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맥잡기

맛있는 신약통독개론(초안: 20210830)

 

 

 

갈라디아서 맥잡기

Gal. 5.1

 

    구조 관찰

 

    인사와 찬양(1.1-5)

    1. 바울복음(1.6-24)

       1.1. 갈라디아교회 vs 복음(6-10)

       1.2. 바울복음의 기원(11-24)

          A. 부르심(11-16)

          B. 사도 1-3(17)

          C. 사도 3-13(18-24)

    2.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2.1-21)

       2.1.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1-10)

          A.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1-3)

          B.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4-8)

          C. 예루살렘회의의 결론(9-10)

       2.2. 베드로 앞에서 옹호된 복음(11-14)

       2.3.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15-21)

    3.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1(3.1-29)

       3.1. 갈라디아인들의 그리스도적 체험(1-5)

       3.2. 오직 믿음(6-14)

          A. 아브라함 예화(6-9)

          B. 율법의 본래 기능(10-12)

          C.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결과(13-14)

       3.3. 율법은 약속을 무효하게 할 수 없다(15-18).

       3.4. 율법은 주의 재림 때까지 유효하다(19-29).

          A. 율법의 기능과 목적(19-25)

          B.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신분(26-29)

    4.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2(4.1-31)

       4.1. 신분 이동(1-11): vs 아들

          A.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법적 지위(1-7)

          B. 유대주의를 경계하라!(8-11)

       4.2. 간 증 - 나와 같이 되라(12-20)

       4.3. 이신칭의의 비유(21-31): 하갈 vs 사라 

    5. 복음행전1(5.1-26)

       5.1.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12)

          A. 자유[복음] vs [율법](1-6)

          B. 유대주의를 극복하라!(7-12)

       5.2. 자유의 복음(13-26)

          A.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3-15)

          B. 성령을 따라 살라!(16-26)

    6. 복음행전2(6.1-17)

       6.1. 그리스도의 법(1-10)

          A. 섬김의 법칙(1-5): 짐을 서로 지라!

          B. 거둠의 법칙(6-10): 심은 대로 거두리라!

       6.2. 복음행전2(11-17):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 오라!

          A. 교회의 적대자들(11-13)

          B. 바울의 자랑(14-17)

    인사와 축도(6.18)

   

 

이신칭의(以信稱義)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이를 복음이 아닌 율법을 밝히 드러내는 쪽에서 접근한다. 하지만 복음이 무엇인가를 놓친 적은 없다. 율법의 행위로부터의 자유임을 밝히 드러내면 낼수록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롭다 칭함)은 더 선명하게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 갈라디아교회가 해야 할 일은 복음처럼 사는 일이고, 또한 율법처럼 사는 자들로부터 돌아서는 일이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따라 복음행전처럼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갈라디아교회의 삶이자 성도들이 회복해야할 복음이다.

  

 

[1] 바울복음(1.1-24)

 

1.1. 인사와 찬양(1.1-5)

 

바울의 아킬레스건은 그의 사도직의 기원에 관한 부분이다. 때문에 그런 그에게 갈리디아교회가 사도직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처럼 보인다. 이처럼 인사와 찬양(1-5)으로 시작되는 서론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논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이 암시되고 있다.

 

1.2. 바울복음(1.6-24)

 

    A. 갈라디아교회 vs 복음(6-10): 복음은 하나다.

    B. 바울복음의 기원(11-24): 복음은 계시에서 왔다.

       부르심(11-16)

       사도 1-3(17)

       사도 3-13(18-24)

 

바울의 사도권과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으로의 급속한 이동이다(6-10). 이 둘(1 vs 6)은 무관하지 않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갈리디아교회들, 이들을 향한 바울의 경고에서 저들을 향한 사도의 마음을 읽게 된다.

바울은 담담하게 자신을 간증하기 시작한다. 자칫 자신 때문에 복음(그리스도)이 배척될 수도 있다는 뭔가 심각한 흐름이 발견되고 있음 때문이다. 비록 어떤 사람들때문이긴 하지만 자신은 물론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흔들리는 갈라디아교회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어찌했을까. 때때로 나 역시 원치 않는 상황에 이렇듯 노출될 수 있다. 어찌할까. 이것이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사도권을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빛바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르심(11-16)을 받은 때부터 지금 이 서신을 쓰고 있는 사도 13년까지의 삶을 담담하게 토해낸다.

