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복음(福音)이다(벧전 1.10-12).

20200701(묵상)

  

 

 

그리스도가 복음(福音)이다.

1 Pet. 1.10-12

  

   본문 관찰

 

   선지자들

   복음을 전하는 자들

   너희(흩어진 나그네들)

   

 

구원의 복음, 그 통로들

 

구원이란 무엇인가?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복음(구원,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시 재무장을 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찬송할 이유들(3-9)은 결국 복음(10-12)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비록 고난과 핍박 때문에 나그네 신세로 전락했지만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바르게 깨달아 안다면 아무리 삶의 현장이 척박할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늘에 간직하신 것’(4)을 맛보는 산 소망’(3)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땅에 있으나 천국(天國)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는 감격스러운 메시지를 베드로는 지금 이 서신의 독자들에게 써 내려가고 있다. 이 편지가 지금 막 베드로의 손을 떠나 따끈따끈하게 오늘 우리에게까지 배달되고 있다.

   

 

선지자들(10-11)

  

베드로는 구원 = 은혜라고 말한다(10). 어찌 구원이 선지자들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고안해 낸 이 땅의 소산이리요. 구원은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구원의 주도권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인간은 단지 그것의 수혜자일 뿐이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다. 선지자들 역시 이 은혜를 예언하던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 쓰신 하나의 통로가 바로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구원에 대해서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는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10). 하나님이 임하셔서 말씀해 주신 이 거룩한 영광에 참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원 계시에 대해서 열심히 찾고 깊이 연구하였다. 선지자들이 그러하였다면 하물며 턱없이 함량미달인 우리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행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어야겠다.

하지만 열심히 찾고 연구하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님의 주권적 개입하심이 눈에 들어온다. 선지자들은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성령님)이 미리 알려주신 사실을 따라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였다(11). 그러니까 이 예언은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영감(inspiration)과 조명(illumination)이 있었다.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뜻이다. 성령님은 지금도 구원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기를 원하는 당신의 백성들 안에서, 즉 우리 안에서 이렇게 일하신다. 선지자들에게 역사하신 동일하신 성령님이 내 안에도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인가. 선지자들은 구약에서 신약을 보고자 했다면 나는 신약에서 구약을 완성된 계시를 통해서 이미 보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선지자들은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11). () 고난 후() 영광의 복음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복음의 진수다(22.6-8, 53.3 24.25-27, 8.17, 2.5-11). 선지자들이 고난 받()을 메시야에 대해서 미리 알고 예언한 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앞으로 나아가심으로써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성령님의 예고편대로 예수님을 통해 계시를 완성하신 것이다.

한편, 선지자들은 성령님이 미리 알려주신 대로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발견하고 알아내는 것으로서의 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차매’(4.4)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12)

 

선지자들과 사도들(‘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전한 구원의 복음을 유기적으로 통일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사도는 구약의 예언을 계승한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사도들)임을 분명히 하는데 이는 바울의 복음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2.20a) 이로써 사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성령님과 상관없이 출현한 무리들이 아니라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로서 복음의 사명을 맡고 있으며,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역시 선지자들과 연속성이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는 주님의 복음과도 그대로 일치한다(5.17-18, 11.13, 22.37-40, 23.23, 4.16-21, 24.25-27)

베드로는 이렇듯 선지자와 사도들의 연속성을 성령님의 사역에서 찾음으로써 여전히 복음의 주도권은 성령님께 있으며, 자신은 그분의 도구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이로써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전하는 하늘의 복음은 사도들이 고안해 낸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이어지는 복음의 청지기들을 통해서 전파되는 하나님의 복된 구원의 소식임을 분명해졌다. 때문에 비록 핍박과 고난 때문에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갈지라도 복음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의 믿음과 기쁨과 구원의 산 소망이다.

   

 

너희(흩어진 나그네들, 12)

 

바로 이 복음이 사도들을 통해서 흩어진 나그네들’(너희)에게 전파되었다. 이러한 사역들을 사명으로 감당한 선지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었음을 그들은 계시를 통해서 알았다(12a). 이렇듯 예언의 성취가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신약의 성도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로 복음이 너희에게까지, 그리고 오늘 나에게까지 알려졌다. 그렇다면 너희와 나는 공히 복음의 빚진 자들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들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어지는 헌신에 의해 1절의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는 자리까지 나아감을 볼 때 그랬을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그리스도의 영이 미리 증언하여”(11)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12)

 

선지자들 사도들 너희들로 이어지는 복음의 경사도를 묵상한다.

하지만 이들은 조연이다. 복음을 받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 복음의 역사의 주연은 하나님이시다. 성령님이 하셨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 선지자와 사도 사이에 전혀 갈등이나 복음의 변질이 발견되지 않는다. 수 천 년 동안, 또한 수 십 명의 각기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구원의 계시가 전달되고 기록되어 너희를 거쳐 최종 수납자인 오늘의 나에게까지 이 복음이 전달되었으나 다른 복음’(고후11.4, 1.8-9)은 없다. 성령님은 지금도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하시는 일을 주도하신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있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성령의 지배권 안에 있으면 온전한 복음의 빛 아래 거하며 살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복음을 사도들에게까지 전해 준 선지자들, 그리고 역시 동일하게 받은 복음을 전하여 준 사도들, 그렇다면 이 복음을 받은 저희들 역시 복음 안에 살 뿐만 아니라 다시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살아야 할 책임이 주어진 셈이다. 나는 이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비록 흩어졌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성도들(1-2), 이들은 거듭났을 뿐 아니라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다(3). 이 은혜의 복음(구원)을 받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증거들에 이어(3-9), 복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살폈다(10-12). 그리고서는 곧바로 실천적으로 복음을 생활에 적용한다. ‘그러므로’(13a) 이 구원의 복음을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로 이어지는 베드로의 편지쓰기는 매우 자연스럽다. 구원의 복음을 받은 자는 14절부터 제시되는 생활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복음이 어떻게 생활과 합력하는가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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