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이제는 성장입니다(벧전 2.1-3).

20200703(묵상)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성장입니다.

1 Pet. 2.1-3

  

   본문 관찰

 

   그러므로

     독(, 1) - 모든 모든 모든 버리고

     약(, 2a) -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성장(3) -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버리고 사모하라

 

그러므로는 바로 앞의 말씀’(1.23-25)2장과 연결한다.

이 편지의 첫 독자들인 흩어진 나그네들이 거듭난 것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 그러니까 하나님의 산 말씀으로 그린 된 것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2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버리십시오. 그리고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자라게 될 것입니다.”(1-2, 현대인의성경) 그러니까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복음’(1.1-12)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께는 거룩을(1.13-21), 성도들끼리는 피차 사랑을(1.22-25), 그리고 이를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성숙(2.1-3)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은 다시 두 가지를 통해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 1) -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산 말씀’(1.23)을 통해 형제 사랑의 법을 더 온전히 성취하려면 다음 다섯 가지를 버리고살아야 한다. 앞에서 베드로는 사욕’(1.14)은 거듭나기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1절에 나열된 것들은 거룩’(1.13-21)형제 사랑’(1.22-25)을 통해 구원 그 이후’(1.1-12)를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성도들로 하여금 여전히 이러한 생활을 방해할 수 있고, 또 실재로 그렇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신앙은 자동적으로 주어지거나, 만들어지거나,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기본기를 잊지 않아야겠다.

 

   ① 모든 악독 - 악한 생각, 7.20-23

   ② 모든 기만 악독, 속임수, 딤후3.13

   ③ 외식(위선)6.1-18, 23.28, 2.13

   ④ 시기들 14.30, 5.19-21,26

   ⑤ 모든 비방하는 말 고후12.20, 4.11-12

 

구원 그 이후에도 성도의 언행심사(言行心事)가 여전히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래서 구원받았다는 것이 곧바로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풍지대(無風地帶)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것들을 방해하는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핍박자들과 싸워서 해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버리라!’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버려야만 2절로 채울 수 있지 않는가. 성숙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을 보는 것만큼이 그 사람의 영적 실력이자 영적 성숙의 질이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버리는 것이 또한 더 깊은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발견하게 된다.

   

 

(, 2a) - 사모하십시오.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2b)

 

하나님의 산 말씀’(1.23)으로 거듭난 것만으로는 신앙의 완성이 아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피조물로의 시작이다. 따라서 거듭남(구원, 중생, 다시 태어남) 그 이후는 자라가야 한다. 이는 말씀()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고난의 광야에서도 말씀만이 영적 성장과 성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가 영적인 성장과 성숙이 서는 자리이다.

생명은 반드시 자라야 한다. 성장이 멈춘 것은 이미 죽은 것이기에 그렇다. 영적 자람을 위해 베드로가 제시하는 것은 말씀의 젖 법칙이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2a) 이처럼 버리고말씀의 젖을 먹고 신앙이 자라는 영적 성숙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1.13) 완성될 구원을 위해 매우 소중한 영적 리듬이다.

거듭남은 갓난 아이에 비유된다. 그리고 갓난 아이에게 있어 젖은 생명의 근원이다. 이렇듯 구원 그 이후를 주도하는 것은 말씀의 젖이다. 신생아(유아)에게 젖은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반드시 먹어야만 한다. 유아(幼兒)가 자동적으로 성인(成人)이 되는 것이 아니듯 영적인 어린아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장하지 않으면 결코 그의 영적 생명은 자라지 않는다.

한편 아이가 먹는 젖이라고 다 젖이 아니다. 먼저 말씀에 다른 불순물을 혼합하거나 첨가하지 않은 순전한젖이어야 한다. 바르고 정상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결코 허위나 위선이나 가식이나 외식과 같은 다른 복음’(고후11.4, 1.8-9)이 섞어서는 안 된다. 만약 순전한 말씀의 젖이 아닌 빛바랜 복음이 젖으로 둔갑한다면 생명이 자라기는커녕 잘못하다가는 생명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고, 살아있기는 하지만 생명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은 하지 못하는 전혀 부담스런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마치 농약을 먹고 자란 식물이 생명을 위협하듯이 순수한 젖이 아닌 것을 먹고 자란 성도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뿐이다.

또한 어린아이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신령한말씀의 젖이어야 한다. 단순히 육적으로 배부르고, 형통하고, 이 세상에서나 필요한 것들만을 얻기 위해 말씀을 먹으려고 하는 욕망으로는 결코 거룩한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경우에 영적(靈的)인 양식을 육적(肉的)인 부와 명예와 성공의 젖으로 바꾸어 버렸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그것도 구원받은 성도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통해 성장한다. ,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 베드로의 독자들인 흩어진 성도들은 이미 이것을 맛보았으므로말씀이 얼마나 영혼의 양식으로서 충분한가를 알고 있다(3). 이미 이들은 이러한 베드로의 설교(메시지, 편지)를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자랐기 때문이다. 말씀은 이렇듯 우리의 영혼을 자라게 한다.

   

 

부스러기 묵상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4.13,15b)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과 성숙은 필수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구원의 복음(1.1-12)을 통하여 거듭났다면 그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성장과 성숙은 결과다. 거듭났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 순전하고 신령한 젖”(2)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말씀만이 희망이다. 이미 맛보았으므로(3), 그리고 계속해서 먹고 있으므로, 영적 성장은 지속적이며 쉼 없이 이루어져가고 있다.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훌륭한 선수는 실전을 통해서 성장해가며, 또한 진짜 군인은 전쟁을 통해 만들어져가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과 성숙 역시 핍박과 고난과 환난의 현장에서 이루어져간다. 베드로의 영적 통찰이 눈부시다. 그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흩어졌고, 그곳에서도 이 일이 드러나는 순간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뻔히 다 알면서도, 바로 그 십자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그곳이 영적 성장과 성숙의 통로임을 숨기지 않는다.

신앙이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고난과 고통을 없게 만들어주고, 편안한 안락의자를 만들어주는 그런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대피소가 아니다. 오늘이라는 시간 역시 하나님께서 더 천국 백성답게 되어지라고 주신 기회의 때다. 오늘이라는 삶의 나침반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분깃이다. 하나님은 거듭났다면 성장하라, 성숙하라 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 말씀하신다. 말씀은 나의 영적 성숙을 위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이제는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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