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브라함의 참 후손인가!(갈 4.21-31)

20210910(묵상)

 

 

 

누가 아브라함의 참 후손인가!

Gal. 4.21-31

 

본문 관찰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옛언약(율법)

    A 여종(하갈)

       B 육체를 따라 난 자(여종의 아들_이스마엘)

          C

             D 지금 있는 예루살렘(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

             D' 위에 있는 예루살렘(천상)

          C' 자유

       B' 약속/성령을 따란 난 자(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_이삭)

    A' 우리 어머니(사라)

    #새언약(복음)

   

 

하갈 vs 사라, 누구의 자녀인가.

 

    “여러분은 율법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합니까?”(21b. 쉬운성경)

 

율법이냐 믿음이냐?”(3-4)의 긴 구원신학(救援神學)의 결론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모세 율법으로 대표되는 옛언약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언약(복음)에서 찾기 위해 하갈 vs 사라의 비유를 사용한다. 이 비유의 목적은 바른 율법을 바르게 듣는’(아는) 일을 위해서다. 그 옛날 이스라엘이 율법을 들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6.4).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올바른 율법을 안다면 그들’(유대주의자)에게로부터 다시 복음(믿음)으로 들어오게 될 것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해산의 수고라 할 수 있는 이 비유(19)를 통해 하갈 vs 사라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옛언약(율법)_하갈

새언약(복음)_사라

 

[관찰]_ 22-23

율법이 말하는 바를 비유를 통해 정면으로 돌파한다. 율법(옛언약)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낳은, 즉 하갈이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라 말한다. 하지만 여종 하갈이 낳은 아들이 땅과 후손을 상속받지 않는다. 한편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가 낳은 아들이 바로 약속의 자녀 이삭이다. 이삭이 이스마엘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의 유업인 땅과 후손을 상속하게 된 것은 오직 그가 약속의 자녀여서다.

 

[해석]_ 24-27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서 증거하고자 하는 바는, 갈라디아교회가 율법의 행위에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손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있다는 복음이다. 겉보기에는 둘 다 모구 아브라함의 아들로 보이지만 그 근본은 다르다.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 아들은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가 낳은 이삭이기 때문이다.

 

[적용]_ 28-31

바울은 이스마엘(하갈)과 이삭(사라)의 비유를 율법과 복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가지고 온 목적이 있다. 그것은 약속의 자녀 이삭이 육체를 따라 난 자녀인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은 것처럼, 오늘 갈라디아교회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직 믿음(복음, 은혜)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율법(할례,행위)을 통한 구원을 말하는 자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는 약속의 자녀 이삭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성령을 따라 난 자,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자녀), 곧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삼아주셨다(26). 이것은 행위로 말미암아 받은 게 아니라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다.

   

 

부스러기 묵상

 

하갈과 사라, 누구의 자녀인가?

만일 하갈의 자녀라면 우리는 인간 육체를 따라 행위(선행, 할례, 율법)로부터 여종이 낳은 자녀일 뿐이다. 하지만 사라의 자녀라면 우리는 이삭과 같이 종이 아닌 자유 있는 여자를 통해 약속을 따라 난 자녀이다. 놀랍게도 복음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 약속의 자녀라고 선언한다. 갈라디아교회가 이 복음과 은혜의 터 위에 세워졌음을 다시 기억하고 믿고 고백하게 될 때 육체를 따라 종 노릇하는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복음의 은혜와 영광 안에 다시 거하게 된다.

이렇듯 인간의 노력과 율법(행위)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성령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러니 갈라디아교회가 바울에게서 이처럼 책망을 듣는 것 아니겠는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3.1)

돌아서야 한다. 율법(행위, 할례)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거짓 복음과, 여전히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전하는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와 있는 가짜 선생이라는 종(육체)과 하갈의 자리를 버려야 한다. 이제 갈라디아교회는 아브라함을 통한 자유와 약속을 따라 유업을 얻게 하신 복음으로 다시 돌아서야 한다.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3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거역하는 모든 것을 내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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