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교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벧전 5.5-11).

 

20200709(묵상)

  

 

 

승리하는 교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1 Pet. 5.5-11

  

   본문 관찰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5-7)

   너희 대적 마귀를 대적하라(8-9)

   은혜의 하나님을 믿으라(10-11)

 

 

잠깐 고난, 영원한 영광

 

고난에서 겸손을 배우며 살라 하신다.

그리고 고난의 시계(視界)를 혼돈스럽게 만드는 사탄을 대적하며 살라 명한다. 무엇보다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장되도록 살라 권고한다. 그렇다면 고난 받는 교회는 이렇듯 행복하다. 주님의 섬세한 손길이 언제나 출렁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흩어진 나그네로서의 고난행전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에서 누릴 영광의 산 소망행전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신앙은 고난에서 시작되어 영광으로 완성된다. 비록 나그네 인생길이지만 거룩한 제사장으로 고난의 언덕을 통과해 가기에 희망의 빛은 밝다. 이 고난도 이제 그 종점이 보인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4.7a)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4.17a)다 하셔서다. 마침내 고난의 끝을 알리기 위해 깨어라!”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다. 그리하여 아멘!”(11b)으로 화답할 준비가 되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55.22)

 

고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순복(순종)의 도()를 실행해야 할 자들 가운데 젊은이를 면제하지 않는다. 지금껏 사도는 성도가 국가(2.13-17), 직장(2.18-25), 가정(3.1-7)이라는 신앙의 장(field)에서 순복하며 살도록 권면하였다. 그래서 이와 같이’(5a, 3.1a). 단순히 나이만이 아니라 영적인 질서에서 이 원리는 중요하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5a)는 말 안에는 주님이 저녁 먹는 중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13.3-4)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장면이 연상된다. 이처럼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남녀노소(男女老少)가 더불어 서로 겸손으로 섬기며 사는 것, 이것이 고난 속에서도 영광을 향해 영적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가 아닌 겸손한 자를 주목하신다. 교만은 겸손과 은혜와 높아짐과 하나님의 돌보심을 뿌리까지 흔드는 독초와 같아서 여기에 한번 걸려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고난 가운데서도 교만할 수 있는 게 인생이다는 베드로의 통찰이 깊기만 하다.

반대로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수납할 수 있는 통로다. 하나님은 겸손으로 준비되기 전에 높이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겸손을 통해 고난의 위기들을 넘어가는 자에게 가장 적절한 때에 개입하사 그를 높이신다(6). 하나님은 고난을 겸손으로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영적 싸움인가를 아신다. 그래서 그 염려를 당신에게 맡기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만의 다른 이름인 염려를 당신에게 맡기는 자를 보살피시기 때문이다(7).

   

 

너희 대적 마귀를 대적하라(8-9)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사탄은 자기의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알기에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8)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사탄은 실존하는 존재로서 지금도 성도들을 밀 까부르듯 훼방한다. 놀라운 것은 또한,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이지만 길가와 같은 마음밭인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8.12) 공격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서 믿음으로 저를 대적해야 한다(9a).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사탄의 활동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야고보 사도도 동일한 교훈으로 권면한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b)

누구보다 마귀를 대적하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마태복음 41-11절이야말로 사탄을 대적하는 삶의 원형이다. 주님은 말씀으로 -“기록되었으되”(4,6,7,10)- 사탄을 물리치셨다. 주님이 보여주신 방법대로 사탄을 말씀으로 대적할 때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11a)로 시험이 종결된다.

