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새사람으로!(엡 4.17-24)

20220909(묵상) 초안 - 20020610

  

 

 

이제부터는 새사람으로!

Ep. 4.17-24

  

 

    본문 관찰

 

    옛사람(17-19,22)

    새사람(20-21,23-24)

  

 

옛사람 vs 새사람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새로운 신분을 얻었고, 그래서 새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면 그는 새생활을 하는 새사람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17-19)너희’(1-3,20-24)의 절묘한 대조는 이를 보다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은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때 더 깊은 성숙을 맛보게 된다. 새사람의 목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사람(17-19,22) - 무 지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17b)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18)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22)

 

다시 언급되는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2.1-3,11-12)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어느 누구든 그들의 위치(모습, 상태, 신분)에 있을 때에는 다 그랬다. 하지만 하나됨을 성숙으로 이어가려면(13-16) 옛사람(이방인, 그들)의 생활을 버려야 한다. , 다시 예전처럼 헛된 생각으로 무가치한 생활을 반복했던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 교회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직 약속(언약)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방인, 옛사람)의 수준에 머물게 만드는 원인이 있다(18).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참된 생활을 거부하고 죄를 먹고 마시며 살게 됨으로써 마음이 굳어지고, 그래서 총명이 어두워지면서 점차 영적 무지에 빠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된다.

그 결과 영적 무감각에 빠지게 됨으로써 영적부도’(靈的不渡)가 온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 그러니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것이고, 몸의 각 다양한 지체가 하나됨을 통해 머리되신 주님을 섬기게 되기가 만무한 것이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게 되자(22), 하나님의 생명에서 분리된 것만 확증되고(18), 그러니 결과적으로 거두는 것이 탕자처럼이다(19). 다 심은 그대로 거두는 법이다(6.7).

 

 

새사람(20-21,23-24) - 진 리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0)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21)

 

그러나 새사람은 다르다. 에베소교회가 배운 것(20), 그리고 들은 말씀과 가르침을 받은 진리(21)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옛날의 생활 방식, 곧 거짓된 욕망으로 부패해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22, 현대인의성경)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듯 교회가 진리에 바르게 설 때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20-21 22).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만 새사람을 입는다(22 24). 옛사람으로 상징되는 너절한 것들을 다 벗어야 한다. 새사람으로 갈아 입으려면 말이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2:1-3 2:4-10). 그러므로 더 이상 옛사람의 싹이 나오지 않도록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해야 한다(23).

주님은 모두가 다 그들’(17-19, 2.1-3)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육체의 욕망을 따라 지내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너희’()로 하여금 새사람으로 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 놓으셨다. ‘너희처럼 살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새사람이 되었으니 거기에 걸맞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가르침을 받은 자들의 삶이다.

 

 

부스러기 묵상

 

가끔은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데 갈수록 헛된 배짱과 교리적 안정감만 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하나님 앞에서 새사람으로 살려고 발버둥쳐도 될까 말까 할 때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은밀하게 옛사람의 영토를 넘나들고 있는 두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이러다가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서 앙상한 뼈만 가지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겁난다.

이방인(그들, 옛사람)의 자리에 있던 나를 새사람(너희)의 반열에 오르게 하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모든 죄를 다 탕감 받았는데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면서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까불다가는 모든 게 다 끝장날지도 모른다. 나 같은 죄인도 새사람이 되게 하심, 그것이 은혜의 선물임을 알고 있다면 이제는 괜한 재주부리며 건방떨 때가 아니다.

주님이 나에게도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0) 말씀하신다. 다시 정신 차릴 기회를 주시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야 경우에 따라 대충 속이기도 하고, 그럴 듯 한 모습으로 포장하여 허세를 부릴 수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는 아니다. 하나님 안에,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없이, 하나님 몰래, 하나님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평범한 생각이 오늘따라 내 영혼에게 세미한 소리가 된다.

바다 고기는 왜 소금물에서 살면서도 먹어보면 짠맛이 없을까? 그러나 이미 숨을 쉬지 않는 고기는 소금만 뿌려 놓아도 짜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한 물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결코 세상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의 선물을 받았다면 더 이상 죽어있던 때의 옛사람이 나를 주장할 수는 없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면 나(‘교회’)는 분명 다르고 바르게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부분으로 들어가 보자(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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