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獨身) 클리닉(고전 7.25-40)

20200612(묵상)

  

 

 

독신(獨身) 클리닉

1 Cor. 7.25-40

  

본문 관찰

 

미혼자들에 대하여는(25-28)

종말의 때의 결혼(독신)에 관하여(29-38)

과부의 재혼에 관하여(39-40)

 

 

독신생활에 대하여

 

7장은 임박한 환난’(26)이라는 특별한 때와 관련하여 주어진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일상생활 안에서 만나는 결혼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바울은 그의 전() 서신들에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일관된 말씀을 해 왔다. 따라서 독신에 대한 지침들 역시 넓게는 이러한 교훈들과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결혼(가정)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법칙의 빛 아래서 조망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 말은 고린도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혼자들에 대하여는(25-28)

종말의 때의 결혼(독신)에 관하여(29-38)

 

바울은 그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시점을 임박한 환난의 때(26,29), 그러니까 주님의 재림(13.11-12, 살전4.15- , 5.2- , 벧전4.7)이 임박한 것으로 보는 것에 맞춘다. 때문에 7장의 결혼에 대한 지침록은 다분히 이런 종말론적 임박성이라는 상황에 비춰 읽어야 하고, 또 이해되어야만 한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29, 새번역)

바로 이런 때에 미혼 남녀들이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바울은 좀 더 절제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통해 교훈한다(25; 참고. 6,12,17,40). 일단 바울은 미혼자들에게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임박한 종말의 때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26, 29a)고 명하면서(이미 홀로된 자들에게도 27b절에서 같은 의미로 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독신이 좋다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이혼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27a).

물론 미혼 남녀가 시집(장가)가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28), 결혼은 이미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것(바울은 이를 세상 일을 염려하는 것이라 말한다)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바울은 이를 주의 일을 염려하는 것이라 말한다.)으로 마음과 생각과 관심을 나누어지게 한다(32-34). 이것이 바울이 결혼보다는 독신을 주님을 섬기며 사는 일에 더 가치 있게 보려고 하는 기준이다(35-38).

바울은 물론 결혼을 금하면서 독신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딤전4.3a). 그는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세상 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이 주의 일’(세상 일)을 염려하면서 사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혼은 이를 통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남녀가 1순위로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인데, 만일 이것이 아니라면 결혼은 오히려 세상 일을 염려하게 하는 것을 더 추가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바울은 지금 이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과부의 재혼에 관하여(39-40)

 

부부는 서로 살아있을 때에 피차 상호간에 의존적이다(39a, 11-13,27). 그러다가 한쪽이 먼저 죽으면 자유하며, 이때 재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주 안에서만”(39b), 배우자가 될 사람 역시 주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어야 가능하다. 바울은 어느 경우든 불신 결혼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40)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임박한 종말의 때를 살아감에 있어 주님의 일에 집중하는 삶이 만들어가는 영적인 부요를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35b, 새번역)

삶의 초점을 이젠 주님께 집중할 때도 되었음을, 그러나 이것 역시 재혼하지 않는 것이 더 죄로 가는 것이라면 앞에서 제시한 원리처럼 결혼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배우자의 죽음을 또 다른 새로움의 시작으로 가져가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해 가는 것, 그럼에도 영적 균형감을 잃지 않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해 가는 것, 한 사람의 에너지가 무엇과 어디를 지향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부스러기 묵상

 

독신의 두 얼굴을 생각해 본다.

초혼으로부터의 독신이든 재혼으로부터의 독신이든, 모든 경우에 과연 그가 독신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사회는 바울이 말하는 결혼의 상호종속성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독신하기로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자기 직업을 통해 이미 생계의 문제를 뛰어넘었고, 굳이 결혼을 통하지 않고도 배우자(가족, 가정)가 주는 것들을 찾고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는 이기적이고 인본적인 언행이 주류를 이룬 게 아닌가 싶다.

결혼과 독신 모두가 다 주님을 더 잘 섬기고 따르기 위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면 결혼하기만을 통해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반대로 배우자와 주님 사이에서 마음과 생각과 열정이 나누어지지 않는 독신하기만이 더 주님을 잘 섬기며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자기 입장만 고수하며 그것의 정당성을 추구한다면 독신이든 결혼이든 자기 자랑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결혼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언약이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과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인간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건도 된다. 배우자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결혼이든 재혼이든 그것이 하나님과 관련된 사건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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