  

 

[2] 복음(福音)이란 무엇인가?(2.1-21)

 

1.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2.1-10)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1-3)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4-8)

    예루살렘회의의 결론(9-10)

 

바울은 바울복음의 기원이 사람(예루살렘 사도)이 아닌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루살렘 쪽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동역자들과 만남이 준 아름다운 덕을 밝히 드러낸다(8). 마침내 이방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바울을 넘어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9). 아름다운 동역을 생각하게 한다.

 

2. 베드로 앞에서 옹호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11-21)

 

    베드로 앞에서 옹호된 복음(11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복음(15-21)

 

바울과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얼굴을 붉힌 일이 일어났다(11). 왜 그랬고, 또한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안디옥 사건을 이처럼 기록해야만 했는지 궁금하다. 그만큼 초대교회는 율법(유대교)과의 관계 설정에 뚜렷하고도 선명한 입장을 따라 세워져가는 일에 속도 조절 중이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복음의 능력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 생각만큼 어려운 주제였다는 뜻이다. 아마도 갈라디아교회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기 때문에 소위 안디옥 사건을, 그것도 베드로와의 갈등을 예화처럼 써내려가는 것 아닐까.

 

 

[3]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1(3.1-29)

 

1. “율법이냐 믿음이냐?”(1-14): 오직 믿음!

 

    갈라디아인들의 그리스도적 체험(1-5)

    오직 믿음(6-14)

    아브라함 예화(6-9)

    율법의 본래 기능(10-12)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결과(13-14)

 

율법(律法) vs 믿음의 논쟁(토론)은 기독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주제다. 바울은 성령을 받은 것’(2), 그러니까 이미 구원의 복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음 인가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자신(교회)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할 복음의 우월성을 증명함에 있어, 초대교회 당시 양분되어 있는 구원의 복음의 두 기초(율법의 행위 vs 이신칭의)에 대한 혼돈에 대해 몇 가지 증거들을 들어 자신의 입장을 증명해 내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갈라디아교회의 체험을 들어서, 그리고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율법이냐 믿음이냐?”의 문제 앞에 선다.

성령을 체험하게 된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들은바 복음의 선포에 의한 믿음에 의해서다(1-5). 바울은 창세기 말씀에서 율법이 아닌 믿음의 우월성을 증명하기를 시작하면서(6) 곧바로 자신의 신학적 코멘트로 확증한다(7). 이 방식은 두 번 더 이어진다(8 vs 9, 10-13 vs 14). 이를 위해 아브라함을 들어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아마도 유대교는 아브라함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가 얼마나 그릇된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깨달아야만 했다. 이것이 지금 유대교의 옷에 찌든 아브라함에게 복음의 새 옷을 입힌 바울신학의 묘미다(6-14).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에게 약속된 복()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혈통에 있다는 유대주의자(율법주의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 복음’(복음)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2. “율법이냐 믿음이냐?”(15-29): 율법은 유한하다.

 

    율법은 약속을 무효하게 할 수 없다(15-18).

    율법은 주의 재림 때까지 유효하다(19-29).

    율법의 기능과 목적(19-25)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신분(26-29)

 

율법이냐 믿음이냐?”의 논쟁에 대한 바울의 증명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 것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율법의 사람이냐 믿음의 사람이냐에 기초한다. 그야말로 유대교(율법)에 정면승부를 거는 [갈라디아대첩]이다(19-25). 그렇다면 이 질문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19a) 이로써 율법에 대한 바울신학의 새로운 지평 앞에 서게 된다.

먼저, 율법은 약속을 무효하게 할 수 없다. 일반적인 통념상 일단 체결된 언약은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원리로부터 선() [아브라함언약]을 후() 율법이 폐지(수정, 변경)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발전시킨다(15-18).

또한, 율법은 주의 재림 때까지 유효하다. 만일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약속이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율법은 무엇이냐는 질문과 거기에 대한 대답이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때문에 바울은 먼저 율법의 기능과 목적(19-25)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해 주고, 이제는 율법의 잣대가 아닌 이미 앞서 이야기한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신분(26-29)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에 대해서 힘껏 외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26).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그가 어떤 혈통이냐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27-28). 중요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29)인가이다. 이것이 바울복음이다.

