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됨을 위한 권면(고후 6.11-7.1)

20201003(묵상)

   

 

 

구별됨을 위한 권면

2 Cor. 6.11-7.1

  

   본문 관찰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자신을 깨끗케 하자

  

 

성별(聖別)된 삶은 아름답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6.13)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느낌은 거리감이다(6.11-13).

그리고 이것의 핵심은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6.12b)이라고 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동시에 해결하려면 세상으로부터의 분리(separation)라는 성별(聖別)된 삶이 요구됨을 말한다(6.14-16a). 이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러워하는 듯하더니, 이것이 바울에게서 난 사사로운 가르침이 아닌 성경의 명령(6.16b-7.1)임을 말함으로써 고린도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보다 더 분명히 바라보도록 이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구별된 삶이라는 성도의 정체를 분명히 할 다른 무엇이 또 있을까.

   

 

구별지수(6.11-16a)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4a)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6.16a)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힌 주범은 유대주의적 분리주의자들이다(2.5,17, 3.1, 4.3, 5.12). 저들의 교활함은 결국 우리’(바울)너희’(고린도교회) 사이의 일심(一心)을 도적질한 것에 있다. 바울은 지금 이것까지를 통찰하고 있고, 그래서 이처럼 말하는 것이다: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6.11-13) ‘마음을 합하여 함께 가자는 얘기다.

먼저 바울 쪽에서 빼앗긴 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한다는, 그러겠다는 것이 눈에 띈다. 고린도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먼저 낮아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겸손함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인 사사로움에 앞서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도자의 기본이 아닐까.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가 주장되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6.1). 서로 갈등하고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해 있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 이롭지 못하다.

바울은 이것의 핵심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4a)는 보다 실제적인 가르침에 담아낸다. 성도의 본성(本性), 즉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건강한 영혼을 담은 마음은 분파주의자들에게 빼앗겨 버린 마음을 회복하는 것과 같이 간다. 성별(聖別)됨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한 삶이 불법 어둠 벨리알(사탄) 우상”(6.14-16a)과 같은 것들과 어찌 함께 하며 어찌 사귀며 어찌 조화되며 어찌 상관하며 어찌 일치가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빚어내는 것은 () ”(6.14)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6.16a)는 성도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다.그렇지 않고는 마음의 창()이 결코 하나님을 향해 열릴 수 없다. 이것은 마음을 넓혀 하나됨에서 비로소 가능하고, 또한 이를 위해서는 믿지 않는 자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이렇듯 분리(성별)된 삶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됨으로 나타난다.

   

 

구별찾기(6.16b-7.1)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6.16b- )

 

바울은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2.17) 바울은 정직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을 따라 고린도교회를 혼잡하게 하는 자들에게 이번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성도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회적 가르침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이 고린도교회를 혼잡하게 하는 쓴뿌리들이 즐겨하는 것처럼 인간 바울에 의해서 조립되어 만들어진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일시적인 땅의 것이 아닌 영원한 말씀이 이를 명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바울에게서 가장 안전한 목회적 권면의 샘플(sample)을 만난다. ‘믿지 않는 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의 명령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와 너희가 한번 여기에 대해 귀기우려 보자는 것, 이것이 문제에 접근하는, 또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바울방정식이다. 그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역시 가장 분명한 영적 공식을 성경으로부터 캐낸다. 아름답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29.45)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26.12)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52.11a)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31.1)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37.27)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1.10b)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백성들의 관계가 투명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상과의 분리가 곧 하나님과의 연합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연합은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정말 구구절절(句句節節)이 그렇다. 이것이 구약에 계시되어 흐르는 성별에 대한 가르침이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고린도교회를 지배하려드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율법을 엮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배척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모양만 같은 분리주의자들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약속을 받았으니 몸과 영혼을 더럽히는 모든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거룩한 생활을 합시다.”

    (7.1, 현대인의성경)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7.1a)를 담아내는 바울을 생각해 본다.

비록 마음은 아직 좁아진 채 닫혀있고(6.11-13), 정작 말씀과는 분리되어 살아가면서(6.16b-18), 반대로 믿지 않는 자와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살아가는 고린도교회(6.14-16a), 결국 유대주의에 찌든 떠돌이 분파주의자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빼앗겨 버린 못난 성도들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저들을 향해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른다.

이처럼 무너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성, 그것의 보증인 이 약속의 말씀을 지금 이 시간까지도 받고 있는 자임을 기억하도록 격려한다. 참으로 놀라운 바울의 인내이자 사랑의 외침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약점까지도 그대로 품을 수 있도록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거기까지 나아가도록 우리네 마음을 깨운다.

그렇다. 세상과의 분리된 삶이란 단순히 구호를 외치듯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이것은 동시에 거룩한 생활로 드러난다. 세상과의 분리로 말미암는 성별된 생활이란 하나님을 경외함과 거룩한 생활이라는 두 날개를 통해 말씀을 삶의 자리에 구현해 간다. 이처럼 고린도교회가 다시금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세상과 동화(同化)된 자리를 떠나는 것, 다시 말하면 세상으로부터 성별(聖別)된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되게 하는 길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로워져야 하고, 이것은 오직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가르침이 어느 때보다도 마음판을 울린다. 분리된 삶을 명하는 말씀에 반응하는 마음이 비록 실낱같이 보일락 말락 남아있어도 그것으로 다시 하나님의 거룩을 회복하고 꺼져가는 마음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다. 거룩에로의 부르심은 구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르러야 할 소명의 자리다. 비록 가픈 숨을 몰아쉬는 한이 있어도 그곳에 이르기까지 멈추는 일만큼은, 후퇴하는 일만큼은 그만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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