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교회 사랑(고후 11.1-15)

20201009(묵상)

   

 

 

사도의 교회 사랑

2 Cor. 11.1-15

  

   본문 관찰

 

   복음 전파(1-6): (우리) vs 다른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너희 마음이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잘 용납하는구나

      거짓 사도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자비량(7-12)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복음전파(13-15): 바울 vs 그들(사탄의 일꾼들

 

       [구조]

       A 바울: 너희를 정결한 신부로!(1-2)

          B 그들: ‘그러나 ’(3-4)

       A’ 바울: 자비량(5-12)

          B’ 그들: ‘그 행위대로 되리라!’(13-15)

    

 

참과 거짓을 구별하라!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2b)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고린도교회를 품는다(2).

그런데 사탄이 그만 신랑(예수님)다른것들을 덧뿌리는데도 신부(교회)는 이를 잘 용납해 버린다(3-4,12-15).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그림이다. 이를 바라보는 바울의 심정에 사랑의 눈물이 고인다. 재정 후원을 받으면 삯꾼이고, 받지 않으면 신령하고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 한 것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또 하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적대자들은 고린도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이 그렇지 않은 것을 두고 사도가 아니기에 그랬을 것이라 덮어씌운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물타기인 셈이다. 이는 저들의 자충수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편지를 받아 읽게 되면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인가가 그대로 드러날 테니까.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타고 흐르는 진실이기에 그렇다.

   

 

복음 전파(1-6,13-15), 대적자들을 보라!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정결한 처녀로의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있도록 가슴조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저들에게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한다(2a). 이는 오직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약혼을 시켰기 때문이다(2b). 복음 전도자의 애정이 이마만큼 숨 쉬는 게 어디 또 있을까. 바울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말하는 것이 좀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와 너희의 복음 안에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1).   

그 이유는 에덴동산에서 뱀(사탄)이 하와를 유혹하였듯이, 지금 고린도교회가 그런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이다(3a). 유대주의적 분파주의자들인 바울의 적대자들이 저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3b)하도록 하는 일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한 딸의 아버지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교회를 위한 새언약의 일꾼’(3.6a)된 사도로 부르심으로 받았다면 어찌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게”(4) 하는 일을 앞장설 수 있단 말인가. 동시에 너희가 정결한 처녀라면 곧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어찌 다른 복음’(주님과 관계없는 것이 거짓 복음이다.)을 전하는 이단의 미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치 음부처럼 저들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다 사탄의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 교회의 신부에로의 단장을 가로막는 적대자의 정체가 바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여 먹는 일꾼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13, 공동번역)인데 저들은 다름 아닌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14-15). 사탄이 자신을 가장하듯 적대자들 역시 그럴 듯하게 자신들의 사악한 정체를 위장한다.

과연 누가 겉과 속이 다른 자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가짜가 진짜를 시비하는 시대, 이는 분명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바울은 그 열매로 그 정체를 알게 될 것이라 말함으로써 고린도교회가 누구로부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스스로 진단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깨닫고 회개하도록 저들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있다(15b). 이단(異端)이란 끝이 다른 것이 그 특징이다. 우리(바울공동체)와 너희(고린도교회)와 저희(적대자)의 끝,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아는 법이다.

   

 

자비량(自備糧, 7-12)

 

바울의 사도권 시비는 재정 후원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문제의 배경에는 고린도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 적대자들이 놀랍게도 스스로의 무덤을 판 자충수와 같은 어리석음이 들어있다. 어쩌면 사도(使徒)하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교회가 주는 생활비를 받지 않은 것은 바울이 필시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억측이 바로 그것이다.

