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맥잡기

맛있는 신약통독개론(초안: 20200926)

 

 

 

고린도후서 맥잡기

2 Cor. 4.5

  

   구조 관찰

 

   문안과 감사(1.1-11)

      인사(1-2)

      위로의 하나님(3-11)

   사역 파일(1.12-7.16): 화해

      방문계획 변경에 대한 변(1.12-2.13)

      사도로서의 사역(2.14-6.10)

      사도로서의 목회적 권면(6.11-7.16)

   구제 파일(8.1-9.15): 나눔

      마무리(8.1-15)

      모금 동역자(8.16-9.5)

      유익(9.6-15)

   사도권 파일(10.1-13.10): 간증

      답변(10.1-18)

      간증(11.1-12.13)

      방문 계획(12.14-13.10)

   작별과 축복(13.11-13)

   

 

바울의 자서전(自敍傳)

 

   ▪바울의 고린도(그리스) 사역

   *아덴 전도(아테네, 17.16-34): 복음을 전하다(교회는 세우지 못함).

   *첫 번째(18.1-17): 2차 전도여행 중에 개척(브리스길라와 아굴라), 16개월

   *두 번째(2.1): 근심 중에 한 짧은 방문

   *세 번째(12.14, 13.1-2):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가리니

   *마지막(20.1-3): 3개월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다(18.1-17).

바울은 그곳에 16개월을 머물며 목회한 후, 다시 시작된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2년 넘게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썼다(19.8-10).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또 다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자 했던 계획이 그만 변경되었고(1.23, 13.1), 또 디도의 보고대로 바울 자신에 대한 반대와 비난(사도권 논쟁: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이 거세지고 있음에 대한 해명과 해소를 위한 자전적 고백을 담은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다(8.6,16-17, 10.1, 13.1-3). 사도권이 중요한 것은 이것과 바울이 전한 복음의 정당성이 연동되어 있어서다. 때문에 유대주의자들의 바울적 언행이 이에 집중되었다(2.6,9, 7.12). 이때가 아마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귀환할 때까지의 어느 시점이지 않나 싶다(7.5-16, 20.1-6).

   

 

바울이야기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12.9)

 

바울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1.8b)져 버렸을 정도로 고난과 환난가운데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1.3-7), ‘위로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다(1.8-11). 이것이 자신의 모습을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표현(고난)에 담아내는 바울의 실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외풍(外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적자들(사도권 논쟁: ’우리는 바울에게는 없는 예루살렘교회가 써준 추천서, 곧 자격 증명서가 있다)인 거짓 설교자(2.17), 거짓 교사(3.1), 거짓 사도들(11.5,13)로부터 전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 이미 사도들과 예루살렘 총회로부터 사도성이 입증되었음에도 말이다(9.28, 15.1-21). 동시에 내적으로는 육체의 가시(12.7-10)와 싸워 이겨야 하는, 그야말로 처절한 영적 사투(死鬪) 그 중심에 서 있다. 어쩌면 이게 복음 실은 배가 항해(航海)하는 세상이라는 무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배 안에 있어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이것이 복음의 파도타기가 갖는 영적 비밀이다. 사실 누군들 고난과 환난이 즐겁고 신나겠는가만 바울은 오히려 그것이 예수의 생명을 자기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고(4.10), 또한 자신의 처지를 향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주님의 응답을 듣고 난 후에 약한 것들이 자랑인 복음의 역설을 누리는 자로 당당하게 파도타기를 계속한다(12.9).

   

 

고린도교회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10.3)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10.8a)

  

   ▪바울의 고린도 서신들

   [1] 잃어버린 서신(고전5.9) - ‘너희에게 쓴 편지’: 음행하는 자와 상종치 말라.

   [2] 고린도전서 3차 전도여행 중(AD 54)

          → 글로에의 집에서 온 분쟁에 답하다(고전1.11-17).

          → 결혼과 독신 문제에 대한 고린도교회의 질의서에 답하다(고전7.1- ).

   [3] 고린도후서 사도권을 변호하다.

 

고린도후서에는 고린도전서 풍의 멜로디가 별로 없다. 아마도 먼저 보낸 서신()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교회로 나아온 모양이다(7.8). 고린도교회에 대한 목회적 권면(6.11-7.16)은 그래서 평온해 보인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6.11, 7.2a)

 

(1) 영적 질서가 움트는 교회(1-2,6-7,10-13)

고린도전서를 보냈고, 그래서 다시 직접 가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1.12- ), 따라서 고린도후서를 써 보내야 하는 바울의 심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이 기회에 바울의 영적이고 사역적이며 목회적인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를 호도하기 위해(6.11-7.16) 무엇보다 그의 사도권을 어떻게 하든지 부인하고자 움직인다.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계획이 바뀌고(고전16.5-6, 1.15-16), 또한 미루어지자(1.23, 2.1-2) 바울이 변덕스럽다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 먹지 않고 순수한 동기로 전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고백한다(2.17). 이렇듯 사도로서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흔들리는 고린도교회의 영적 질서를 새롭게 한다.

바울의 놀라운 자존감을 보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6.10) 그러면서 세상의 믿지 않는 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거룩을 이루라고 권면한다(6.14-7.1). 이는 고린도교회가 이미 보고 듣고 알고 경험한 바울의 모습이다. 어쩌면 그 열매로 앞서 보낸 고린도전서를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 아니겠는가(7.5-16).

