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서라!(히 11.11-16)

20220720a(Heb. 11.11-16)

  

 

 

믿음으로 서라!

  

 

    본문 관찰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믿음은 희망이다.

 

성경은 사라의 생애를 믿음이라는 코드에 담는다.

성경에서 건강한 부부를 만나는 것은 무척 큰 행운이다. 사라는 인간의 한계의 끝에 이성의 추를 놓은 게 아니라 그 곳에 믿음으로의 신앙을 세운다. 그리하여 이미 늙어 단산한 몸이었으나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사라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이라는 믿음의 씨앗이 주어진다. 이것이 사라가 보여준 믿음이다.

 

 

사라(11-12) - 잉태하기

 

                                                   → 출산(C)/성취

                         → 잉태(B)/언약

    단산(A)/늙음

 

A(단산)에서 B(잉태)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는 사라의 능력이나 힘에 의해서인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늙었고, 생물학적으로는 출산할 수 없는 그런 때였다. 그럼 무엇인가. 때문에 믿음으로’(11a). 잉태와 출산이 믿음으로였다면 그럼 이 말은 또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출산하였을 때, 이와 관련한 가정의 불화가 극에 달했를 때 이처럼 말씀하셨다:

바로 사라에게서 난 자. 그런데 그 사라(아브라함)는 이미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을 때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그럼 무엇인가.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 그럼 이삭은 믿음으로 받은 선물이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처럼 주석한다: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11b)

사라는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셨다. 그리고 그 사라에게서 난 자인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을 이루사 아브라함 언약’(15. )을 성취하신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12)

 

 

믿음의 사람들(13-16) - 본향가기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16a)

 

믿음은 하나의 씨앗이다. ‘이 사람들’(아브라함과 사라, 이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결과(성취, 완성)를 끝내 보지 못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하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13a)기까지 참여했을 뿐이다.

이렇듯 믿음은 내가 심어 아들의 대()를 지나 손자와 증손의 대에서 거두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라는 씨앗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진행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16a)

 

나그네는 지금 걷는 길을 만족하지 않는다. 그게 다가 아님을 알아서다. 비록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나그네임을 증언하였”(13b)지만 말이다. 그렇다. 이들은 자신들이 비록 나그네 인생여정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본향 찾는 자’(14)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 본향이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24.2b)던 갈데아 우르(Ur)를 생각한 것이 아니다(15). 그들은 하늘의 본향 찾는 자요 이를 사모하는 자들이었다.

아마도 히브리서 가자는 구약이라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의 빛을 본 자들로서,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을 만난 자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저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스러기 묵상

 

    “형제들아 나는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들이다.

다시 구약, 율법, 제사, 할례, 동물의 피와 같은 뒤에 있는 것을 향해 돌아갈 수 없다. 마치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믿음대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믿음을 따라 약속이 이루어지는 하늘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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