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이제는 사랑입니다(벧전 1.22-25)..

20200702(묵상)

  

 

 

구원 그 이후, 이제는 사랑입니다.

1 Pet. 1.22-25

   본문 관찰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형제 사랑

 

흩어진 나그네’(1)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산 소망’(3-4)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환난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상관없다(5-7). 왜냐하면 구원받았기 때문이다(2,8-9). 이것이 성경의 주제다(10-12). 이렇듯 구원은 이미 받았고(2, 6.47, 3.24), 받아가고 있고(3-25), 받을 것이다(13, 8.23,30). 사도 요한 역시 동일한 선언을 하였다(5.24). 그럼 구원받은 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베드로는 고난의 바닥에서 다음 두 가지의 영광을 보고 있다. ‘거룩’(13-21), 그리고 형제 사랑’(22-25)이다. 이것이 거듭난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표다. 그러니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사랑의 복음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1.22b)

   “사랑하는 자들아!”(2.11a, 4.12a)

   “형제를 사랑하며”(3.8b)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4.8)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5.14a)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 안에 있는 성도(1-12)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거룩(13-21)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사랑(22-25)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성취해 간다. , 거룩은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다. 베드로는 이 사랑은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처럼이 아니라 계속해서 뜨겁게, 그리고 서로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난 때문에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운 판에 다른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은 팔자 좋은 사람들의 호사스러움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때문에 1절의 독자들은 베드로 너나 잘 하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베드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이 편지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웃음이 되지 않을 줄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진리의 복음에 붙들린 성도들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의 하나님께는 찬송할지로다!”(3a),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 흩어진 나그네 성도들에게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6b)라고 말한다. 자신 역시 고난 속에 있으면서도 이미 고난의 현실을 이겨낸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는 산 소망의 영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서로 나눌 때 작아진다는 믿음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음을 본다.

사랑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뜨겁게라는 말로 번역된 단어의 뜻에 더 가까운 계속해서, 변함없이사랑하려면 단순한 다짐이나 결단만으로 되지 않는다. 때문에 베드로는 형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음 두 가지를 이미통과한 성도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형제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먼저, 이미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한 성도다(22a). 이러한 깨끗한 영혼은 거짓이 없는 진짜 사랑을 낳는데, 이는 다 진리에 순종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진리에 대한 순종 영혼을 깨끗하게 함 형제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미 거듭난 성도다(23a). 중생의 은총은 가식이 없는 참된 사랑을 이루는데, 이 중생은 영원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24-25):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b)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듭남, 그러니까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중생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 또한 어린아이와 같이 아직도 시기와 분쟁은 일삼는 육신에 속한 자’(고전3.1-3) 역시 참 사랑을 할 수 있는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도 영적으로 어린아이들이 있고, 이들이 하는 사랑은 어설픈 풋사랑이어서 탈이 난다는 권면에 귀 기울여본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24-25a, 40.6-8)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베드로는 이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라 말한다(23a). 영원한 생명의 씨앗인 말씀이 내 안에 뿌려져 그것이 자라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내가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이루어지는 근본 씨가 심겨졌기 때문이다. 변질되지 않는 사랑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르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구원의 복음(‘말씀’)에 붙들려 있을 때에 구원 그 이후를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구원의 복음에서 나온다. 사랑은 썩지 아니하는 말씀의 씨앗에서 발아(發芽)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받은 성도의 희망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내가 목사가 되어 복음과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경건의 시간’(QT)을 시작하면서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만나 주셨다. 세상이 달라 보였고, 내가 나를 봐도 달랐으며, 하나님과 말씀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냥 말씀을 읽기만 해도 눈에서 눈물이 났고, 기도하면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다. 말씀은 오늘까지 거룩’(13-21)사랑’(22-25)이라는 두 바퀴가 건강하도록 이끌어 준 생명이었다.

때로 좌충우돌(左衝右突)하고, 방황하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말씀으로 치유하시고 변함없이 이끌어 주셨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이 끝나지 않은 숙제를 언제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뿌린 씨앗이 어떤 사랑의 나무로 자라고 있는지를 이제는 좀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항상 싹만 나와 있는 어린 묘목이기에는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천국에는 언제나 사랑의 열매가 열릴 지 농부이신 주님께 달려가 본다. 좀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게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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