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8(묵상) 초안 - 20020608
하나됨, 최상의 소명
Ep. 4.1-16
본문 관찰
하나됨을 위한 기초(1-3)
이미 주어진 하나됨(4-6)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됨(7-12)
하나됨으로 이룰 축복(13-16)
하나됨(UNITY)과 성장
교회란 무엇인가?(1-3장)
하나님의 교회는 성부의 계획과 성자의 구속과 성령의 보증이라는 삼위일체의 연합과 동역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세워진 주님의 몸된 교회는(1.23), 동시에 그의 몸의 지체로서 교회답게 살아야 할 사명이 주어진다(4-6장). 그러니까 존재 목적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 첫 번째 사명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1,3)는 하나됨에로의 부르심이다.
교회가 하나됨을 지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그것이 주어졌기 때문이다(4-6). 성도의 연합은 물리적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 속에서 성취되어간다(7-12). 또한 하나됨을 통해 그것이 가져다주는 축복을 누리려면 건강한 성장과 성숙이 동반되어야 한다(13-16). 이것은 통일성(3-6)과 다양성(7-12) 속에서 이루어가야 할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하나됨은 지켜야 할 명령이다(1-6).
하나됨은 “하나 되자!”라며 외치는 단순한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서로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고, 혹은 두 마리 여우의 꼬리를 서로 묶는 것처럼 한다고 하나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됨의 키는 하나님께 있다는 점이다(1.10, 3.6). 한편 교회는 하나되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소명을 받았다(3b).
교회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에 기초를 둔다(1). 그렇다면 하나됨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내용과 질을 필요로 한다는 말인데, 바로 이러한 목록들이 교회가 하나됨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들이다(2-3). 그리스도의 교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인가를 보면 된다(1-3). 이렇듯 주님의 교회됨의 가장 우선한 주제는 하나됨이다.
다양성은 하나됨을 더 풍성하게 한다(7-12).
이미 주어진 하나됨(4-6)만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하나됨을 위한 기초(1-3)가 마치 누룩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11).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하나됨의 은혜들은 다양한 옷을 입는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나눠 주신 분량에 따라 은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7, 현대인의성경)
교회는 이렇듯 통일성의 기초 위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1-6 → 7-12). 다양함이 건강하고 바른가는 그것이 통일성을 허는 것이 아닐 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이신 하나님(1-6)께서 다양성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럼에도 하나됨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비밀이기도 하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기 위해 교회에 주신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이미 주어진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교회의 통일성은 그것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다양한 은사 속에서 풍성해 진다(1-6 → 7,11). 그리고 통일성과 다양성은 그 뿌리가 같고, 지향하는 목표가 같으며,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교회는 이러한 균형과 건강을 통해서 세워진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
한편 은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온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회를 통해서 확인됨으로써 꽃피우게 된다(딤전4.14-15). 하나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으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시지만(1.10)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받은바 은혜의 분량대로, 즉 나눠주신 분량에 따라 각각 서로 다른 직분 속에서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신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교회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신다.
하나됨은 성숙으로 이어진다(13-16).
이렇게 되면 이제 이루어야 할 것은 성숙 안에서의 하나됨이다(13). 하나됨은 성숙을 요구한다. 이는 하나됨의 결과이자 축복이다. 물론 목표와 본(pattern)은 예수님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은 서로 충돌하거나 긴장 관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될 때 가능하다. 이것이 주께서 세우신 건강한 교회다.
이렇듯 하나됨의 교회를 이룸으로써 온 몸이 완전하게 서로 조화하고 도와서 결국 온 몸이 건강하게 자라고 사랑으로 주님의 몸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16). 하나님은 교회가 이처럼 그리스도에게까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신다(15).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하나됨을 좀 더 분명하게 시각화한다. 얼른 보면 어린아이와 배는 하나됨의 주제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됨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성숙을 발목잡고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때 이 비유는 매우 적절한 영적 통찰을 준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린아이가 아니므로 인간의 간교한 꾐수나 속임수로 꾸민 교활한 교훈들의 온갖 풍조에 흔들려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14, 새번역)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성숙 안에서의 하나됨이라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이루는 일에 어찌 방해와 시험과 고난이 없을까. 그래서 바울은 ‘성인아이’처럼 영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다면, 그러니까 성장과 성숙을 등한이 하다가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넘어가거나 흔들리게 될 것을 교훈한다.
하나됨을 이루지 못한 영적 불균형의 한 예로는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이다(행8.9-11,18-25). 그는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소위 <빌립전도단>의 일원이 된다(행8.13). 하지만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마치 성령을 팔아서 장사를 하는 사업가가 되고 싶은 것 같은 제안을 한다(행8.18-19). 이는 에베소서 4장 13절 말씀과 연결을 하자면,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은 것에 하나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부스러기 묵상
“우리가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16, 공동번역)
생명은 자라게 되어 있다(13,15-16).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기에 악의 세력에 대한 영적 통찰이 필요하다(14). 그리스도가 머리요, 몸은 그의 교회인, 그리고 성도(‘나’)는 서로 지체를 이루고 있다(15b, 1.22-23). 그리스도 안에 통일성을 유지하는 교회는 성도 각자들 안에 역사하는 다양성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간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 한 사람까지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부분으로 써 주셨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다른 지체들을 통해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듯이, 나 역시 또 다른 지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Organism)다. 따라서 악한 바이러스들(14)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교회도 이처럼 건강한 몸을 세워가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하신 명령을 이루어 드리기까지, 그래서 건강한 교회로 자라기까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아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어린아이처럼 언행(言行)해서는 결코 이 치열한 영적 전쟁으로부터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잘 해서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공동체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통일성 속에서 다양성이라는 숙제를 교회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는 교회됨의 꿈을 그린다. 나와 다른 사람들로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비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하나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하나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공동체를 헐고, 유기체의 한 부분을 병들게 함으로써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오늘도 교회라는 영적 공식에 나를 대입시켜보니 예상했던 대로 그 결과가 신통치 않다. 다양한 부르심 안에서 설교자와 전도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로 나를 세우셨다(11). 그렇다면 나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하게 자라게 해야 한다(12). 이 영광스러운 소명을 기억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걸 이룰 만큼 서 있지 못한 나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오늘도 말씀으로 나의 영적 건강을 체크해 본다. 오늘만큼은 진단만 잘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기로 한다.