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벧전 3.13-17).

20010706(묵상)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1 Pet. 3.13-17

  

   본문 관찰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나님의 뜻일진대

   

 

고난은 복이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14a)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도 고난은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오늘부터 베드로전서는 고난멜로디로 큰 흐름이 바뀐다. 사실 베드로는 이미 앞에서 임박한 고난을 예고해 왔었다(1.6, 2.12,15,19, 3.1,9). 거듭난 은총을 따라 거룩한 제사장으로 발을 땅에 딛고 살아도 고난은 면제되지 않는다(1.1-12 1.13-2.3 2.4-3.12 3.13- ). 성도에게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1.6)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2.12a)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2.19a)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3.1)

   

 

선행 + 고난 = 복 있는 자(13-16a)

 

그렇다면 이 고난의 나그네 생활을 무엇으로, 어떻게 이겨내며 살아야 할 것인가? 흩어진 나그네이지만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선을 행하며 살라 하신다.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한다면 해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13). 선행은 복음을 방해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이방인들의 입을 막는다(2.15). 이처럼 고난의 역풍을 선행의 순풍으로 바꾸며 사는 사람, 그가 나그네 생활을 승리할 수 있다. [제사장교향곡](2:11-3:12)의 지속적인 건강은 선행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b)

하지만 그러나’(14a)에서 선행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을 만난다. 그것은 선행하며 살아도 고난은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복 있는 자라신다(14a). 이게 복음의 역설이다. 베드로는 이를 주님의 말씀에서 배웠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이것이 고난을 통해 협박과 위협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14b).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리고. 참 깊은 베드로의 영적 통찰은 고난을 그리스도를 주(Lord, )로 삼아 이길 뿐만 아니라 -주님이 이기게 하신다.- 고난임에도 불구하고 13-14절로 사는 나그네인 우리를 이방인들이 보면서 이처럼 소망 가운데 사는 그 이유를 묻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격려를 앞세운다(15). 정말이다, 고난이라는 위기는 거룩과 소망과 긍정적인 이후를 예비하는 기회가 된다. 무엇보다 고난 속에서도 복음은 증거된다는 점이다. 고난으로 건강해진 영육(靈肉)은 복음 앞에 담대하게 서게 된다.

그럴지라도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15b-16a)는 충고가 조심스럽게 이어진다. 13-14절이어도 15절일 수 있다는 것이 자칫 오만과 무례함과 자기 의()를 낳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논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뭇 사람을 공경하며”(2.17a) 살라고 권면한 것을 다시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고난을 복()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후주(後奏). 고난은 당사자인 너희에게도, 그리고 그것을 안겨준 이방인들에게도 이렇듯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의 씨앗이 된다. 주님이 고난 속에서도 이처럼 살라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행 + 고난 = 하나님의 뜻(16b-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17a)

 

베드로의 고난신학(苦難神學)에 대한 이해 없이 곧바로 17절을 읽게 된다면 좀 의아스러울 수 있을 법도 할 것 같다. 그럼 선행을 따라 사는 길에 고난이 있는 것이 왜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은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를 통해서도 복음의 방해꾼들에게 뭔가 굵은 메시지를 전파하신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선한 일을 헐뜯고 욕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16b, 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 그것도 물리적인 힘이나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도록 만든 당사자들의 편에 서서 제사장교향곡을 어떻게 든 흠집내고 싶어하는 비방하는 자들’(2.12), ‘어리석은 사람들’(2.15), ‘까다로운 자들’(2.18), ‘부당하게 고난을주는 자들(2.19),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자’(3.1), ‘한 자들(3.9), ‘하려는 자들(3.13), 선행을 욕하는 자들’(3.16)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기대하신다. 이를 위해 고난을 받아도 14b,15b-16a절처럼 살도록 말씀하시며,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세상과 교회(‘흩어진 나그네, 거룩한 제사장)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귀하게 붙드는 묵상이다. 아무리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고 고난스럽게 해도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거룩한 제사장은 고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만드셔서 사용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안테나를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당신의 계획을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주목한다. , 거룩한 제사장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하나님은 흩어진 나그네의 인생길에 저희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산 소망’(1.3)의 자리로 이끄시며, 마침내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우사 고난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라는 점을 깨달아 알고, 또 거기에 아름답게 응답하며 사는 자리까지 너희’()와 함께 하신다.

이걸 모르면 고난은 더 없이 힘들고,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고, 눈물나는 슬픔 그것 자체다. 하나님은 고난을 면제하시거나, 고난을 만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제거해 주시는 것으로 섭리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고난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하시고, 고난을 이기는 능력을 배가시키시며, 고난 속에서도 복 있는 자, 고난 속에서도 거룩과 소망과 기회를 예비하게 하시는 것으로 일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고난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거나, 고난 앞에서 이런 하나님의 깊으신 은총을 보는 일에 실패하고 있고, 고난의 영성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나는 신분은 거룩한 제사장이기는 하지만 수준은 바이엘 1권을 치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믿음생활을 해 왔는데도,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주 먼 옛날임도 불구하고 아직 고난의 이유를 알거나 믿거나 보고나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깊은 긴장으로 나가온다. 고난은 또 다른 이름의 축복임을 알려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이어도 고난은 피할 수 없는 분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도 고난의 싹은 난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실패하고 끝장내려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는 사실 앞에 정말 아멘이다. 고난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내 안에 자리한다.

 

 

제목 날짜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노래합니다(벧전 5.12-14). 2020.07.09
승리하는 교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벧전 5.5-11). 2020.07.09
장로의 사명선언문을 주목하십시오(벧전 5.1-4). 2020.07.09
성도의 고난, 오히려 영광입니다(벧전 4.12-19). 2020.07.08
재림을 기대하는 자는 이렇게 살아갑니다(벧전 4.7-11). 2020.07.07
고난은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벧전 4.1-6). 2020.07.07
승리하신 그리스도, 고난의 모델입니다(벧전 3.18-22). 2020.07.05
고난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벧전 3.13-17).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4악장, 좋은 날을 꿈꿉니다(벧전 3.8-12).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3악장, 가정생활입니다(벧전 3.1-7). 2020.07.05
제사장교향곡 제2악장, 직장생활입니다(벧전 2.18-25). 2020.07.04
제사장교향곡 제1악장, 국가생활입니다(벧전 2.13-17). 2020.07.04
제사장교향곡 서곡, 이방인이 보고 있습니다(벧전 2.11-12). 2020.07.04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3(벧전 2.9-10).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2(벧전 2.6-8).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1(벧전 2.4-5).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성장입니다(벧전 2.1-3). 2020.07.03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사랑입니다(벧전 1.22-25).. 2020.07.02
구원 그 이후, 이제는 거룩입니다(벧전 1.13-21). 2020.07.02
그리스도가 복음(福音)이다(벧전 1.10-12).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