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하나다(갈 1.1-10).

20210901(묵상)

 

 

 

복음은 하나다.

Gal. 1.1-10

 

    본문 관찰

 

    인사와 찬양(1-5)

    바울복음1(6-10)

    갈라디아교회 vs 복음

 

 

바울복음(1)

 

바울의 아킬레스건은 그의 사도직의 기원에 관한 부분이다.

그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실 때까지, 그러니까 최소한 사도행전 8장까지는 사도가 아니었다. 사도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그러나 그를 이어 보선된 맛디아까지 12명이다(1.26). 그는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는 오히려 핍박자였다(8.1). 그런데 느닷없이 사울이라는 청년이 바울이 되어 자신을 사도라 칭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가 초대교회의 공적인 보내심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역을 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13.1-3).

때문에 그런 그에게 갈리디아교회가 사도직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처럼 보인다. 이처럼 인사와 찬양(1-5)으로 시작되는 서론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논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이 암시되고 있다. 동시에 이와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으로의 급속한 이동이다(6-10). 이 둘(1 vs 6)은 무관하지 않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갈리디아교회들, 이들을 향한 바울의 경고에서 저들을 향한 사도의 마음을 읽어내는 아침이다.

   

 

인사와 찬양(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로 표현하던 것과는 다른 수식어를 사용한다(1). 이는 갈라디아서가 바울의 사역 초기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그는 처음부터 사도권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때문에 그는 사람들’(초기 기독교 공동체)이나 사람’(바나바)을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고백한다(1, 11.25-26 참조). 이는 그의 부르심과 여러 차례 간증을 전해 주는 사도행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9.1-18, 22.6-21, 26.1-23).

아마도 이 말에는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더 이상 시시비비(是是非非)를 한다는 건 하나님(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 같다. 한편 그는 자신 곁에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과, 반대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왈가왈부(曰可曰否) 하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이(2,3),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죽으심)을 모두가 다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원한다.

그는 지금 흔들리는 자신의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높임으로써 이 부분이 갈라디아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의 주제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자신에게 맞춰진 초점을 그리스도에게로 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섭섭함이나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어떤 형편에서도 사적(私的)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는 사역자의 자세, 바울에게서 배우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바울복음1(6-10): 갈라디아교회 vs 복음

 

복음(福音)은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전하는 것과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다. “우리가 전에”(과거, 9a)도 말했던, 그리고 지금 다시 말하”(현재, 9a)는 바로 갈라디아교회가 받은 것(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어떤 사람들은 갈라디아교회와 바울 모두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며, 동시에 저희는 미래에도 저주를 받을”(8b) 것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바울 공동체)를 통해 받은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6a)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9b)와 미래(8b)에 저주의 대상일 뿐이다.

이로써 갈라디아서는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떠난 것이 어떤 것이며, 그들의 정체가 어떠한가를 말하려는 게 분명하다. 이렇듯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만 치료가 가능하니까 그렇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클리닉 하듯 복음의 빛을 통해 주께서 나를 진찰하시기를 빈다. 동시를 이를 내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치유가 일어날 테니까 말이다.

갈라디아교회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다른 복음을 받아 이를 쫓음으로써 저주 아래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로 말미암아 바울을 통해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저주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말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참 비장하다 싶은 결정을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8) 이 저주 선언은 저 먼 미래(8)의 메시지만이 아닌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현재(9)에도 유효한 선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지금 갈라디아교회에 하고 있는 일들이(전에 복음을 전했고, 지금은 편지를 쓰고 있음), 그리고 자신들이 기쁘게 하는 대상이 사람인지 하나님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10). 이는 사람들의 가려운 등이나 긁어주면서 복음과 타협할 수 없음을, 즉 이제부터 써 내려가는 메시지의 초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에 집중할 것임을, 왜냐하면 자신은 사람에게서”(“사람으로 말미암아”, 1a) 세움을 입은 자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1) 자이기에, ‘그리스도의 종’(10b)이기에 그렇다.

   

 

부스러기 묵상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면 .”(10b, 표준새번역)

 

바울은 참으로 아픈 과거를 기억창고에서 끌어낸다.

그것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기 이전, 즉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 이전에 한때 자신이 지금 갈라디아교회를 복음에서 속히 떠나게 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 부끄러운 자였음을 고백한다(10b):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13)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다른 복음에 기초한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점을,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의 옛사람을 예(case)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지금 포기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저희들도 이 복음을 듣고,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자신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저주의 사슬을 끊었던 것처럼 갈라디아교회를 저주 아래 떨어지게 만들려는 어떤 사람들도 유대교(율법주의)의 틀을 깨고 새롭게 복음의 새싹을 움트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종으로 함께 더불어 저주 없는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목회자 바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살아있는 복음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구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가짜를 도려내는 일이다. 지금 갈라디아교회는 이 어렵고도 힘든 영적(靈的) 수술을 시작하려 한다. 이는 다른 복음과 함께 교회를 저주 아래로 떨어뜨리려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라는 가라지를 제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다면 더 이상 사람을 기쁘게 하는 꼭두각시놀이를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바울의 심장 안에 펄떡거리는 바로 그 교회, 나 역시 품고 가야 할 주님의 교회가 아닌가. 이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그분의 종으로서 내가 맡아야 할 당연한 몫이 아닌가. 잠시 내가 꿈꾸는 교회를 생각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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