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2(벧전 2.6-8).

20200703(묵상)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제사장입니다(2).

1 Pet. 2.6-8

  

   본문 관찰

 

   그를 믿는 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버린 그 돌이 되고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되었다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제사장으로 가는 길

 

   “내가 귀중한 돌 하나를 골라 머릿돌로서 시온에 두었다.”(6a, 공동번역)

   

흩어진 나그네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그들이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산 돌이신 예수님을 모퉁이 돌이 되게 하사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사장적인 삶을 사는 너희’(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저희’(믿지 아니하는 자)로 나누어진다. 그러니까 구원의 복음을 통하여 거듭나게 하사 거룩과 사랑과 성숙을 따라 살도록(1.1-12 1.13-2.3), 이 일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기초석’(모퉁이 돌)이 되셨음에도 믿지 아니한다는 것이 놀랍다.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거기에 따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오늘은 그 이유를 성경(구약)을 기초로 해서 말씀해 주신다(118.22-23, 8.14-15, 28.16).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은 제사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믿는 자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b)

   “보배”(7a)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된 사람, 그는 주님을 믿는 자’(너희=흩어진 나그네). 그러니까 구원의 복음(1.1-12)을 통해 거듭남의 은총을 받아 구원 그 이후의 삶을 거룩과 사랑과 성장(성숙)으로 세워(1.13-2.3) 제사장적인 소명을 감당하며 사는 사람이 믿는 자다(2.4-5 6). 바로 그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b, 28.16) 약속하신다. 주의 복음이 기초석인 사람은 결국 그의 인생의 마지막까지를 수치스럽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의 보증이다. 주님은 흩어진 나그네임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환난의 와중에서 주님을 기초로 자신의 인생을 건축해가는 자를 종말론적 수치로부터 보호하시겠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되는 언약(言約)인지 모른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수치스럽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을 붙든다.

   

 

믿지 아니하는 자

 

   “건축자들의 버린 돌”(7b)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8a)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8b)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적 무지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 볼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들에게는 버린 돌이 되고 만다(7b, 118.22-23). 믿음이 없기에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감각과 느낌이 기준인 사람으로 살아간다. 때문에 자신들은 버린 돌로 취급해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 돌을 산 돌로서, 그러니까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을 알 턱이 없다. 자기 자신이 기초석인 사람, 자기 의()에 깊게 빠져있는 사람, 예수님 없이 자기 인생의 설계도를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사람, 이들은 예수님이 지목하신 종교 지도자들이며(21.42-46), 베드로가 예로 든 사람들이며(2.4a),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온 인류다(4.27). 그들이 주님을 버린 순간 주님도 그들을 버렸다. 그들은 최후 심판 때에 부끄러움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8a, 8.14-15) 이렇게 된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8b)인데, 여기에 대해 바울의 시각 역시 동일하다. 바로 로마서 930절 이하다. 이스라엘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32) 믿지 아니하는 자가 됨으로써 결국 부딪힐 돌에 부딪혀 버렸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9.33)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믿음이 아닌, 말씀 순종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살아 버렸기 때문에 이처럼 화()가 되는 말씀을 응하는 자로 서게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여전히 믿지 아니하는 자로 살아가는 나라와 족속들, 가족들 앞에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하게 되는 말씀이다.

   

 

부스러기 묵상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6)

 

거룩한 제사장으로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퉁이 돌이심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제사장으로서의 사명과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기초로 한 거룩한 성숙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어 건축되어진 공동체(교회)를 세우는 일에 한 마음으로 헌신하게 된다. 이처럼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거치는 반석이 되어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정말 큰 일이다. 바울은 나에게 자유로운 것이 너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권면한다(고전8.9). 그리고 만약 이게 잘 되지 않으면 자신의 자유함을 제한하며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나는 주님처럼 보배로운 모퉁이 돌인지, 아니면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로 살아가는 걸림돌(돌멩이)인지, 말씀 앞에 서 본다. 내가 거룩한 제사장이라면 예수님이 보배로운 분이심을 다른 사람들도 누리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이라면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는 인간 장애물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 하나님의 관계가 예수님 때문에 보배스러운지를 생각한다. 또한 예수님과의 보배스런 관계를 맺고 사는 일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진정 살아있는 산 돌이어야 한다. 이것이 모퉁이 돌이 되어주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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