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異端)들을 보라!(골 2.8-23)

20211226-27(묵상)

  

 

 

이단(異端)들을 보라!

Col. 2.8-23

 

    본문 관찰

 

    이단들 - 경계목록표

      철학과 헛된 가르침(8-15)

      유대주의(16-17)

      천사숭배(18-19)

      금욕주의(20-23)

  

 

경계해야 할 이단(異端)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4)

 

마침내 경계해야 할 거짓이요 가짜인 이단(異端)들이 밝혀진다.

기독교의 뿌리만큼 이단의 뿌리 역시 깊고도 오래되었음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이 시작된 지 불과 한 세대(30)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교회 안에 이렇듯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각종 이단의 아류들이 넘실거리는 것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회는 여지없이 영적 혼합주의의 유혹 앞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어찌할까.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여기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통찰이 정확하게 진단되고 처방되고 있음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앞에서 기독론이라는 복음의 기둥과 뿌리를 견고하게 선포했다.

   

 

가치 없는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헛된 가르침(8-15)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8)

 

먼저, 골로새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과 무관하게 하려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미혹이다(8a).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무익한 초등학문(초보적 지식)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통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8b). 그렇다면 이렇듯 8절의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이다. 그래서 다시 기독론이다(9- ).

   

 

의미 없는 형식만을 고집하는 유대주의(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16)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1,5)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4.10-11)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5.2)

 

그림자에 불과한 율법 조문들을 지금도 다시 그대로 지키도록 요구하는 구약 율법주의라는 사람의 전통’(8)에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것들(“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 16)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17),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미 다 성취한 것들이다.

   

 

근거 없는 신비주의적인 천사숭배(18-19)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6.3a)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4)

 

언제나 어디나 문제가 되는 화근은 신비한 것을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정하”(18)여 교만해지는 신비체험 우월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천사 역시 피조물이기에 숭배하고 높여야 할 자가 아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쓸모 없는 금욕주의(20-23)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7.8)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4.3)

 

세상의 초등학문(20),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22)을 따르기를 요구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이런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20a)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21)

 

그리스도 밖에 천국(하나님)에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가.

()은 당연히 없다!’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주의자들이 있다. 그래서 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아무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인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철학, 도덕, 사상 등)를 올려놓고서 이것들을 통해서도 진리(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바로 인본주의(人本主義)에로의 길을 걸어가는 들이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는 시간과 공간은 상대주의(相對主義)라는 찬란한 꽃을 피우는 모판과도 같은 시대다. 어쩌면 이들의 최종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진리에 이를 수 있고, 그 길을 결정하며, 또한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이론은 다음 이야기에서 조금 더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부산 [양무리교회]에 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자. 상대주의자들은 왜 양무리교회로 갈 수 있는 길이 [화명역]을 통해 가는 길 밖에 없느냐고 말하면서, 얼마든지 다른 길, 그러니까 남양산에서 오는 길, 김해에서 들어오는 길, 산성터널 쪽에서 오는 길 등, 말하자면 다른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이다. 뭔 이야기하려고 하느냐면 왜 양무리교회(천국)로 가는 길이 화명역(기독교)라는 방법으로 만 갈 수 있느냐는 얘기다.

듣고 보면 그럴 듯하다. 이것이 상대주의자들이 쓰는 전형적인 독설(毒舌)이다. 듣고 보면 처음에는 딱히 변호(변증)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세상의 헛된 속임수와 같은 이설(異說)들에 대해 이렇게 답을 한다. 물론 양무리교회(천국)로 오는 길은 화명역(기독교)이라는 한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주장한 여러 길로 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올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설령 왔다고 하더라도 양무리교회(천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25.26-30)

 

상대주의자들은 양무리교회(천국) 안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들어가는 것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불교(종교)라는 길을 통해, 양심과 도덕과 사상이라는 지식(지혜)의 길을 통해, 선행과 자기 열심이라는 길을 통해 양무리교회(천국) 앞까지 왔다고 하자(물론 여기까지도 많이 양보한 것이지만). 그러나 출입을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십자가 복음이고, 출입의 결정권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고유한 몫이라는 점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인간은 이미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지 오래다. 가치 없는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헛된 가르침(8-15)이 그렇고, 의미 없는 형식만을 고집하는 유대주의(16-17)가 그러며, 근거 없는 신비주의적인 천사숭배(18-19) 사상이 또한 그렇고, 별 영양가 없는 금욕주의(20-23)가 다 그 모양들이다.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이단 사설들 때문에 바람 잘날 없다. 하지만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로 하여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함을 초지일관(初志一貫) 강조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길은 없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자유지만 그 결과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상대주의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탈선하기 전에 온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같아 보이지만 길이 다르다. 자기 마음대로 설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따라가면서도 그 길이 사망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고서 오만(傲慢)하게 구는 현대의 가짜 길들을 경계해야 할 이단들에게서 본다. 예수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선명한 십자가의 복음만을 따라가는 삶이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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