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9c(Heb. 11.8-10)
믿음으로 가라!
본문 관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수24:2-3a)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7:2-4)
아브라함은 셈의 후예다(창11.10- ).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창11.27). 그가 성장한 고향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 창11.31, 수24:2-3)는 고대 문명의 중심지로써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였다. 이러한 가정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하란(Haran)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Mesopotamia)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셨고, 그래서 하란으로 가 거기서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거한다(행7.2-4). 그리고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 하란에 있을 때 그를 찾아오셨다(창12.1,4b).
아브라함(Abraham)
아브라함을 생각한다(느9.7-8). 그의 가정은 좀 복잡하다.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할 때 삼형제 중(中) 큰 동생의 가정은 아버지와 동행하지 않고 갈대아 우르에 그대로 남았고, 작은 동생은 아버지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고(그런데 어찌 된 게 조카 롯만 아브라함과 동행한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는다(창11.27-32).
여기까지가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오기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와 대면한 첫번째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행7.2-4).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에선지(아마도 아버지 데라가 죽을 병에 걸린 것 같다) 첫 번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소명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하란에 머무르고 있다(창12.4b).
그리고서 하나님은 하란에 머물고 있는 아브라함을 창세기 12장에서 두번째로 찾아오신다. 물론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 1절 앞에 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셈의 후손이다(창11.10- ). 이렇듯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두번째 만남이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 내가 네가 지시(指示)할 땅으로 가라.”(1) 첫 번 소명에 비하면 두번째 소명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 따른 복(福)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 더 흥미롭다(행7.2-4 → 창12.1-3). 마침내 하나님의 구속사는 아담 → 셋 → 에녹 → 노아(창5.1-32), 그리고 노아 → 셈 → 데라 → 아브라함(창11.10-32)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계시의 발전(progressive)이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를 맞는다.
순종하기
믿음은 삶(행동)을 동반한다. 단지 약속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행함이 있는 삶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이자(약2.14-26), 또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인”(1) 믿음의 능력이다. 이렇듯 우리(‘나’) 또한 보이지 않는 실체인 ‘약속’을 신뢰한다면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브라함의 복이다. 아브라함처럼 되기는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에서 비롯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3-34).
믿음은 결과를 예측하거나, 미리 예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약속에 대한 철저한 신뢰 그것뿐이다. 이것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믿음이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이 갈대아 우르가 아닌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오늘을 그곳에 더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그리고 순종함으로 응답한다.
이렇듯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먼저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아가도록 했으며, 또한 “갈 바를 알지 못하고”(8b)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하나만 믿고 행동하였다(창12.1-3)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12.4)
부스러기 묵상
출생(창11:27, *이하 모든 성경구절은 창세기임)
부르심 – 가라!(12.1, 75세)
→ 기근(12.10)
→ 죽음의 공포(12.12)
→ 무자(無子, 15.2)
→ 이신칭의(15.6)
→ 400년 후의 약속 - 가나안(15:12- )
→ 이스마엘 출생(16.15-16, 86세)
→ 언약과 할례(17.1- , 99세)
→ 아들 약속(18.9- )
→ 득남(得男, 21.1- , 100세)
→ 이스마엘로 인한 근심(21.11)
→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21.33-34)
→ 아들 이삭을 바침(22.1- )
→ 죽음(25:7-11, 175세)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 본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요, 동시에 완전한 순종이다. 이것들은 늘 함께 간다. 때문에 그는 약속 하나 만으로도 나그네 생활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다(9). 비록 장막생활이었어도 언젠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10)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