  

 

[4] 율법이냐 믿음이냐?_그 증명들2(4.1-31)

 

1. 신분 이동(1-11): vs 아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법적 지위(1-7)

    유대주의를 경계하라!(8-11)

 

율법이냐 믿음이냐?”(3-4)의 문제를 다루는 중 앞 단락(3.26-29)의 연속으로써 ’(A)에서 아들’(B)로의 신분 이동을 갈라디아교회에 적용한다(1-7). 그렇다면 그때에는’(A, 8)에서 이제는’(B, 9a)으로 이미 신분이 변화되었기에 다시유대주의자들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8-11):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9b)

 

2. 간 증(12-20)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12a)

    ‘내가 처음에’(13a)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15a)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19)

    ‘내가 이제라도’(20a)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위해 자신이 한 복음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과거’(13-14,15b-16,13a_“내가 처음에”)를 회고하면서 지금을 돌아보도록 격려한다(15a_“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그리고 필요하다면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19) 할 것을, 그리하여 다시 처음에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라도를 새롭게 각오함을 갈라디아교회 앞에 표한다(20).

 

3. 이신칭의의 비유(21-31): 하갈 vs 사라

 

    #옛언약(율법)

    A 계집종(하갈)

       B 육체를 따라 난 아이(계집종의 자녀_이스마엘)

          C

             D 지금 있는 예루살렘(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

             D' 위에 있는 예루살렘(천상)

          C' 자유

       B' 약속/성령을 따란 난 아들(자유하는 여자의 자녀_이삭)

    A' 우리 어머니(사라)

    #새언약(복음)

 

율법이냐 믿음이냐?”(3-4)의 긴 구원신학(救援神學)의 결론이다. 갈라디아교회(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모세 율법으로 대표되는 옛언약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언약(복음)에서 찾기 위해 하갈 vs 사라의 비유를 사용한다.

  

 

[5] 복음행전1(5.1-26)

 

1.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1-12)

 

    자유[복음] vs [율법](1-6)

    유대주의를 극복하라!(7-12)

  

새언약(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더 이상 옛언약(할례와 모세의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해방)의 복음에서 비롯된다: “저희(할례주의자)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2.4)

 

2. 자유의 복음(13-26)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3-15)

    성령을 따라 살라!(16-26)

 

율법마저도 사랑의 앵글에서 재해석(13-15)한 바울은 이제 곧바로 새언약을 따라 사는 자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16-26).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율법이냐 믿음이냐?”(3-4)에서 아브라함(이삭)을 모델로 제시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육체를 따라 난 자’(이스마엘)가 아닌 성령을 따라 난 자’(이삭_4.29)의 유업을 이어가야 함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대조되는 두 길([‘육체의 일’_19-21] vs [‘성령의 열매’_22-23])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육체의 일(19-2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음행/더러운 것/호색/

       우상숭배/술수/원수맺기/분쟁/시기/분냄/당짓기/분리함/이단/

       투기/술취함/방탕함

    성령의 열매(22-23):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재

  

 

[6] 복음행전2(6.1-18)

 

1. 그리스도의 법(1-10)

 

    섬김의 법칙(1-5): 짐을 서로 지라!

    거둠의 법칙(6-10):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교회는 안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섬김을 통해 성취해야 한다(1-10). 그리스도의 법은 너희’(1,2)우리’(9,10), 그리고 모든 이’(10)에게 적용되어져야 하고, 전달되어야만 한다. 여기에는 범죄한 사람’(1)이나 무거운 ’(2)을 진 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6)까지 포함되는데 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복음행전적 삶이다(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 하지만 이런 선()을 행할지라도 낙심할 수 있다(9a). 이렇듯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법스러운 삶을 산다면 그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섬김의 법칙(1-5)과 거둠의 법칙(6-10) 안에 살아 숨쉬는 복음이다.

 

2. 복음행전2(11-17):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 오라!

 

    교회의 적대자들(11-13)

    바울의 자랑(14-17)

 

동시에 갈라디아교회는 이제 밖으로 복음의 근본을 위협하는 적대자들(할례주의자들)을 상대해야만 한다(11-17). 친필 사인(sign, 11)을 하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하려는 바로 그 시간까지 바울은 적대자들로부터 갈라디아교회를 지키기 위해(12-13), 동시에 자신 또한 괴로움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남은 여력을 다한다(17). 그만큼 갈라디아교회의 총체적 상황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12-16).

  

 

부스러기 묵상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6.18)

 

바울의 온 시선은 갈라디아교회 형제들아!’(너희)에게 맞춰져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서 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섬김의 삶을 살고 있고, 살아야 하고, 살게 될 자들을 향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빌어 축복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들인 저희’(할례주의자)는 결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축복의 반열에 선() 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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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묵상.jpg

 

    김충만

    맛있는 신약묵상

    가나북스

    2014

 

    갈라디아서 묵상은 책, pp.319-334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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