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① - 그 기초(고후 3.1-6)

20200929(묵상)

  

 

 

사도직- 그 기초

2 Cor. 3.1-6

  

   본문 관찰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우리의 편지는 너희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있다.

불행이 엎친 데 덮쳐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데 어찌보면 지금 바울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바로 앞에서는 고린도교회 방문이 변경된 것에 대한 설명했고(1.12-2.4),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근심하게 한 자’(2.5a)가 회개하였다면 이제 그를 용서와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처를 그리스도의 향기로 다 덮고 갈 것을 부탁하였다(2.5-1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린도교회가 이제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서 가게 되는 것 같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1)의 공격은 새로운 이슈로 넘어간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고린도교회를 사유화하려면 바울로부터 교회를 분리(이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추천서문제를 들고 나왔다. 바울에게도 예루살렘교회와 사도들이 써준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바울의 영적 권위를 무력화하려는 사탄의 간교한 계략이 숨어 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는 치열한 영적전쟁(靈的戰爭) 중이다. 과연 바울은 이 위기를 어떻게, 무엇으로 넘어갈 것인가.

   

 

사도권 논쟁

 

마침내 고린도교회를 혼잡하게 하는 거짓 설교자(2.17)와 거짓 교사(1)들이 추천서를 빌미로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목회적 권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자 하는 믿음의 마음이 없자 계속해서 저희들은 바울에 대해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를 걸고 있다. 이것이 이어지는 사도권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다(3.1-5.21).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3-5)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사도직의 기초에 대해서(3.1-6), 둘째는, 사도직의 우월성에 대해서(새언약 vs 옛언약의 비교 논증, 3.7-18), 셋째는, 사도직을 감당하는 자세라 할 수 있는 사역철학에 대해서(성경적 교리, 4.1-5.10), 넷째는, 사역동기에 대해서(교리적 삶, 5.11-21) 말함으로써 어떤 사람’(1)의 거짓됨을 논박한다.

바울은 영광스러운 사도직(3)낙심하지 아니하고신실하게 사역했으며(4), 이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충성이었기 때문이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점차 제도와 전통을 앞세우는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고 있다. ‘먹으로 쓴 추천서’(A)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B)보다 더 우선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1-3).

바울은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다음 두 가지를 분명히 한다. 하나는 자신의 사도됨의 기초가 어떤 사람’(1)처럼 이 땅 사람들의 먹(잉크)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5, 새번역)라는 고백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1.1a)이라는 선언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의미다.

한편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권 논쟁은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적대자들의 표적(단골 메뉴)이었다. 사실 사도’(Apostle)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가리키는데 사도란 다음과 같은 조건과 자격을 충족한 사람이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1.21-22)

이렇게 해서 맛디아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로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게 한 것이다(1.24,26). 이렇듯 아무나 다 사도가 아니다. 사도는 자신이 스스로 붙이고 다니는 애칭이 아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 칭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말쟁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빌미가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 가곤 했다. 사실 고린도교회마저 이렇게 나왔을 때 바울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겠지만 .

   

 

영적 추천서

 

이번에도 어떤 사람’(1)이 문제다. 저들은 유력한 사람들의 추천서를 등에 엎고 고린도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영향력이라는 고리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런 목소리가 공론화된 것으로 봐 고린도교회는 이미 저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버린 것 같다. 그래서 먼저 바울이 고린도교회 방문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고 공격하더니(1.12-2.16), 이번에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이다(2.17- ).

하지만 바울다움의 진면목은 이번에도 유감 없이 빛을 발한다. ‘우리너희의 관계가 어떻게 너희어떤 사람의 그것과 같을 수 있다는 말인가(1). 어느 날 갑자기 추천서한 장 들고 오더니 고린도교회를 분쟁의 수렁으로 몰고 간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추천서를 가지고서야 너희에게 갈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보다 너희가 더 잘 아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계속해서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에 여러분은 우리 마음에 기록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우리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 사역의 결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2-3a, 현대인의성경)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먹(잉크, 추천서)으로 쓴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난 것이 바로 자신의 사도됨의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임을 천명한다.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3b-6, 표준새번역)

 

과연 바울이다. 자신의 사도됨의 영적(靈的) 기초(기원)를 사람들의 추천서가 아닌 하늘의 하나님, 곧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한다. 자격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그러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때문에 더 이상 사도권에 대해서 왈가왈부(曰可曰否)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완곡하게 책망하듯 말이다. 이것은 계속해서 증거하는 새언약의 직분을 얻게 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7-18).

   

 

부스러기 묵상

 

바울은 이중적인 딜레마에 포위되어 있다.

근심하게 한 자’(2.5a)를 차라리 용서하고 위로하라!’(2.7a)는 메시지를 과연 바울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지를 받아든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사도권을 악의적으로 거부하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어떤 사람’(1)에 대해서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사탄은 참으로 쉼 없이 잔머리를 굴리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결국은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영적 원리를 이루어내야 한다.

너무나 평범한 진리이지만 바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5a).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도직과 그 권위가 왔음을 선포한다(5b).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6a)음을 고백한다. 하찮은 사람의 먹물(잉크, 추천서, 증거)을 가지고 하나님의 질서를 농락하려던 어리석은 자들이 묵사발된 것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바울은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 철저하리만큼 영적 중심을 잃지 않는다. 결코 감정적으로 대처하거나, 분노와 같은 인간적인 틈을 보임으로써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는 악순환과 같은 고리를 아예 처음부터 차단해 버린다. 그는 지금 이 땅의 지식이나 증거물 따위에 영적 균형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늘을 바라보는 영적 시각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영’(3b)이 주관하시는 일을 만족스럽게 드러낸다.

사탄은 근심하게 한 자’(2.5a, 내부인)어떤 사람’(1, 외부인)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연거푸 시비를 걸며 바울 넘어뜨리기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다 허사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럴수록 더 든든히 서간다. 고린도교회가 이런 풍랑 가운데도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고(3-6), 또한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6a)임을 잊지 않고 있고 있는 한 그 누구도 하나님의 교회를 넘볼 수 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하고, 또 준비할 일이 있다면 바울처럼 피아(彼我)를 잘 구분하는 것이고, 거기에 따른 바른 대답을 하는 영적 통찰이다. 바울에게 저들(2.5a,17, 3.1) 모두가 다 목회의 대상이었음을 기억하자. 교회는 내 입맛대로 만들어내는 비빔밥이 아니다. 교회의 일꾼’(6a)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고, 주인이 바라는 바로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이것만 분명히 할 수 있다면 사람 때문에 넘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문제는 늘 나다. 내가 문제다. 나 한사람 바르게 서면 반()은 다 된 셈이다. 문제는 나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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