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벧전 4.1-6).

20010710(묵상) 20160507

   

 

 

고난은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

1 Pet. 4.1-6

  

   본문 관찰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고난을 받으셨으니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 살게 하려 함이라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사실대로 고하리라

     -이를 위하여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너희가 그들이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다는 점이 위로와 소망이 된다.

내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이미 죄와 관계를 단절한 것에 대한 결과라는 베드로의 통찰이 큰 힘이 된다(1). 고난은 이전과는 분명하게 다르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분명한 사인(sign)이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때문에 그것을 단지 어렵다, 힘들다, 못하겠다로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함량 미달인 믿음생활인가를 깨닫게 된다. 고난은 라기보다는 어떻게의 문제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고난 앞을 걸어가는가.

   

 

그 후로는 너희가(1-3):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그 후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2)

 

내가 당하는 고난은 죄와 관계를 끊었기 때문인가를 생각해 본다(1). 내 고난의 수준과 난이도가 이처럼 되기까지 고난을 상대하는 나의 영적 수준이 높아져야겠음을 깨닫는다.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는 수준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2a). 이제는 음란과 그의 졸개들이 지배하는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하던 것이 지나갔다(3). 그래야 한다.

비록 고난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생활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남은 생()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말자(2b).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지만 고난은 여전히 내 곁에 있음을,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전과 다르게 살게 하셨다. 3절은 다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이러므로 그들이(4-6): ‘비방하나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4)

 

세상(‘그들’)은 자기들과 다르게 사는 너희’(성도)를 비방한다. 자기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며, 또한 비난한다(4). 그러므로 세상과 다르게 사는 자로, 즉 전에는 사람의 정욕’(2)이방인의 뜻’(3)을 따라 행하는 자로 살았지만 이제는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간 과거에 불과한 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인 자가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사는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 삶인가. 이미 지나간 삶이 있고, 그것만큼 지금 사는 삶이 있다는 것, 그 속에 고난이 있음을 새롭게 느껴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한다(5).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에게도 복음(福音)은 전파되었기 때문이다(6a). 지금도 복음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사는 자들은 미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결코 변명할 수 없다. 이미 직접(특별계시)과 간접(자연계시)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느끼도록 하시는 일이 중단된 적이 없기에 그렇다.

창세 이래 지금까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과 이후가 있듯이 고난 역시 두 얼굴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수준에서 고난을 통과해 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부스러기 묵상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을 알리는 비난의 나팔이다.

고난은 거룩하게 사는 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신앙의 과정이다. 그것도 모르고 고난이 없도록 기도하고, 고난은 막무가내로 싫다고 흥분하고, 고난은 내 죄 때문이라 단순화시켜 버리고,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일거라고 생각하고, 고난 받지 않으려고 신앙의 열심을 교회 속에 쏟아가며 살아버린 나의 못남이 부끄럽다. 이미 너희의 영광스러움 안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혹시 지금도 그들의 꼴로 살아가는 부분은 없을까. 고난에 대한 전혀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한편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여러모로 부담이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은 필연적인 부담이라면 이왕이면 멋지게 감당해 보자. 베드로의 차원 높은 고난신학(苦難神學)을 묵상하면서, 고난 속에서도 빛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자란다는 복음의 격려를 부끄럽지 않게 하며 살아야겠다.

그들과 너희와의 차이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복 받는 것으로만 판별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땅에서 받는 축복들이 분명한 구분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고난 역시 동일한 판별점이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가 세상과 다르게 사는 자임을 드려내기를 원하신다.

고난을 통해서도 다르게 살도록 요구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이제부터는 나도 고난 속에서도 다르게 사는 자로 당당하게 세상과 하나님 앞에 서 보자. 고난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통로다. 거룩한 제사장은 고난이라는 수업료를 먹고 완성되어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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