    다 툼(1-3)

    세상과 벗됨(4-5)

    더욱 큰 은혜(6-10)

 

 

다툼 너머에 있는 더욱 큰 은혜

 

세상 지혜(3.14-16)와 하늘 지혜(3.17-18)를 다시 생각한다.

야고보는 세상 지혜에 해당하는 싸움과 다툼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으로 편지를 이어간다. 여전히 세상과 벗되어 살아가는 성도들, 하지만 성도라는 이름은 있으나 교만함에 빠져 바른 신행(信行)에서 이탈해 있는 성도들, 또한 그럼에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에게 던지는 야고보의 메시지는 과연 성도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새롭게 조망하게 해 준다.

   

 

다 툼(1-3)

 

자문자답(自問自答, 1)으로 주제가 드러난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멀어질수록 싸움과 다툼이 나타나는데, 이같은 현상은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1)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각 지체들이다. 그런데 공동체가 싸움과 분쟁에 휩싸여 있다. 야고보가 신행(信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서신을 써 내려가는 목회적인 이유와 목적이 계속되는 문제들 속에서 좀 더 분명해지고 있다. 어쩌면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이 심각한 내분으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게 다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닌 세상(정욕, 마귀, 3.15)적인 것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욕심과 탐심은 살인과 다투고 싸우는 것을 낳는다(2). 결국 그래봐야 얻지 못하고, 능히 취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게 할 짓인가? 이러한 문제 제기 후에 야고보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기도(2b-3). 정욕(情慾)으로 쓰려고 구할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를 구해야만 한다(1.5). 진정한 평화는 위로부터 온다는 뜻이다. 공동체의 건강은 다툼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들이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데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문제는 욕심(정욕)이다. 이미 야고보는 이 문제를 경고했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 이것이 불신행(不信行)이다. 위로부터의 신령한 은혜가 죽었으니까 세상으로 난 가짜 지혜들이 판을 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결국 신행(信行)에 따른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급속하게 와해되는 것 아닌가. 이게 다 인간들의 욕심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이다. 실상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교회의 몰골이다. 그럼에도 기도하고 있는 너희’(2)가 꼭 내 모습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정말 믿음으로 산다는 게 뭘까싶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세상과 벗됨(4-5)

 

아마도 교회의 내분(싸움과 다툼)이 간음하는 여자들 때문에 생긴 것 아닌가 싶다. 혹은 정욕 때문에 공동체의 심각한 균열을 가져온 무리들을 향해 영적 간음이라 질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참으로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은 세상과 친구됨이며, 그것만큼 하나님과는 원수되는 길이기 때문이다(4). 죄로 타락한 세상과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신행(信行)으로 부르신 하나님, 위로부터 난 지혜를 따라 이것을 성취하며 살도록 우리를 격려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이 정도(正道)를 버리고 정욕과 욕심으로 세상방정식을 따라 살아가는 무지한 우리에게 이처럼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이 결코 헛되지 않게 되기를 기대하신다. 이분이 섬길수록 더욱 귀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5, 표준새번역) 불신행(不信行)을 따라 결국 욕심 사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과 벗된 나에게 하나님은 성령님이 회복되는 그날을 몹시도 그리워하신다는 말씀에 코끝이 찡해 온다.

   

 

더욱 큰 은혜(6-10)

 

그러나’(6a) 희망은 있다. 야고보의 호통침과 위로가 적절하게 조화되고 있음이 부럽다. 아직은 위로함보다는 날카로움에 익숙하지만 야고보의 마음이 조금은 전달되는 듯 싶다. 그는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6, 표준새번역) 신행(信行)의 본말이 세상과 친구됨이라는 불신행(不信行)으로 전도된 마당에 성령님과 하나님으로부터의 큰 은혜를 주목하도록 하는 야고보, 그의 영성의 깊이를 본받아야 할 것 같다. 6절의 희망이 있으므로 7절 이하의 그런즉이 빛을 발한다.

 

    [명령 10가지](7-10)

    ①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② 마귀를 대적하라.

    ③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④ 손을 깨끗이 하라.

    ⑤ 마음을 성결케 하라.

    ⑥ 슬퍼하라.

    ⑦ 애통하라.

    ⑧ 울지어다.

    ⑨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⑩ 주 앞에서 낮추라.

 

공동체의 분쟁은 영적 전투로 해결된다. 마귀는 대적하고, 하나님은 가까이 함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고,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신행(信行, 2.14-26)은 말(, ,3.1-12)과 지혜(3.13-18)로 나타나는데 아직도 다툼이라는 정욕(욕심)으로 세상과 벗되어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음을 야고보는 성령님의 탄식으로 아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로의 희망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과 원수된 불신행(不信行)으로부터 돌아서야겠다.

탕자의 발을 붙잡아 강제로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시는 방식을 취하지시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생각한다. 때문에 아버지와 원수된 세상의 뜰에서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끝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직도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거룩하지 못한 영혼의 흔적들이 춤추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행(信行)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1.21)를 따라 성령님이 하시지만(5), 그럼에도 하나님은 의지적인 하라!’(6-10) 목록표가 나로부터 시작되기를 명하신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의 길은 불신행(不信行)으로 밖에 열매맺지 못한다(3.14-16, 4.1-4).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탄식하신다. 그 은혜의 부스러기가 그래도 우리 안에 있기에 위로부터 난 지혜’(3.17-18)의 한줄기 빛을 갈망하게 된다. 그게 아니었음 우리 역시 세상과 벗되어 욕망과 욕심을 따라, 결국 사망행(死亡行) 열차를 타고 지옥을 향해,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지옥문을 통과해 버렸을 것이다.

야고보를 따라 여기까지 와 있는 지금, 신행(信行)마저도 우리가 만들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은혜로 막아주시기 때문에 불신행(不信行)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력구원(自力救援)이나 신인협력구원(神人協力救援)이라는 오물덩어리는 결국 인생으로 하여금 세상 지혜의 틀에서 망난이가 되게 할 뿐이다. 그래도 될 줄로 알고 얼마나들 거들먹거리는가. 그럴수록 위를 보라(6-10)는 야고보의 권면을 따라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향해 영혼의 창을 열어보는 믿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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