바울의 사도권 논쟁은 -무능력에서 따른 끊임없는 고난(10.7-11), 설교(10.10), 천막 깁는 일(11.7-9), 육체의 가시와 같은 질병들(12.7)- 결국 자신이 세운 고린도교회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기에 이른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13.3a) 결국 바울이 가르치고 또한 쓴 편지들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울서신은 사사롭고 개인적인 간증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면 바울복음은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바울 대적자들과 갈등과 대립 분위기(10-13)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10.1)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저들에 대하여”(10.2)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할 줄을”(10.7)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10.10)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다른 영을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11.4)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11.5, 12.11)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11.6)

   *내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11.8)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11.13-15)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그들이 ”(11.18)

   *그러므로 도리어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12.9)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흫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12.16)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12.18)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희가 구함이니”(13.3)

 

이것 때문에 바울은 10-13장에서 불가불 어리석은 자처럼 자신을 자랑한다(11.1,16-20, 12.1).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육체의 가시’(12.7-10)라는 연약함을 자랑한다(11.30, 12.5-10). 이는 자신을 공격하는 이슈들을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의 기초로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고린도교회를 건강한 영적 질서 가운데 세워간다. 이는 바울이 다시(‘세 번째’, 12.14)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서 아직 해결되지 않는 미완의 숙제들을 검사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12.14-13.10).

 

(2) 영원한 소망이 자라는 교회(3-5)

 

   ▪바울 대적자들과 갈등과 대립 분위기(3-5)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3.1)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4.2)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5.12)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5.16)

 

바울은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것처럼(4.7),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5.14) 복음 전도자로서의 직분을 감당한다. 그런데 굴러온 돌과 같은 밖에서 온 떠돌이 전도자들(11.4)이 바울을 대적하고, 고린도교회 안에 갈등과 대립(성도들끼리, 바울과 성도들 사이에)을 조장한다.

 

(3) 사랑의 나눔이 넘치는 교회(8-9)

고린도후서의 목적 중 하나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을 마무리하는 일이다(8.1-15). 이것은 구제를 뛰어넘는 일인 바, 헬라인(이방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예루살렘)이 비로소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이기도 했다. 복음이 유대에서 헬라로 전파되었고, 이제는 이 복음의 열매가 헬라에서 유대로 흘러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디도와 두 형제를 공적으로 파송하면서(8.16-9.5), 이웃을 위해 물질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를 교훈한다(9.6-15). 헌금에는 다음과 같은 유익들이 있다. 첫째, 가난한 자들을 돕는 구제 헌금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8.9)는 말씀처럼 사는 것이다. 둘째, 넉넉한 이방 교회(고린도)가 가난한 유대 교회(예루살렘)를 돕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8.13-15). 셋째,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9.9-10).

   

 

부스러기 묵상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4.5)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18.1-4,18-29, 고전16.19, 16.3-5) - 유대

   *회당장 그리스보(18.8, 고전1.14) - 유대

   *회당장 소스데네(18.17, 고전1.1) - 유대

   *글로에의 집 사람들(고전1.11)

   *가이오(고전1.14, 16.23)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고전1.16, 16.15-17)

   *뵈뵈(16.1) - 고린도 동쪽 항구 겐그레아교회의 일꾼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고전16.17)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할 수 있으면 여러 번 방문하고자 했다(1.15-16).

그만큼 사랑했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다. 생명을 드려 세운 교회 아닌가. 비록 거짓 교사들이 바울 사역과 고린도교회를 흔들어 넘어지게 하려고 하지만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 고린도교회를 세워가는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바울의 계속되는 서신(편지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리 주와 성령께서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시며 보존하시며 교회로서의 소명과 사명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신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영광이다.

안팎으로 복음의 역풍이 휘몰아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며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일꾼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바울의 눈물과 복음을 위한 생명을 건 헌신과 충성이 자리한다. 바울처럼 살아도 고난과 핍박과 비아낭이다. 이처럼 복음의 길은 꽃길이 아니다. 이럴수록 바울의 심령과 자세는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4.5) , 이제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구 거짓 교사이고, 누가 참 전도자인가. 누가 예수와 복음을 사유화하고, 자기 이익과 밥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인가가 말이다.

그럼에도 바울의 중심은 오직 고린도교회다. 아니 복음과 그리스도다.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온 몸과 사역에 담아낸다. 그랬기에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추천서도, 화려하고 유려한 말주변도, 능력이 변변찮으니 자비량(tentmaker)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사도가 아니라는 거짓 선생들의 시샘도, 헌금(구제금)을 둘러싼 오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전하는 일에 심부름꾼으로 성도들에게로 나아가는 자임을 고백한다(4.5b).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4.5a).

사람인지라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고,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올 때 지치거나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에 의한 공격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것도 자신이 개척한 교회(성도)에서 자신을 배척하고 있기에 영적 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도, 교회도, 성도도, 그리고 자신도 잃지 않는다. 꽃은 흔들리면서 핀다. 복음은 고난을 먹으면서 흔들리면서 열매를 맺어간다. 고린도후서의 쉼 없는 간증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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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묵상.jpg

 

  김충만

  맛있는 신약묵상

  가나북스

  2014

 

  고린도후서 묵상은 책, pp.294-318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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