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교향곡 제4악장, 좋은 날을 꿈꿉니다(벧전 3.8-12).

20200705(묵상)

  

 

 

제사장교향곡 제4악장, 좋은 날을 꿈꿉니다.

1 Pet. 3.8-12

  

   본문 관찰

 

   마지막으로 말하노니(8-9)

     -마음을 같이함, 동정, 형제 사랑, 불쌍히 여김, 겸손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10-12, 34.12-16)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

 

 

축복하며 살라하네!

 

제사장교향곡

서 곡 - 듀 엣(duet, 2.11-12)

1악장 - 국 가(2.13-17)

2악장 - 직 장(2.18-25)

3악장 - 가 정(3.1-7)

4악장 - ‘마지막으로’(3.8-12)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부르심을 입은 목적을 반복한다.

거룩한 제사장’(2.5,9)은 이방인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국가(‘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 2.13), 직장(‘사환들’, 2.18), 가정(3.1-7)을 무대로 삼아 그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선행하는 자로(2:21), 그리고 축복하며 사는 자로(9) 삶의 노래를 부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축복하며 살라하신 이유가 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다시 구약 시편을 인용하면서 비록 흩어진 나그네로 오늘을 살아가지만 주의 언약(34.12-16)을 근거로 좋은 날을 꿈꾼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8-9)

 

제사장교향곡(2.11-3.7)을 삶의 자리에서 연주하며 사는 자들에게 다섯 가지의 생활 윤리가 마지막으로 다시 요약되어 소개된다. 이것들은 흩어진 나그네이지만 거룩한 제사장인 성도들에게는 선행을 통해 고난을 참는 삶의 노래가 더욱 풍성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2.20b), 동시에 그럼에도 이들의 삶의 무대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2.12) 지켜보는 어리석은’(2.15) 이방인들을 축복하며 사는 것을 위해서다(9a). 이것이 부르심을 입은 목적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9b, 현대인의성경)

남을 축복하는 것이 곧 내가 복 받는 길인데(9b), 그럼 이를 위해서 필요한 영성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섬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 첫째,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 이방의 땅에서 모두가 다 한마음이 되어야만 자타(自他, 너희와 이방인)가 긍정하는 제사장 노래가 아름답게 수놓아지게 된다. 둘째, 동정하며 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돕는 성품을 말하는데, 역시 주님이 먼저 시험을 받으셨기에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깊이 동정하신다는 점이 힘이 된다(4.15). 나그네의 사정은 나그네가 더 잘 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다른 넷을 엮고 있으며, 역시 이 일은 예수님의 모범에 의존한다(2.21-25).

넷째,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민망히’(9.36, 불쌍히와 민망히가 같은 단어다) 여기셨듯이, 제사장으로 살면서 이방(권세자, 상전, 2.13-25)과 배우자(3.1-7)를 이처럼 여기며 살아야 함을 권면한다. 다섯째, 겸손하라 하신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들에서(이방, 국가, 직장, 가정, 2.11-3.7) 구원받은 자로서의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며 살려면 무엇보다 남을 나보다 더 낮게 여기는 겸손이 요구된다. 이것이 없이는 제사장의 노래는 어떤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주기적으로 중단될 뿐만 아니라 엉망이 된다.

 

 

그러므로(10-12, 34.12-16)

 

베드로는 [제사장교향곡] 연주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권면하는 메시지의 근거를 그러므로를 통해 구약 시편 34편과 연결시킨다. 시편 34편에 보면, 다윗 역시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12)이지만 동시에 두려움(4) 환난(6,17), 고난(19)이 있고, 그러면서 의인’(15,17,19)이다. 결론적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랑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8) 물론이고 제사장교향곡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비방하는 이방인(2.12), 무식한 말을 앞세우는 어리석은 사람(2.15)들이 자행하는 악(, 9)까지도 품어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축복을 유업으로, 그러니까 축복을 상속하며 사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제사장교향곡을 연주하며 산다면 무대(1.1-2.10)와 객석(2.13-3.7)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된다. 나의 무대가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객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10a)로 살아가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의 숙제가 있고, 이처럼 사는 것을 방해하는 유무형의 무수한 위험들이 공존한다. 이렇듯 신앙은 무균실(無菌室)이나 하우스와 같은 보호막 안에서 자라지 않는다. 삶의 모든 조각들이 거미줄처럼 다양하게 얽히고 설킨 생생한 현장에서 제사장교향곡은 준비되고, 또한 연주된다. 우리 주님이 복음을 연주하신 유대사회가 그러했고, 사도와 성도들이 살았던 초대교회의 사도행전 역시 그랬다. 바로 그 생()의 한복판에서 제사장교향곡은 울려 퍼진다. 우리는 이처럼 부르심을 받았다.

좋은 날은 지불되는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상급(부스러기)이 아니다. 또한 아무나 연주할 수 있는, 또한 그러도록 허용된 것도 아니다. 거룩한 제사장(2.4-10)은 좌()에는 구원의 복음(1.1-12)에서 시작된 거룩(1.13-21), 사랑(1.22-25), 성숙(2.1-3)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우()에는 이처럼 준비된 사람으로 이방(2.11-12), 국가(권세자, 2.13-17), 직장(윗사람, 2.18-25), 가정(배우자, 3.1-7) 앞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리로다!”(1.3a)로 언행하며 삶으로 복음을 노래하며 살아야 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종이다.

나 혼자 하라면 할 수 없음을 자인한다. 하지만 주께서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1.3b) 맡기셨고, 격려하시고, 붙드시고, 연단과 훈련을 친히 감독해 주시니 할 수 있고, 또 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내가 할 수 있도록 제사장교향곡을 작곡하셔서 베드로 편에 나에게까지 배달해 주셨음을 알기에, 좀 어렵고 힘들어도 나의 달려갈 길을 바울처럼 언행(言行)해 보기로 다시금 복음의 신발 끈을 동여맨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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