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교훈록(고전 7.10-24)

20200611(묵상)

 

 

 

이혼에 대한 교훈록

1 Cor. 7.10-24

  

   본문 관찰

 

   신자들의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10-11)

   비그리스도인 배우자와의 이혼에 관하여(12-16)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17-24)

 

 

이혼(離婚) 클리닉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19.8-9)

 

예나 지금이나 이혼 문제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혼에 대한 바울의 명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부부(夫婦)가 공히 신자들인 경우의 이혼에 대하여(10-11), 그리고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한 신자들(어떻든 한쪽이 신자가 아닌 경우)의 이혼에 대하여 언급한 뒤에(12-16), 결혼과 관련된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한다(17-24).

 

 

신자들의 이혼과 재혼에 관하여(10-11)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10a)

 

이 주제와 관련하여 바울은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10)는 강렬한 표현을 집어넣음으로써 신자들의 이혼에 대한 입장은 다른 주제들(6,25,40) 보다 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한다. 이 대목에서 미묘한 것은 여자가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10b, 수동태)와 남편은 아내를 버리지 말라”(11, 능동태)는 말씀이 부부(夫婦)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든 바울은 믿는 가정의 이혼을 원칙적으로 금한다. 주님은 아내는 이혼을 당하는 것도 피하여야 하고, 남편은 이혼해 버리는 일을 만들지도 말아야 하는, 이처럼 살기 위한 몸부림이 이혼하기라는 결과에 앞에 있어야 함이 신자에게 요구되는 중대한 책임이라 명하신다. 이처럼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부부(夫婦) 상호간의 종속성에 기인한다(4,12-13).

그러나 자의(自意)가 아닌 이혼을 하게 될 경우일지라도 화합을 이룰 것을 다시금 교훈한다. 그러니까 완곡한 어법으로 이혼을 금하고 있는 사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다시 회복(화합)-“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11a)- 것을 성경이 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 몸이 되었고, 그렇다면 배우자의 지배권 안에 위임되어 있는데(4) 자기 마음대로 이혼해 버린다면 그것은 신비한 연합에 이르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결혼이란 두 육체가 단지 한 지붕 안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이루어지는 온전한 성숙과 성장 안에서 부부의 일치됨을 이루는 것, 이것이 건강한 가정을 일구는 비결임을 깨닫는다.

 

 

비그리스도인 배우자와의 이혼에 관하여(12-16)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12a)

 

만약 배우자가 불신자일지라도 이혼해서는 안 된다(12-16). 이 경우는 불신자와 처음부터 결혼한 것이 아니고 둘 다 불신자였는데(12.2) 한쪽이 먼저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된 경우이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 거룩에 참예한 부부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은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때문에 신자는 자발적으로 이혼할 수 없다: “그를 버리지 말며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12-13)

그럼 바울이 불신 배우자와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신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불신 가족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14-16).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신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와 계속 부부관계를 가질 때 자신이 다시 더러움 아래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영적 균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영적 이기주의로 빠져서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배우자는 불신 배우자를 거룩하게 하는 통로로 쓰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은 도덕적인 면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 그러니까 신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이라는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이다. 만약 신자의 거룩이 자신에게만 유용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자의 자녀들은 깨끗할 수 없다(14b).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면 내가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내 자녀도 거룩과 그것만큼 멀어져 있다는 뜻이다. 자녀의 깨끗함은 부모의 거룩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부모의 거룩은 자녀의 거룩으로 가는 길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이 뇌리에 박힌다(14). 그런데 이혼까지 가 버린다면 그 자녀들의 영혼은 어찌되란 말인가. 부부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거룩으로 가는 통로이듯 부모는 자녀에게도 역시 이러한 사명이 주어졌다는 말씀, 예사롭게 받을 수 없는 실로 무거운 영적 책임감을 갖게 하는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거룩은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나는 가족들에게 거룩을 나타내고 있는가. 신자에 의해 불신자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내가 믿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를 불신 가족들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나의 거룩하지 못한 부분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신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이혼하는 것과 이혼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15). 불신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러니까 나의 의도와 반대로 이혼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부부의 영적 상호의존성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과도 관련된다(4,13-14).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의미의 이혼과 구분되어야 한다. 이처럼 이혼하게 된 경우라면 그것 때문에 구속(속박)받을 것이 없다. , 죄책감으로 고통 받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이혼은 음행한 연고의 경우에(19.9), 그리고 불신 배우자 쪽에서 이혼하기를 요구하는 경우에(15) 허용될 뿐이다. 만일 이런 경우가 아닌데도 이혼하여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간음이다(19.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불신자라고 해서 버리지 말고 배우자가 하나님의 구원에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것을 간곡히 권면한다(16, 9.22).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17-24)

 

일반적인 하나의 원칙이 제시되고 있다.

 

   -‘부르신 그대로’(17,20,24): 나와 같기를 그러나 각각 은사가 있으니(7)

   -일상생활의 영성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 할례의 유무보다 더 중요하다(5.6, 6.16, 2.13).

 

 

부스러기 묵상

 

현대는 이혼에 대해서 성경의 교훈을 겸손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간혹 당사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갈등 속에서도 노력하는데 문제는 부모님들일 경우가 종종 많다. 물론 일부겠지만 딸 가진 친정 어머니들이 뭔가 꼬이면 기를 쓰고 이혼을 시키려 든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 고생하느냐? 내가 너 이렇게 살라고 키운 줄 아느냐?” 그리고 억지로 이혼 수속을 밟게 하거나, 딸을 강제로 다시 친정으로 데려온다. 문제는 부모들일 수 있다.

자녀 결혼을 진행하는 부모를 보면 그 부모의 진짜 신앙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고상한 척, 예수님은 혼자 다 믿는 척, 자기보다 더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 없는 척하고 머리를 들어도 자녀 결혼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이 어떠한지 알게 된다. 결혼과 결혼시킴은 정말 복잡하고도 미묘한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결혼과 독신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이혼에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가 동일하게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혼은 합리화(정당화) 될 수 없다. 이혼은 성경이 금하고 있는 -단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음행한 연고’(19.9)와 불신 배우자의 요구(15)- 계명 가운데 매우 중요한 명령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도 깨지는 가정의 비율이 점점 서구화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속은 썩어도 꾹 참으며 겉은 멀쩡하게 포장(위장, 변장)하며 살았으나 요즘 세대는 그렇지가 않다. 목사의 주례를 따라 알만 한 직분자의 가정의 빛 아래서 결혼을 해도 불과 몇 년 만에 힘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심각한 것은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이미 마음은, 더 무서운 것은 영적으로는 한 몸이 아닌 두 육체로 살아가는 가정이 많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무사하지 못한다. 때문에 교회는 가정을 세우는데 헌신해야 한다. 가정을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일에 실패하면 다음 세대와 그들이 세워갈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우리들의 교회 문턱을 넘으려고 한다. 지금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성경의 지침들을 다시 돌아볼 때다.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세워진 가정을 위해서, 무엇보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 가정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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