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訟事) 클리닉(고전 6.1-11)

20200609(묵상)

    

 

 

송사(訟事) 클리닉

1 Cor. 6.1-11

 

 

   본문 관찰

 

   1 불의한 자들 - 고발 - 성도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5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느냐

   7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송사문제(訟事問題)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b)

 

바울이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4.21a)는 이유, 있다.

성도들끼리의 문제를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기 때문이다(1).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 지혜’(말의 지혜) 때문이었다(1-4). 바울은 여기서 세상 지혜에 대한 자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음행(5.1-13, 6.12-20) 문제에 이어 다시 소송’(1-11) 문제를 다룸으로써 밝히 드러낸다(5b).

이로써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거룩성은 물론 성도의 신분에서, 그리고 성도의 수준에서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聖徒)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1.2a)- 멀어져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분쟁 클리닉(1-4)과 교회 클리닉(5-16)은 고린도교회로 하여금 건강한 교회되게 하는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5장에서 6장으로 넘어오는 바울의 논리가 흥미롭다. 세상과 다른 교회(5.9-13)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에서, 그렇다면 세상을 판단할성도(교회)가 반대로 세상의 판단을 받겠다고 세상 법정으로 교회 문제를 들고 나가서야 되겠느냐는 질책이다(5.1-13 6.1-11).

 

 

이방 법정에서의 소송

 

바울은 세상의 법 자체를 거부하거나, 혹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법이나 법정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거부할 것을 말하는가. 분명 그런 것 같지는 않다(25.10-12, 13.1). 지금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리스도인들끼리의 문제를 세상 법에 호소하여 소송을 하는 경우이다(1-11).

왜 이처럼 말하는가. ‘불의한 자들’(1;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_4; 믿지 아니하는 자들_6b)성도’(2, 1.2)는 그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1.30a, 참조. 11) 그러므로 성도가 세상의 판단을 받게 되는 성도들끼리의 송사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성도가 세상(천사)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a,3) 이런 영적 역전(逆轉)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5a).

바울의 계속적인 질문은 고린도교회의 무지와 불신앙이라는 묵은 누룩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될 모양이다. 이때 지혜 있다는 자들이 느낄 부끄러움이 눈에 선하다(5b). 한편 문제의 진단(1-6)을 넘어 처방으로 제시되는 부분은 한 마디로 하면 권리포기(7-8; 3.12-17, 살전5.15).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13.7)

 

바울은 아마도 이 부분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을 기억했을 것이다(5.38-4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39-40) 그렇다면 복음이 희망이다는 얘기다.

따라서 오히려 불의를 당하는 것’(속는 것, 7b)이 피차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8) ‘불의한 자’(9a)가 되어 공멸(攻滅)하는 것으로 끝장나지 않는 길이다(7a). 왜냐하면 악행(惡行 - 음행자, 우상숭배자, 간음자, 여색자, 남색자, 도적, 탐욕자, 술주정뱅이, 중상모략자, 등쳐먹는 자, 9b-10a)하는 송사꾼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겠기 때문이다(9a,10b). 비록 이전에는 이처럼 살던 자들이 교회 안에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11). 왜 그런가? 이제는 세상에서 구별되어 성도된 자 되었기 때문이다(11b, 1.2,30).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선언이 눈부시다(11):

 

    여러분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씻겨졌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부스러기 묵상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5.6a)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b)

 

다시 말의 지혜’(세상의 지혜)가 갖는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비유컨대 이것은 단순히 피자 한 조각이 아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 전체(‘온 덩어리’)에 이런 죄의 열매들을 맺게 한 적은 누룩’(분쟁, 말의 지혜)이다(5.6). 온 교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가라지다. 급기야 지혜타령은 교회(성도)와 세상의 구분을 허물어 버렸고,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하는 일을 가지고 세상 법정에 고소(고발, 소송)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말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교회 안에서 자행되느냐고 할 때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분명히 한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2),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3)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읽게 된다. 이런 참된 지혜가 없기 때문에 형제들 사이에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8)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며 사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불의(不義)한 자, 즉 송사하는 자와 음행자, 우상숭배자, 간음자, 여색자, 남색자, 도적, 탐욕자, 술주정뱅이, 중상모략자, 등쳐먹는 자(9b-10a)를 공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9a,10b)는 자로 정죄한다. 그만큼 교회의 거룩성을 경히 여기는 것은 그가 진실로 거듭난 자인가를 생각하게 한다(11).

바울은 차라리 역설적으로 불의를 당하는 것(속는 것)이 오히려 낮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5.38-42). 송사가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일(2), 세상 일(3), 세상 사건(4), 그 형제(형제가 형제로 더불어)간 일(5-6)이라는 표현에서 볼 때, 특별히 바울이 송사에 직접 연관되어 있고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25,10-12, 13,1)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교회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한 듯하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5.40)

 

말처럼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바울의 처방처럼 차라리 손해를 보는 쪽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주님은 종종 내가 강점(强點)이라 생각하는 것을 뿌리째 흔드실 때가 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라 하시면서 저들의 실상을 드러내시듯, 정말이지 가볍고 연약한 나의 모습 앞에 부끄럽고 초라하고 맥없게 하면서까지 나를 사로잡으신다.

복음의 원리를 따라야 하나 교회는 이미 세상 법정의 판단을 받기 위해 너도나도 법정으로 달려가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바울이 제시하는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까. 어려운 얘기다. 교회 안에 영적 자정과 조정의 능력이라는 목회적 권위가 살아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충분히 세상 법정으로 나아가는 일을 포기할 것이다. 이것이 내 문제이자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면 앞서 그랬듯이 지금처럼 얘기하고 다시금 또 결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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