비록 로마의 원형경기장 안에, 하지만 동물원의 창살 안에 가두어진 사자(獅子, lion)처럼, 그러니까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뱀(옛 뱀, 마귀, 사탄, 12.9)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지만(3.15) 여전히 사탄은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따라서 사탄은 토론, 협상,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대적해야 할 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4.10a)

   

 

은혜의 하나님을 믿으라(10-11)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10b)

 

사탄이 우리의 적()이어도 잠깐 고난이다. 고난은 영원하지 않다. 반대로 세세무궁(世世無窮)하도록 권세를 가시진 하나님께서(11) 고난 받는 거룩한 제사장들을 부르사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10a). 은혜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비록 흩어진 나그네로 고난을 통과해 가지만 거룩한 제사장의 노래를 부르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은혜를 받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처럼 인도하고 계신다: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새워주실 것입니다.”(10b, 현대인의성경) 고난도,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하는 근심도(1.6) ‘잠깐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영원한 영광을 준비(‘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한 기초를 놓게 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은 고난을 단조(短調)가 아닌 장조(長調)로 연주하며 살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고난은 물론 고난 그 이후까지를 준비해 놓으시고 그것을 겸손으로(5-7), 마귀를 대적하면서(8-9),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당신의 은혜를 믿음으로 이기도록 격려하신다(10-11). 오늘은 고난이지만 내일은 영광을 보며 사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고난과 사탄의 공격마저도 당당하게 따돌릴 수 있는 영적 실력, 거기까지가 고난의 용광로에서 성도를 성숙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시다. 그리하여 거룩한 제사장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게 하실 것이다.

구원받았지만(1.2-12) 그럼에도 삶의 자리는 흩어진 나그네이자(1.1) 또한 거룩한 제사장인(2.4-10), 하지만 동시에 고난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3.13- ) 여전히 산 소망’(1.3)을 따라 살아가는 자,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이다. 이 와중에서도 주님은 거룩과 사랑과 성숙을 주도하시며(1.13-2.3), 이 성품으로 무장된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사 이방의 땅에서 제사장의 노래’(2.11-3.12)를 부르게 하신다. 영원한 영광을 위해 잠깐 고난을 이처럼 살라하신, 또한 살게 하신 하나님을 우러러본다.

주님도 고난을 십자가로 이기사 승리의 영광으로 나아가셨듯이 고난은 이기라고 주신, 아니 이미 세상을 이기사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승리의 길을 따라, 아직 약간 남아있는 고난의 파편들을 당당하게 통과해 가면서 마침내 저 영광의 천국에 이르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고난이 있기에 영광이 있다면, 그것도 잠깐 고난인 인생행로(人生行路)인들 그게 뭐가 문제일까. 동시에 나 홀로 고난이 아닌 것을 알고 믿고 보았고 확신하고 있느니 고난은 기회다!”는 새로운 부스러기를 묵상의 창에 높이 달아 올린다. “고난은 기회다!”는 깃발이 펄럭인다. 그 깃발 너머로 천국이 보인다. 할렐루야다!

 

 

제목 날짜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노래합니다(벧전 5.12-14). 2020.07.09
승리하는 교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벧전 5.5-11). 2020.07.09
장로의 사명선언문을 주목하십시오(벧전 5.1-4). 2020.07.09
성도의 고난, 오히려 영광입니다(벧전 4.12-19). 2020.07.08
재림을 기대하는 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벧전 4.7-11). 2020.07.07
고난은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벧전 4.1-6). 2020.07.07
승리하신 그리스도, 고난의 모델입니다(벧전 3.18-22). 2020.07.05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벧전 3.13-17).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4악장, 좋은 날을 꿈꿉니다(벧전 3.8-12).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3악장, 가정생활입니다(벧전 3.1-7).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2악장, 직장생활입니다(벧전 2.18-25). 2020.07.04
제사장교향곡 제1악장, 국가생활입니다(벧전 2.13-17). 2020.07.04
제사장교향곡 서곡, 이방인이 보고 있습니다(벧전 2.11-12). 2020.07.04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3(벧전 2.9-10).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2(벧전 2.6-8).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1(벧전 2.4-5).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성장입니다(벧전 2.1-3).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사랑입니다(벧전 1.22-25).. 2020.07.02
구원 그 이후, 이제는 거룩입니다(벧전 1.13-21). 2020.07.02
그리스도가 복음(福音)이다(벧전 1.10-12).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