바울은 이를 사도권 변호는 물론 과연 누가 진실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인가를 밝히 드러내는 기회로 적극 활용한다.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5, 고도의 언어유희로써 적대자들을 가리킨다.) 보다 지식에는 물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바울로서는 오히려 이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거짓으로부터 깨어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역에 있어서 지혜가 얼마나 요긴하고 필요한가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럼 재정 후원과 관련하여 바울이 제시하는 거짓 사도와 참 사도를 구별하는 몇 가지 지침들은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自備糧)으로 선교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바울은 앞서 [고린도전서] 91-18절에서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신학(25.4, 6.16,26)적으로 그것이 옳은 것이며, 또한 본문에서도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8) 받아가지고 생활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에서만 유독 자비량(自備糧, 18.1-4)으로 값없이 목회를 한 이유들을 밝힘으로써 바울의 대적자들이 재정 후원과 관련하여 얼마나 교묘하고 악한 삯꾼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먼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7) 복음을 전한 것이었다. 누가 진실로 교회를 위한 사역자인가를 생각하라는 메시지다. 둘째, 아주 고도의 문학적 터치가 빛나는 구절인데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폐됨 없이 섬기기 위해 다른 교회들의 것을 빼앗았다는 것이다(8-9). 그럼 대적자들이 고린도교회에서 삯을 빼앗는 이유와 목적이 타당한가를, 과연 누가 폐를 끼치고 있는가를 생각하라는 메시지다.

셋째, 자비량(自備糧)의 핵심은 고린도교회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11). 넷째, 대적자들과 차별화함으로써 저들이 얼마나 거짓된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12b). 이를 위해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 온 자비량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을 천명한다(12a). 이로써 바울 흔들기를 주도하는 자들의 허구성이 드러났다. 진정 누가 교회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도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뱀(3; 마귀, 사탄, 12.9 참조)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3)

    부패하게 하는 자들(3)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전파자들(4)

       ≠ 새언약의 일꾼된 사도(3.6a)

    거물급 사도라 자칭하는 대적자들(5): ‘나는 지극히 크다

    거짓 사도(13)

    속이는 일꾼(13)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13)

    사단의 일꾼들(광명의 천사 & 의의 일꾼으로 가장, 15)

    육신을 따라 자랑(18)

    어리석은 자들(19)

        →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꾾으려 함이라.”(12b)

 

놀랍게도 고린도교회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이 고린도교회의 실상이다. 가짜들도 문제지만 이들을 , 기쁘게 용납”(4,19)하는 고린도 성도들이 더 문제다. 유사 기독교, 유사 은사자들, 예수 무당도 문제이지만 거기에 가야 은혜가 있다. 맑고 깨끗한 영을 소유한 신령한 종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에 혹 해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인가에 대한 고민과 상고함 없이 오로지 자기 목표 성취를 위해 머리 내미는 사람들 역시 문제다.

정식 자격증(License) 없이 치과의사 행세하고, 한의사 행세하는 사람들을 야매’(돌팔이)라고 한다. 잘 고칠 수 있다.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보다 더 유능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기독교 안에는 지금도 이런 일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럴 권리와 자격을 주지 않았음에도 자기 스스로 가정 제단이라 해서 조그만 강대상 사다가 방에 놓고, 십자가 하나 걸어 놓고,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소개한다: “불의 종, 신령한 종, 천국을 보고 온 종, 능력의 종, 불의 여종, 신유-투시-예언-계시-치유의 종 .” 실로 심각하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1.6-10). 유사품, 유사 상표에 속으면 곤란하다. 특별히 귀한 것 일수록 아무 곳에서나 물건 사지 않듯이,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되면 역시 아무에게나, 아무 곳이나 찾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결과가 극과 극으로 나누인다(15b).

오직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몸부림치는 바울에게서 사역자로서의 나의 나됨을 다시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깊은 영적 부담을 느낀다. 교회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나 가벼운 것은 아닌지, 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자꾸만 현실을 기웃거리는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피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헛된 자랑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바울의 모습에 중첩되곤 한다. 누구의 일꾼인가를 보다 더 분명히 언행(言行)해야 할 때를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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