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그 이후, 이제는 거룩입니다(벧전 1.13-21).

20200702(묵상)

   

 

 

구원 그 이후, 이제는 거룩입니다.

1 Peter. 1.13-21

  

   본문 관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13)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4-15)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

   너희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18-19)

 

 

거룩한 경건

 

오늘은 흩어졌으나 내일은 산 소망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하심(2)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종말까지 보호하심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3-5). 여기에 요구되는 것은 역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6-9). 이와같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해 사도들에게까지, 그리고 베드로전서의 독자들(10-12), 또한 오늘의 독자인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사도는 구원의 복음을 서신 서두에 써 내려가면서 찬송하리로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러므로이다. 순교를 각오해야 할 고난의 오늘을 살아가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거룩한 생활이다. 환난과 핍박마저도 거룩을 연습할 수 있는 신앙이 설 자리라는 사도의 신앙이 구원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높은 질()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 거룩성

 

   “이전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私慾)을 본받지 말고”(14)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18)

 

거룩을 방해하거나 무관한 것 두 가지가 소개된다. 먼저 사욕이다(14). 구원의 복음(1-12)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신 은혜를 인하여 산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이전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과는 전혀 다르다. 온갖 욕심은 거룩과 무관하며 또한 그 삶을 방해한다. 사도는 이를 영적 무지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살피고, 상고하였듯이 거룩을 추구하며 사는 자 역시 그래야함을 강조한다. 여전히 옛사람의 성품이 거룩에로의 초대를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하나는 헛된 행실이다(18). 이것은 다분히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한 생활을 겨냥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버린 죄의 본성을 따라간 삶이 바로 망령된 생활이다.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미 거룩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16, 11.45). 그럼에도 헛된(망령된) 생활방식을 따라 살아버렸다. 그렇다면 거룩한 신분이지만 거룩한 수준은 아닐 수 있음 아닌가. 이것이 . 이러한 망령된 행실이 후대로 흘러온다는 것이 좀 충격적이다. 거룩을 방해하는 죄와 어둠의 세력의 고리를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6, 11.45)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

 

거룩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거룩하게 살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도는 인간이 거룩성(14,18)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라 선포함으로써(18-19) 성도의 거룩의 기초를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만들어 낸(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거룩에로의 부르심과 그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생활과 종말까지,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13b)의 때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오직 거룩이다. 하나님은 죄 아래 있는 죄인(罪人)들이 그처럼 살 수 없음을 아시면서도 거룩을 명하신다. 특별히 환난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거룩을 명령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물겹다. 마치 광야교회’(7.38)를 살아가는 출애굽 성도들에게 거룩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듯이 말이다.

그래서 구속’(해방, 18)된 것 아닌가. 그리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6, 11.45)라고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나그네로 있을 때’(17b)가 거룩을 이루는 기회의 때임을 말씀한다. 바로 이 때를 은혜를 소망하는 때로(13), 사욕을 따르지 말고’(not A) 거룩한 자가 되라’(but B) 명하신다(14-15). 거룩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 때가 두려움’(17b)임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렇지만 나그네 인생길 이후에 주어질 본향(本鄕)에서의 삶이 거룩한 하나님과의 영원한 생활이기에 이를 이 땅에서 미리 준비하라 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그래서 그분에게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21b, 현대인의성경)

 

역시 거룩 또한 내 힘과 능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님을 아멘한다.

거룩은 구원 그 이후에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 거룩성으로 단절(‘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18-19)는 말씀처럼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셨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21a). 그것만큼 거룩에로의 믿음과 희망 역시 하나님께 있다(21b). 그러기에 지금은 13절처럼 살 때다. 비록 환난과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것마저 소망(‘바랄지어다’)인 이유가 좀 더 분명해졌다.

이미 거룩에 참여했으나 아직 답지 못한 나의 연약함이 늘 실망스럽다. 무엇이 나의 거룩을 방해하는 주된 적()일까. 묵상을 핑계 삼아 기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지 못하는 나약한 영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알량하고 좁쌀 같은 거룩의 모양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얼마나 심하게 무너지고 마는지 모른다. 무엇이 거룩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따라 사는 삶은 가난한 나를 안고 주님께 무릎 꿇는다. 어찌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은 이미 나에게도 시작되었음을 믿는다. 나도 나에게 만족할 수 없는 미약한 시작이지만 재림의 때에 주실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거북이처럼 묵묵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내 안에도 천국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고 주님을 믿어야 할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 천국에서 당신 곁에 두시려면 그에 합당한 거룩한 자로 이끄실 것을 믿는다. 거룩을 향해 가는 노정에서 내 영육(靈肉)이 늘 삐거덕거리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고치셨다(19). 이제 다시 시작하도록 격려해 주셨으니 눈물로 씨를 뿌려보자. 아직 남아있는 거룩의 여백이 조금은 보인다. 비록 먼 길이지만 조금씩 나아가 보자. 비록 제자리걸음처럼 보일지라도: “어디만큼 왔나? 당당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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